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처럼 느껴지던 운터스베르크에서의 시간들을 뒤로한 채 케이블카를 타고 지상으로 내려왔다. 나의 다음 행선지는 헬브룬 궁전(Hellbrunn Palace)이었다. 헬브룬 궁전에 가려면 운터스베르크에 올 때 탔었던 25번 버스를 타고 되돌아 가서 헬브룬 역에 내리면 되었다.
25번 버스 노선표
혼자 다니는 뚜벅이 여행이었지만 잘츠부르크는 버스가 잘 되어 있어서 큰 어려움이 없었다. 잘츠부르크 카드를 이용해 버스들을 제한 없이 탈 수 있었고 관광지들도 무료로 입장해 편리했다.
25번 버스에 올라 헬브룬 궁전으로 향하는 길, 잘츠부르크에서의 하루가 이제 거의 다 지나버렸다는 생각에 아쉬워지는 오후였다. 지나간 여행의 기억들과 앞으로 다가올 여행에 대한 생각으로 머릿속은 가득 찼고 어느새 헬브룬 궁전역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 사람들을 따라 걸어가니 노란빛 헬브룬 궁전이 나타났다.
내가 제일 먼저 향한 곳은 매표소이다. 헬브룬 궁전의 가장 큰 재미는 물의 정원 가이드 투어라고 들었다. 가이드 투어는 정해진 시간마다 시작해서 표를 구매할 때 미리 투어 예약을 해야 했다.
잘츠부르크 카드를 보여드리니 입장권을 받았고 투어 예약도 함께 할 수 있었다. 가장 빠른 투어 시작 시간이 12시 45분이어서 예약한 뒤 조금 기다렸다가 바로 투어에 참여했다.
헬브룬 궁전(Hellbrunn Palace)은 1616년 잘츠부르크 대주교 마르쿠스 지티쿠스가 여름 별궁으로 만든 것이다. 처음 마주한 헬브룬 궁전의 모습은 여태 보았던 궁전들과는 다르게 화려하지 않았다. 단지 선명한 노오란 빛깔이 눈에 띄었을 뿐 궁전이라는 말을 듣지 못했다면 궁전인 줄 모를 만큼 평범했다.
듣던대로 이곳의 아름다움과 참 재미는 물의 정원에 있었다. 대주교는 오락을 위해 헬브룬 궁전에 트릭 정원을 만들었다. 정원 곳곳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는데 언제 튀어 나올지 모르는 물 때문에 나도 모르게 신경을 잔뜩 곤두새우고 들어갔다.
하지만 가이드를 쫓아다니며 여러 이야기를 듣다 보니 긴장은 사라지고 잠깐 방심했다.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물을 맞아서 청바지를 입고 갔었는데 거의 다 젖어 버렸다. 축축한 바지가 좀 불편했지만 유쾌한 경험이었다.
종유석이 가득해 보이는 동굴 같은 공간에 대리석 조각들이 세워져 있었다. 무척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님펜부르크 정원에서 보았던 예배당이 생각났다.
귀여운 인형극장, 100여개가 넘는 인형들이 정원에 있는 물의 동력을 이용해 움직인다. 하지만 이 인형극장에 정신을 뺏겨 방심하면 곧 물을 맞게 된다.
조그만 꼬깔모자 같은 녀석이 물줄기를 받아 로켓처럼 위로 솟아 올랐다. 구경하던 아이들은 이 광경을 보고 신나서 어쩔 줄 몰라했다. 꼬깔 모자는 왕관을 나타내는데 솟아 오른 모자는 하늘까지 닿는 권력의 힘을 표현한 것이라 한다.
재미난 가이드 투어가 끝나고 이제 헬브룬 궁전 안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가는 길 호수 같이 넓은 못을 지나게 되었다. 귀여운 오리들이 유유자적 물 위를 떠다니고 있었다. 나는 못 근처 벤치에 앉아서 잠시 일기를 쓰며 쉬었다.
곳곳에 세워진 대리석 조각들과 사람의 손을 타서 잘 정돈된 듯한 꽃과 나무들, 그리고 푸르른 잔디는 유럽 여행와서 자주 보게되는 정원의 모습이었다.
정원을 지나서 헬브룬 궁전 안으로 들어갔다. 많은 것들이 전시되어 있었지만 독어를 모르니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이해하기는 힘들었다. 그냥 한 번 쓰윽 훑어보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헬부른 궁전은 대주교가 유희를 위해 지은 여름 궁전이라는데 그래서 그런지 내부에는 화려한 뮤직 룸과 댄싱 홀이 있었다. 이탈리아 화가가 그렸다는 그림들이 천장과 벽면에 가득했다.
댄싱 홀 가운데에 편안해 보이는 소파가 놓여 있었다. 이 때 즈음 나는 녹초가 되어 버려서 소파에 거의 눕듯이 기대어 쉬었다.
배낭을 계속 메고 다녀서 그런지 어깨가 너무 아팠다. 헬부른 궁전 내부를 돌아볼 때는 내 몸이 너무 힘들어서였는지 별 감흥이 없어 조금 있다가 바로 나왔다. 얼른 숙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내 머릿속이 가득찼다.
밖으로 나와 벤치에 잠깐 앉아서 휴식을 취했다. 일기장을 꺼내 글을 끄적이며 오늘 하루를 정리해 보았다. 아침부터 빠릿빠릿하게 많이도 돌아 다녔다. 미라벨 정원부터 운터베르크를 거쳐 헬브룬 궁전까지.
내가 타고 왔던 25번 버스를 타고 숙소에 돌아 가려니 여태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해서 너무 힘들겠더라. 혹시나 해서 구글 지도로 숙소로 돌아가는 길을 검색해 보니 170번 버스를 타라는 안내가 나왔다. 이 버스를 타기 위해 또 한참을 걷고 걸었다. 네버엔딩 뚜벅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