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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하 Dec 09. 2023

9개월 동생이 밉다고 젖병을 빨기 시작한 6세 어린이.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동생이 생긴 후 발생한 퇴행! 그것이 오고야 말았다는 걸 알아차린 것은 여섯 살 둘째가 젖병을 물고 있어서다. 보건소에서 받았던 젖병을 쓰지 않고 있었는데 둘째가 이거 안 쓰냐고 묻는다. 그래서 안 쓴다고 가지고 놀라고 했는데 나는 젖병을 가지고 인형들한테 먹이는 시늉을 할 줄 알았지 거기에 물을 받아서 자기가 물고 다니겠다는 뜻인 줄 몰랐다. 그냥 잠깐 하는 걸 거로 생각했는데 그다음 날 아침 퇴행이 전면전을 걸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9개월 막내의 잠바를 입히기 위해 나는 잠바를 매트 위에 올려놓고 아이를 그 위에 눕힌 채로 팔과 다리를 넣은 후 지퍼를 올린다. 어라. 딸이 자기 잠바를 바닥에 예쁘게 펼친다. 자기도 누워서 잠바를 입고 싶단다. 느낌이 싸했지만 일단 해줬다. 팔을 낀 후 지퍼를 올려줬더니 아기가 버둥거리는 시늉을 한다. 아니야, 이건 그냥 동생을 따라 해 본 걸 거야라고 생각했다.

그 날밤, 동생보다 자기 먼저 토닥토닥해서 재워달라고 한다. 아기는 뭐가 뭔지 잘 몰라서 누나가 잠드는 동안 기다리지 못하고 울고 짜증 내고 뒤집고 기어가다가 벽에 쿵할 수 있다고 했더니 동생이 잠들 때까지 기다린다. 그리곤 자기를 재워달라고 안긴다. 사실 동생을 재우는 것도 내가 옆에 있다가 애가 뒤집으려고 하면 뒤집지 못하게 다리 사이에 아기 베개를 껴주는 일 정도만 한다. 막내는 보통 혼자 이불을 만지다가 잔다. 아니, 동생도 내가 안아서 재우질 않는데 이게 뭐지. 정말 뭐지? 이상한 느낌을 며칠 전부터 받긴 받았었다. 둘째는 첫째, 둘째, 셋째 중에 누가 제일 좋냐고 물어보거나 (엄마는 엄마가 제일 좋아라는 헛소리를 했다.) 갑자기 드레스를 입고 가야한다고 하거나(그래서 쿠팡에서 17,000원에 빨간 드레스를 사서 입혔다.) 머리를 예쁘게 하고 가야 한다거나(친정엄마의 금손찬스로 머리를 며칠 올리고 갔다.) 그랬었다. 그런데 그게 신호탄이었을 줄이야.

