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바다를 느끼러 떠난 2박 3일 삼척 여행
겨울 바다를 느끼러 삼척으로 떠나다
추운 겨울에 머나먼 강원도로 여행을 간다는 것은 생각조차 못했던 일이다. 너무 멀기 때문이기도 하고 위로 올라가면 추위가 더 매서울 것 같았다.
바다가 보고 싶다면 포항, 부산, 거제로 가는편이 나았다. 대구에 와서 살게된 이후로는 이곳들이 꽤나 가까워 당일치기로 다녀오는 것도 가능했다. 서울에 살 적에는 엄두도 내지 못했었는데 말이다.
뺀질나게 남쪽을 돌아다닐 수 있다는 점에서 대구에서의 타향살이도 은근 괜찮은 구석이 있다. 하지만 득이 있으면 실이 있는 법! 남쪽은 가까워졌지만 북쪽은 멀어졌다.
서울에서 부산이나 거제로 여행가기는 어려웠지만 강원도 가기는 수월했다. 반대로 대구에 와서는 강원도가 너무 멀어 가기 어려웠다.
그런데 우연찮게도 삼척 쏠비치 호텔에 묵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머나먼 강원도 삼척까지 오게 되었다. 아무런 기대없이 왔는데 생각보다 너무 좋았던 여행이었다. 하루하루 지나가는게 아쉽더라.
삼척 쏠비치 호텔&리조트
2박 3일간 머물렀던 삼척 쏠비치 호텔&리조트.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내리자마자 새파란 바다가 보였다. 그리고 솟아오른 촛대바위! 화사한 푸른 바다 위에 우뚝 서있는 촛대바위가 삼척에 잘왔다고 내게 인사하는 듯 했다.
시원한 바다 풍경에 가족 모두가 구름 위에 두둥실 떠오른 듯 기분이 좋아져 입가에 웃음꽃이 가득했다. 얼른 호텔 방에 짐을 두고 촛대바위를 보러 나오자며 서둘러 객실 안으로 들어갔던 기억이 난다.
객실문을 열고 들어가 커튼을 걷어내니 창 너머로 보이는 아름다운 바다! 그 모습에 마음을 흠뻑 뺏겨 우리 가족 모두 한동안 객실을 벗어나지 못했다. 넓고 쾌적한 공간에 창밖으로는 아름다운 풍경이 가득하니 2박 3일 내내 숙소에만 있어도 좋을 듯 싶었다.
특히 좋았던 것은 창 너머로 바다가 보이는 욕실이었다. 눈 앞에 푸른 바다를 두고 철썩이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반신욕을 하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뜨끈한 물에 몸을 담그고 땀이 날 즈음에는 창문을 열어 차가운 공기를 흠뻑 마셨다. 온 세상 근심은 저 멀리 사라지고 행복만 남았다.
틈날 때마다 테라스로 나가 시원한 바람을 느껴보았다. 잔잔하게 모래를 적시는 파도, 그 주위로 하얀 외벽에 파란 지붕을 얹은 리조트 건물들이 보였다. 그리스 산토리니를 본 따 만들었다고 하는데 산토리니에 가보지 않았으니 비교할 수가 없었다. 그저 아름다운 풍경에 온 정신을 빼앗길 뿐! 철썩이는 파도소리와 바람소리가 귀를 울리고 눈 앞의 풍경은 비현실적이게 느껴졌다.
겨울 여행을 따뜻하게 만들어준 화창한 날씨
여행에서 날씨는 참 중요하다. 특히 추운 겨울, 비라도 내리거나 날이 흐려 바람이 거세게 불면 밖으로 한발자국도 내딛기 싫다. 다행스럽게도 이번 여행 내내 날씨가 화창했다.
짙푸른 바다와 구름 한 점 없는 쨍하게 파란 하늘에 더해진 강렬한 태양! 지금이 마치 한여름인양 느껴지게 했다. 피부에 와닿는 공기는 차갑지만 눈으로 보이는 풍경은 시원하면서도 따뜻했다.
한겨울 밖에 나와 야외 테이블에 앉아 따뜻한 커피를 마시는데 전혀 춥지 않았다. 두껍게 껴입은 옷 때문일 수도 있지만 강렬한 태양 덕분이기도 했다. 하얀 벽, 하얀 테이블과 하얀 의자는 푸른 하늘 아래에 있으니 더욱 돋보였다.
