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찾은 제주,
내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이라 그런지 올 때마다 포근하고 정겨운 기분이 든다.
이맘 때 즈음이면 오라동에 하얀 메밀꽃이 가득 피어난다길래 찾아가 보았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찾은 주소는 오라2동 산 76.
주소가 뭔가 쌩뚱맞은 느낌이라 도착할 때까지도 정말 이곳이 맞을지 괜히 걱정되었다.
그러나 북적이는 사람들, 엄청난 수의 자동차들을 보니 알맞게 잘 찾아왔다 싶었다.
흙먼지 날리는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차에서 내렸다.
밖으로 나오니 아주 조금씩 비가 내리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보니 하늘은 흰 구름으로 꽉 막혀있었다
왠지 모르게 퀴퀴한 느낌이 나는 것이 심상치 않은 날씨였다.
아니나 다를까 꽃밭으로 가는 와중 빗방울은 조금씩 더 거세졌다.
장터 곳곳에서는 싸구려 비닐 우산을 팔고 있었다.
우산을 살까 말까 고민이 되더라.
문득 집에 엄청나게 쌓여 있는 비닐 우산들이 떠올라 사지 않는 것으로 결론!
에잇, 비 조금 맞으면 어때!
그냥 가자 결심하고 메밀꽃밭으로 향했다.
손톱만치 조그만 수많은 꽃들이 하얗게 대지 위를 채웠다.
그리고 하얀 꽃바다 위로 하얀 구름으로 가득찬 하늘!
온 세상은 하얗게 변해 있었다.
메밀꽃밭 너머로는 제주 시내 전경이 쭈욱 펼쳐졌다.
그리고 먼 시야로 산과 바다가 어른어른거렸다.
조그만 흙길이 군데군데 나있었는데 그 길을 따라서 한도 끝도 없이 걸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길을 따라 끝가지 가면 멀리 보이는 제주 시내, 산과 바다까지 닿을 것만 같았다
거세질 것만 같던 비는 어느새 그쳤다.
축축한 흙냄새 풍기는 땅을 사박사박 밟고 천천히 걸었다.
비에 젖은 세상은 상쾌한 풀향기로 가득했다.
사유지이니 꽃을 함부로 꺾지 말아달라는 메시지가 적힌 팻말이 있었다.
오라 메밀꽃 축제는 어느 농업법인이 제주도 메밀에 대해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한 것이라고 한다.
'메밀'하면 보통 강원도를 떠올리지만 제주도도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메밀 산지라고 한다.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났기 때문에 오래 전부터 제주도에서는 메밀을 재배했었다.
이런 고마운 제주 메밀이 덜 알려진 것이 못내 아쉬우셨나보다.
사람들이 많이 헤집고 다녀 메밀들이 상할텐데도 이렇게 메밀밭을 개방해 주신 것에 너무 감사했다.
시간이 많았다면 이 곳에서 몇시간이고 흙길을 걸으며 아름다운 풍경에 취할 수 있었을텐데!
아쉽게도 이 날은 비행기를 타러 가야했기 때문에 적당히 둘러보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메밀을 수확하고 나서는 청보리를 파종한다고 들었다.
봄이면 이 넓은 땅이 푸른 보리 물결로 가득할 터이다.
다음 봄과 가을을 기약하며 아쉬운 발걸음으로 돌아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