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마켓에서의 1년 (2)
이번 글에서는 당근에서 1년간 PM인턴으로 일하며 보고 배운 것을 바탕으로, 당근 PM의 업무 방식에 대해 적어보려고 한다. 같은 회사여도 직군, 계약 형태(나는 인턴이었다), 소속(팀), 재직 시기,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느끼는 바가 매우 다를 수 있기에 객관적이지 않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글을 읽어주길 바란다.
(어쩌다가 지원하게 됐는지, 어떻게 준비했는지가 궁금하다면 1편으로)
내가 입사했던 시기는 코로나가 가장 심했을 때였고, 전사 재택 중이었다. 그래서 회사가 정말 휑~했다. 입사 첫날에는 나와 나를 도와줄 사수(수평 구조라 사수라는 건 없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사수라 칭함) 뿐이었고, 다음날부터는 재택해도 된다고 해서 코로나가 나아지기 전까지 풀재택을 했다. 편하긴 했으나, 그만큼 나를 챙겨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어디나 그렇듯 당근도 리소스(인력)가 부족한 상황이었고, 겸직 중인 분들도 많으셨다. 다들 바빴기에 나를 붙잡고 친절하게 하나하나 알려줄 시간이 없었다. 첫날에 팀 노션 페이지를 공유받은 게 업무 온보딩의 거의 전부였다.
입사 다음날부터 바로 일을 받았다. 작은 것부터 내가 이런 걸 결정해도 되나? 싶은 것까지. 업무 범위는 나날이 넓어졌다. 아무도 나를 인턴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나 또한 그랬기에 오너십을 가지고 일에 몰입할 수 있었다.
이런 업무 방식은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친절하게 안내받고 인큐베이팅 기간을 충분히 가진 뒤 일을 시작하고 싶다면 잘 안 맞을 수 있다. 나는 내던져져서 부딪히고 깨지며 배우는 걸 좋아했기에 정말 즐겁게 임했다.
당근은 인턴이 할 수 있는 일에 제한을 두지 않고, 하는 만큼 얻어갈 수 있는 곳이다. 사람들이 나를 인턴으로 대하지 않으니, 나 스스로도 한계를 두지 않고 놀라운 퍼포먼스를 낼 수 있었다.
PM은 개발/디자인 빼고 모든 걸 다 한다. 하지만, 나는 초기에 디자인도 했었기에 정말 개발 빼고 모든 것을 다 했었다.
1년간 했던 일
- 디자인 개선
- 운영 정책 수립
- 이용약관 검토
- 데이터 분석
- OKR 수립
- 유저 인터뷰
- 스펙/로직 정의
- 업무 프레임 워크 만들기
- 미팅/회고
- 실험
- 팀원들이 행복하게 일할 수 있도록 잡초를 제거하는 모든 일들...
나는 6개월은 신사업 팀에서, 나머지 6개월은 두 팀 겸직을 하다가 한 팀을 전임으로 맡게 됐었다.
신사업 팀에서는 제품 초기 단계였기 때문에 유저 인터뷰나 디자인 개선, 운영 정책 세우는 일을 많이 했다.
이후 맡게 된 팀은 그로스에 집중하고 있었기에, 데이터를 바탕으로 실험과 회고를 빠르게 반복했다. 그 팀은 제품도 안정 단계에 있었고, 팀원들도 알아서 잘해주시는 분들이셨기에 감사하게도 온전히 팀을 맡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스스로 인턴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일해왔음에도 '진짜 PM'으로서 한 팀을 이끈다는 건 또 다른 일임을 깨달았다. 일하기 좋은 팀을 만들기 위해 팀원들과 1:1로 피드백도 받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OKR을 위해 몇 날을 새 빠지게 데이터만 보기도 하고, 잘하고 있나 계속 돌아보며, 커리어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많이 성장할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그 몇 개월이 인생 통틀어서 가장 소중한 것을 얻고 배운 시기였다.)
당근은 서비스 규모에 비해 구성원 수가 적다. 이 말은 즉 인당 책임이 크다는 말이다. 더군다나 당근은 BD(사업개발)나 DA(데이터분석) 직군이 많지 않아 PM에게 있어서 비즈니스나 데이터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모든 당근의 PM은 SQL을 할 줄 안다.