그리스 산토리니에 있다는 하얀 종탑이 쏠비치 광장에도 자리잡고 있다. 아치 사이로 새파란 바다가 보였다. 자를 대고 그은 듯 아름다운 직선 위 아래로 하늘과 바다가 나뉘었다. 이 묘한 파란빛과 하얀빛의 조합은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나보다. 소원의 종탑이라 불린다던데 그 이름을 들으니 괜시리 신성해보이기까지 한다. 소원을 빌면 정말 이뤄주려나?
개와 늑대의 시간
어둠이 빛으로 바뀌고 빛이 어둠으로 바뀌는 이 오묘한 시간. 프랑스에서는 이 시간을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 부른다. 멀리 비치는 그림자가 나를 반겨주는 개의 것인지 나를 해치려는 늑대의 것인지 구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삼척 여행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들은 개와 늑대의 시간에 마주하게된 세상이었다.
이른 새벽 어스름에 눈을 떠보니 창문 너머로 여명이 떠올랐다. 수평선 근처는 붉게 타올라 하늘빛이 신비롭게 변해갔다. 잠이 홀딱 깨서 얼른 옷을 추려입고 창을 열고 테라스로 나갔다.
붉은 빛은 하늘로 바다로 멀리멀리 뻗어나갔다. 수평선을 바라보는데 해는 떠오를 듯 말 듯 애간장을 태웠다. 잔잔히 치는 파도소리만 들려올 뿐, 온 세상이 참 평화로워 보였다.
구름을 넘어 해가 뜨고 짙은 태양빛이 바다 위를 비춰 붉은 길을 열었다. 일출은 언제 보아도 감명깊다. 높은 건물들로 빽빽한 도시생활 속에서 뜨고 지는 해를 보기란 쉽지 않다. 또 대부분의 시간을 회사에 앉아있으니 시간의 변화를 느끼기가 힘들다. 그래서 더욱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장면들일까?
삼척 여행을 온 첫날에는 시간이 늦어진 터라 해질녘 쏠비치를 돌아보게 되었다. 산토리니 광장으로 가서 소원의 종탑과 조각상을 구경했다.
해가 거의 저물어갈 무렵이었다. 반대쪽 산 너머로 기우는 태양이 보였다. 기우는 태양은 온 세상을 따뜻한 빛으로 물들였다. 하얀 것들은 모두 분홍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긴 그림자가 나를 쫓아다녔다.
온 세상이 붉게 물들어 아름다워지는 이 시간을 나는 무어라 부르는 것이 좋을까? 이름을 지어주면 더욱 특별해질 것만 같다. 개와 늑대의 시간처럼.
삼척 추암리 마을 촛대바위
쏠비치에 머무르면서 삼척의 이곳 저곳을 다녀왔다. 먼저 첫날 들렀던 촛대바위. 쏠비치 호텔 건물 바로 옆에 자리잡고 있다. 여행 첫날 호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리자마자 보았던터라 인상이 깊은 곳이다. 객실 방 테라스에서도 촛대바위가 보여서 여행 내내 함께하는 기분이었다.
쏠비치 산책로를 따라 내려가면 촛대바위가 잘 보이는 추암 해변이 나타난다. 해변에 서서 나를 삼킬듯이 밀려오는 파도를 바라보았다. 모래가 아주 고와서 발이 쑥쑥 들어갔다.
이곳은 유명한 해돋이 명소라고 한다. 객실 방 창문 너머로 일출이 보이니 이번 여행 때는 굳이 나가보질 않았었다. 다음에 삼척 여행을 오게 되면 촛대바위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한 번 보아야겠다.
이 촛대바위에는 내려오는 전설이 하나 있다. 어느 어부에게는 정실부인과 첩이 있었는데 둘이 하도 싸우는 통에 하늘이 노하여 두 여인을 데려갔다. 어부는 상심에 빠져 망부석처럼 서있다가 돌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눈앞에 보이는 기암괴석과 전설은 매치가 되지 않았다. 그저 자연의 신비로움에 놀랄 따름이었다. 큰 암석이 저렇게 촛대 모양이 되기까지 수없이 많은 파도가 쳤을 것이다.
