맨해튼에서 버스를 타고 이동하고 있을 때 유모차를 가지고 차량에 오른 여자를 만났다. 여자는 아들을 유모차에 태운 채로 남편에게 넘긴 후 일행과 버스 뒷자리에 앉아서 수다삼매경에 들어갔다. 그 여자에겐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추정되는 딸도 둘이나 있었다. 아이들은 버스 하차 문 앞 공간이 넓은 쪽으로 자리를 옮기더니 춤을 추기 시작했다.
“치치채~ 치채초~ 치치채채 와~~~~~~~!”
발을 엇갈리고 손을 맞대며 아이들은 칙칙책인지 치치체인지 모를 음성을 반복해 가며 뭔가를 연습했다. 마미~ 하고 부르며 자기들을 보라고 하자 엄마가 오~ 치치채? 하고 잘해보라며 격려한다. 와~ 이곳은 길거리가 아니라 버스인데 말이다! 더 충격받은 것은 그런 아이들을 누구도 나무라지 않았다는 것이다. 심지어 버스 기사도 말이다. 승객들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다. 찡그린 사람이 없다. 아이들이 노는 것은 당연하다는 듯 구경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저러면 맘충이라고 하고 노키즈존 얘기 나오고 난리도 아닌데, 대단하지 않아요?”
남편에게 놀란 눈으로 이야기했다.
아침 일찍 카페에 갔다. 남편과 내가 마실 커피를 시키고 6세 어린이가 원하는 애플 주스가 있냐고 물어봤더니 없다고 한다. 아이가 마실만한 것이 있냐고 물어보니 직원이 티 종류가 있다고 말한다. 캐러멜 어쩌고라고 하기에 오! 캐러멜?이라고 되물으니 캐러멜이 아니라 카모마일이란다. 그래서 괜찮다고 하고 자리를 잡았다. 딸은 자기가 먹을 것이 없어서 엄마랑 같이 바닐라 라테를 마시겠다고 했다. 나와 라테를 나눠마시자마자 직원이 물을 들고 온다. 어린이가 마실 것이 없어서 미안하다고 대신 물을 가져왔다고 말이다. 오~ 친절해. 딸은 바닐라 라테가 정말 맛있다고 했고 엄마가 안 마시는 틈을 타서 빨대로 쪽쪽 빨아 마셨다. 직원이 웃길래 그녀가 바닐라 라테가 정말 정말 맛있다고 얘기했다 하니 바리스타가 정말 좋아한다. 급기야 직원은 바에서 나와 우리 보고 자기 카페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려도 되냐 묻는다. 바닐라 라테를 좋아하는 어린이는 그렇게 카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잠시 올랐다.
한국이었으면 어땠을까. 아이가 마실 것이 없는 카페에 왜 데리고 갔냐고 하지 않았을까. 생각은 꼬리를 물기 시작해서 요즘 엄마들이 애는 어린이집에 보내고 카페 와서 수다 떨며 논다는 댓글이 생각났다. 카페에 유모차가 웬 말이냐고 비난했던 글도 생각났다. 아. 그런데 뉴욕은 아니었다.
길거리를 지나가다가도 아이에게 말을 거는 사람을 많이 만났다. 오~ 자기가 15살 때 키티 캐릭터가 유행이었는데 아직도 유행이냐며 전철 에스컬레이터에서 할머니가 말을 건다. 딸의 가방을 보며 너도 키티를 좋아하냐고 정말 멋있는 가방이라고 했다. 한 번은 박물관에서 딸의 옷이 정말 이쁜데 오늘을 위해서 산 것이냐고 물어본 사람도 있다. 아니라고 이건 작년에 외할머니가 생일선물로 사준 거라고 했더니 정말 달콤한 이야기라며 좋은 하루 보내라며 사라졌다.
혼자 여행 오거나 출장을 왔을 땐 그 누구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는데 어린이가 있으니 자주 말시키고 자주 예뻐해 주고 계속 배려해줬다. 한국에서는 사람들이 어린이에게 말을 시키면 아이에 대한 칭찬이나 배려가 아니라 엄마한테 효도해야 한다. 동생을 잘 돌봐줘야 한다. 요즘 애들은 이렇다 저렇다 비난 또는 충고로 이어진다. 그런 말들을 듣고 싶지 않아서 누군가 말을 시키면 겁부터 났었다. 그런데 뉴욕은 아니었다.
미국도 출산율이 낮지만 한국처럼 낮진 않다. 검색해 보니 2022년 출산율이 1.7인 듯하다. 다들 왜 이민을 가나 했더니 이런 문화 때문에 가나보다. 숨통 트인 상태로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말이다.
그때서야 알게 됐다. 내가 한국에서 애를 키우면서 너무 많이 위축돼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맘충이 돼선 안돼, 우리 아이가 타인에게 폐를 끼치면 안 돼 기타 등등 자기 검열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0.78의 시대에 3을 담당하는 중이다. 아이 셋 다 자신이 속한 부류가 이질적이어서 내가 대응하는 방식도 매번 다르다. 그래서 나는 3중으로 긴장하며 아이를 키우고 있던 것 같다. 한국의 출산율이 낮은 이유는 복합적이겠지만 아이를 혐오하는 문화도 한 몫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0.78의 시대에 우리가 무엇을 놓쳤는지 나의 짧은 경험을 통해 고민해보고 싶었다. 그 고민을 매주 화요일 독자들과 나눠보려고 한다. 부디, 이 연재 글에 악플이 달리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