복잡한 분석은 데이터팀의 도움을 받기도 하나, 지속적으로 주요 지표를 트래킹 하고 관리하려면 데이터 추출과 분석 역량은 필수이다. 이런 환경 때문인지 SQL 독학을 도와줄 내부 자료도 잘 정리되어 있다. (나 또한 SQL 무지렁이로 입사하여 한 달 만에 웬만한 쿼리는 다 짤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문법이 그다지 어렵지 않고 물어볼 사람도 많고 DB도 열려있어 열심히만 하면 날로 느는 실력을 확인할 수 있다.)
PM으로서 내 하루는 대시보드를 보는 것으로 시작했다. 당시 팀은 그로스에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매일 팀의 주요 지표와 실험 지표를 확인하고 문제가 되는 부분은 없는지 체크했다.
의문이 드는 부분은 추가로 데이터를 뽑아보고 서비스를 성장시킬 수 있는 부분을 찾았다.
예를 들면, 특정 서비스에 여성 유저 비율이 매우 높을 때, 남성을 새로 유입시키면 nau를 크게 성장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운다. 이 가설을 실험으로 검증하려면, 실험 이전에 검증할 가치가 있는 가설이라는 근거가 필요하다. 그래서 데이터를 뽑아 남성들이 왜 해당 서비스를 잘 안 쓰는지 알아본다. 당근에 남성 유저가 적은 걸까? 그게 아니라면 남성들은 왜 이 서비스는 쓰지 않는 걸까? 이런 유형의 서비스에 관심이 없는 걸까? 아님 남성에게 후킹 하는 콘텐츠가 서비스 내에 없는 걸까? 이런 고민을 하며 남성들이 당근 앱에서 자주 활용하는 기능 또는 콘텐츠를 살펴본다. 당근 앱에서 남성들이 전자기기에 관심을 많이 보인다면, 해당 서비스에 전자기기 관련 소식을 전하여 남성 유저를 유입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더 구체적인 가설을 세울 수 있다.
데이터를 계속 파고들며 문제와 가설을 구체화하고, 충분한 근거가 생겼을 때 팀원들과 공유한다. 모두가 가설에 공감할 수 있을 때, 리소스를 파악하여 배포 목표일을 정한다. 그때부터 PM은 팀원들이 잘 달릴 수 있도록 모든 병목을 없애는 데 집중한다. 대시보드도 미리 만들고, 로그 정의도하고, qa도 하고, 다른 팀과 협업이 필요하다면 소통도 담당한다. 그렇게 모두 힘을 합쳐 배포한 뒤에는 결과를 보고 회고하고 후속 액션을 정한다.
구성원, 도메인, 제품의 단계, 성향에 따라 PM이 일하는 방식은 매우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당근의 PM은 공통적으로 데이터를 바탕으로 팀원 모두가 공감하는 목표로 달릴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게 PM의 역할이기에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했다.
(아마 다른 회사도 비슷할 것이라 생각한다. PM은 업무 범위가 아닌 목표가 명확히 정해져 있는 직군이기에, 그 목표를 위해 어떤 일을 하는지는 상황마다 다를 수 있다. 제품의 성장, 성공을 위해서라면 데이터 분석을 하든, 팀원을 동기부여 하든 다양한 일을 담당할 수 있다.)
많은 회사를 다녀보지 않아 비교가 어렵지만, 당근의 PM은 도움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서포팅 직군들이 있지만 인원이 적고, 다른 팀으로 분리되어 있어 대부분의 업무를 PM 혼자서 처리해야 한다. 운영도 하면서 팀원도 챙기면서 새로운 기회까지 발견하기란 쉽지 않기에, 당근 PM으로 일하는 것은 그만큼 책임이 크고 다방면으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이다.
내가 일했던 방식을 토대로 공통적인 역할을 추려내려다 보니 그냥 PM에 대한 글이 되어버렸다. 같은 조직 내에서도 사람마다 일하는 방식이나 느끼는 바에는 큰 차이가 있을 수 있으므로 참고 정도만 하면 좋을 것 같다. (나는 서포팅 직군이 많지 않아 혼자 담당해야 하는 업무 범위가 넓다고 언급했지만, 실제로 서포팅 직군과 협업을 잘하는 PM분도 계셨다. 느끼는 바에는 개인의 역량 차이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음 글은 당근의 일 방식, 조직 문화에 대해 느낀 것을 다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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