거대한 석회 동굴, 삼척 환선굴
쏠비치에서 한시간 정도 차를 타고 달려서 갔었던 환선굴. 5억년 전에 생겼다는 엄청난 규모의 석회암 동굴이다. 추운 겨울 동굴 안으로 들어가면 오히려 따뜻했다. 동굴 안은 4계절 내내 온도가 10~15도씨로 일정하기 때문이다.
넓다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매표소에서 환선굴 입장표를 끊은 뒤 모노레일 정거장으로 향했다. 환선굴 입장표와 모노레일 탑승권은 따로따로 구매해야 한다. 모노레일 정거장에 도착해 왕복 7천원짜리 모노레일 탑승권을 끊고 하행선 모노레일이 올 때까지 조금 기다렸다.
모노레일에 오르고 난 뒤 10분도 채 안되어 환선굴 입구에 도착했다. 높은 경사 때문에 은근히 무서웠다. 모노레일을 타고 산 위로 올라가면서 멀리 보이던 거대한 암산이 점점 가까워졌다. 이 높은 곳에 거대한 동굴이 있다니 신기했다.
입구에서부터 천천히 동굴을 다 돌아보고 나올 때까지 대략 1시간 30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생각보다 규모가 훨씬 크고 볼거리가 많았다. 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똑똑똑 떨어지는 물방울들이 모여 석회암을 신비롭게 조각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을까? 인간으로서는 감히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이다. 그 시간 앞에 서니 내 자신은 한없이 작아졌다.
환선굴로 가는 길에 많은 식당들을 보았다. 경험상 산 근처에 있는 식당들 치고 맛없는 집이 없더라. 때문에 별다른 고민 없이 깨끗해 보이는 식당에 곧장 들어갔다. 결과는 대성공! 산채정식과 감자전, 메밀전을 시켰는데 저렴하고 양도 푸짐하고 무엇보다 맛있었다.
환선굴 운영시간
하절기(3월~10월) : 08:30~17:00
동절기(11월~2월) : 09:00~16:00
환선굴 입장요금 : 어른 4500원, 청소년 2800원
환선굴 모노레일 : 어른 7000원, 청소년 3000원(왕복기준 요금)
한국의 나폴리라 불리는 삼척 장호항
삼척에는 한국의 나폴리라 불리는 유명한 곳이 있다. 바로 장호항이다. 여름이면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스노쿨링을하고 카약을 탄다고 한다. 겨울에 이 곳을 찾아와 엑티비티는 체험할 수 없었지만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장호항의 바다색은 특별히 아름다웠다. 맑고 얕아서 그런건지 바다 밑의 돌들이 보였다. 짙은 파란색 뿐만 아니라 여러 푸른빛들이 뒤엉켜있었다. 날도 좋아 햇살이 바다 위에서 잘게 부서졌다. 따뜻한 풍경이었다.
장호항 바다의 아름다운 빛깔 말고도 기억에 남는 것은 엄청난 수의 갈매기들이다. 사람들이 주는 새우깡을 먹으려고 기다리고있는 것이다. 새우깡을 던져줄 때마다 갈매기들이 달려들었다. 곳곳에는 새똥의 흰 자국들이 가득했다. 이렇게 길들여진 갈매기들을 보니 마음 한구석이 씁쓸했다. 그래도 새우깡이 없었으면 이런 진풍경은 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근처에 삼척 케이블카를 타는 곳이 있었다. 여름이 되면 줄을 서서 기다린 뒤 케이블카를 탄다고 들었다. 우리 가족은 충분히 장호항을 구경한 것 같아서 케이블카를 타지 않았다. 다만 장호항을 떠나며 커피 한 잔을 하고 싶었는데 근처에 카페가 없어서 애먹었던 기억이 난다.
안녕 삼척! 여름에 또 보자!
대구로 돌아가는 길, 시외버스를 타고 영덕과 울진, 포항을 거쳐 동대구까지 갔다. 해안선을 따라 대구로 돌아오는 내내 삼척 바다가 무척 그리웠다. 여름에 다시 삼척을 찾을 날을 고대하며, 삼척여행을 끝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