둘째의 행동이 이상하다 느껴서 유치원 선생님께 미리 언질을 해놨다. 요즘 젖병을 물고 다니기 시작했는데 혹시 유치원에서 이상하다 싶으시면 꼭 말해달라고 말이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일이 발생했다. 친구 생일파티를 하는데 그날 유치원에서 요리 활동으로 케이크를 만들었고 생일상 위에 진짜 케이크를 올려놓게 됐다. 이틀 전에 생일잔치를 했던 둘째는 자기는 운이 없다고 울기 시작했다고 한다. 자기 생일파티는 이틀 전이었는데 생일 케이크 모형을 올려놨고 이틀 후 친구 생일엔 진짜 케이크가 올라왔다고 통곡의 시간을 가진 것 같았다. 집에 온 딸에게 오늘은 케이크를 만드는 날이어서 그랬고 그동안 다른 친구들도 진짜 케이크로는 파티 안 했는데 왜 울었냐고 했다. 딸의 생일은 사실 한 달 뒤인데 방학 전에 미리 파티를 했던 것이어서 진짜 생일에 엄청 멋있는 케이크를 사 줄 테니 울지 말라고 했다. 아, 케이크가 이렇게 슬픈 거였구나. 그런데 그날 일이 발생했다. 딸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걸 내가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얘기는 이렇다. 딸은 요즘 옆 라인에 사는 한 살 위에 언니와 태권도 차량에서 하차하는데 언니랑 같이 얘기하면서 자기 혼자 집에 올라오고 싶다 했다. 자립심이 생겼나 싶어서 한 달 정도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런데 그 날은 케이크 사건 때문에 울었다고 집에서 잘 다독여 달라는 유치원 선생님 메시지가 있어서 태권도 차량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딸이 내리고 같이 다니는 여자 아이는 내리지 않았다. 딸에게 물어보니 언니는 오늘 가족들이랑 서울에 있는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갔다나? 좋겠네하고 집에다가 가방을 내려놓고 편의점에 가기 위해 바로 나왔다. 그런데 웬걸? 식당에 갔다는 여자애가 자기 언니랑 사탕을 먹으며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아무 생각도 없이. 벌써 식당에서 돌아왔냐고 했다. 그랬더니 딸이 어색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자기가 잘못말했다고 사실 언니는 식당에 안 갔고 그냥 걸어간다고 했다고. 너무 충격적이었다. 너무 쓸데없는 거짓말을 딸이 했기 때문이다. 엄마 지금 너무 실망했는데? 왜 그런 거짓말을 하지?

그리고 집에 왔다. 딸은 유치원 친구가 자기 집에 초대한다고 초대권을 줬는데 자기가 그건 버려서 없고 그 친구네에 지금 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싶어서 유치원 친구 엄마에게 물어봤다. 그랬더니 다른 친구가 오늘 놀러 오기로 했는데 그 얘기를 하는 것 같다는 답장이 왔다. 오 마이갓. 그래서 제가 딸에게 잘 말하겠다고 하곤 딸에게 물어봤다. 그랬더니 하는 말이 초대권은 사실 거짓말이고 놀러 간다는 친구가 얘기해 줘서 알았다나. 너도 그 친구네 놀러 가고 싶어서 거짓말한 거냐고 했더니 맞단다. 그렇게 거짓말을 2 연타로 맞으니 정신이 아득해졌다. 너 왜 엄마한테 거짓말했냐고 했더니 갑자기 동생이 밉다고 어린이집에서 데리고 오지 말고 집까지 기어서 혼자 오라고 전화하란다. 헐. 엄마가 어린이집에 동생을 데리러 가면 자기에 대한 사랑이 끊어진다나? 그것과 거짓말이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나는 충격을 받았다. 동생이 9개월이 될 때까지 괜찮았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유치원 선생님한테 연락한 후, 다음날 유치원을 쉬고 놀아주기로 했다. 유치원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그 심정 잘 안다고. 많이 예뻐해 주라고 하셨다. 그리고 더 충격적인 이야기. 원래 이 나이 때는 거짓말을 한다고. 다른 아이들도 거짓말 많이 한다고 너무 충격받지 말라고 하셨다. 아. 그렇구나. 애가 셋인데도 잘 몰랐다.      

그다음 날, 딸이랑 특별한 것을 하진 않았다. 서점에 갔다가 디저트를 먹고 뜨개질 실을 사고 밖에 나가서 외식을 한 것이 끝이다. 특별한 것을 해주면 엄마가 또 해주겠지 하며 더 퇴행할까 봐 무서웠다.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난 지금. 딸이 자기부터 재워달라고 하길래 막내를 보니 혼자 자려고 가만히 눈감고 있어서 딸부터 재웠다. 그렇게 1분이 흘렀나. 막내가 잽싸게 뒤집길래 다시 똑바로 눕혀놓고 딸을 재워줬다. 주말 동안 딸은 동생이 여전히 밉고 오빠와는 여전히 숙명의 라이벌처럼 싸워댔다. 아, 외동인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세계. 이 이야기의 결말은 어떻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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