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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NA Oct 29. 2017

안동, 옥연정사(玉淵精舍)에 머무르다.


하늘은 파랗고 햇살은 따사롭다.

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면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여행하기 좋은 어느 가을날, 안동으로 떠났다.



문경 휴게소에서 간단히 배를 채운 뒤 차를 타고 네비게이션을 따라 한시간여를 더 달렸다.

한산하고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깊숙한 곳으로 운전해 갔다.

어둠이 짙게 깔린 밤에 도착한 옥연정사(玉淵精舍).



서애 류성룡 선생의 직계 후손이라는 주인 아저씨의 안내를 받아 방으로 들어갔다.


우리가 들어간 방은 세심재(洗心齋)의 왼쪽방이었다.


마음을 씻고 닦는다는 의미의 세심재는 서애 선생께서 서당으로 쓰신 곳이라 한다.



끼이익 나무 부대끼는 소리가 나는 문을 열었다.

하얀 한지로 곱게 도배된 방 안은 군더더기 없이 정갈했다.

우선 짐을 풀어놓고 간단한 세면도구 몇가지를 챙겨들어 세심재 바깥에 있는 욕실로 향했다.


한옥에 머무른 적이 몇 번 있었는데, 대부분 현대에 와서 민박용으로 지어진 것들이라 화장실은 안에 딸려 있었다.


반면 오래된 고택인 이 곳은 화장실이 안에 있지 않아 조금은 불편했다.

하지만 나가고 오며 보는 늦은밤 고택의 모습이 무척 아름다워 그저 좋았다.


어릴적 외할머니 댁에 놀러갔을 때 멀리 떨어져 있던 재래식 화장실이 무서워 뒷뜰에서 볼일을 해결하곤 했다.


그 때 추억이 어렴풋이 떠올라 괜히 이 상황이 정겹기도 했다.



따뜻한 물에 몸을 깨끗하게 씻고 방 안으로 돌아왔다.

오늘의 야식 메뉴는 소반 위에 올려져 있던 잘익은 홍시, 그리고 오는 길에 차를 잠깐 멈춰 세우고 사온 가마솥에 푹 익힌 옥수수!


맛나게 홍시와 옥수수를 먹고 이제 정말 늦은 밤이 찾아왔다.

그냥 잠들기는 아쉬워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컴컴한 밤, 대나무 숲을 옆에 끼고 평평한 흙길을 지나왔다.

고개를 들어 올리니 하늘에 별들이 가득했다.


눈은 금새 어둠에 적응했고 더 많은 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짙푸른 바다에 은모래를 뿌려놓은듯  반짝이는 별들, 우리는 아름다운 밤하늘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낙동강변에 홀로 서있던 나무 한 그루.


일전에 안동으로 여행왔을 때 보았던 나무였는데 이렇게 또 우연히 만나게 되니 운명처럼 느껴졌다.


삼각대를 단단히 세우고 카메라를 고정시켜 이 날의 밤하늘을 담았다.

그리고 또 다시 보게된 나무 한 그루도 함께...



다음 날 아침, 따사로운 햇살이 고택에 스며들었다.


하얀 고무신을 신고 옥연정사를 한바퀴 둘러 보며 아침 산책에 나섰다.



담 너머로 낙동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어젯밤 어두워서 보지 못했던 고즈넉한 풍경들이 이제는 선명하게 보였다.

맑은 새소리가 귓가에 와닿고 공기는 시원하니 참으로 상쾌했다.



옥연정사에는 오랜 세월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아온 소나무 한 그루가 있다.


400여년이 넘는 시간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소나무이다.

이 소나무는 시대를 거슬러 수많은 사람들의 기억이 되었겠지?



대문을 열고 나와 어젯밤 걸었던 길을 다시 걸어 본다.



다시 찾은 낙동강변의 나무 한 그루.

밤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었지만 물안개과 아침햇살 덕분인지 여전히 신비로운 모습이었다.


왠지 안동 여행 때마다 이 곳을 찾게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책을 마치고 세심재로 돌아왔다.

방 문을 열어두고 들려오는 새소리를 들으며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셨다.

고요한 고택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바람소리와 새소리, 물소리, 간간히 울리는 닭 울음 소리 뿐이었다.

네모난 창 너머 고택 풍경을 바라보며 일기를 끄쩍였다.



아주머니께서 아침을 먹으러 건너오라고 하셨다. 

진해진 출출함에 분주하게 밖으로 나섰다.


된장이 들어간 배춧국과 호박전, 고등어 구이, 멸치볶음 등등...


집밥 느낌이 나는 소박하고 정갈한 음식이었다.


무엇하나 엄청 특별하지는 않았지만, 왜이리 맛있었던 것일까?



그릇들을 싹싹 비우고 따뜻한 보리차로 입가심을 했다.


아주머니는 텅빈 그릇들을 보고 놀라우면서도 내심 흐뭇하신 듯 했다.

반찬을 좀 더 달라고 할 것이지 왜 이리 그릇들을 다 비웠냐고 하시며 큰 웃음을 보이셨기 때문이다.

정말 맛있게 잘 먹었다고 인사를 드리고 방을 나왔다.



배를 채우고 세심재 뒷편으로 난 길을 따라 걸어보았다.

문을 열고 나가면 아름답게 자라난 소나무 한 그루를 볼 수 있다.


그 앞으로는 낙동강이 고요히 흐르고 있고 하회마을 만송정 숲이 한눈에 보인다.


나룻배를 타고 낙동강을 건너오는 사람들은 이 길을 따라 옥연정사를 찾아오는 듯 싶었다.



옥연정사를 한바퀴 둘러보고 부용대까지 올라갔다가 방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니 체크아웃 시간인 11시까지 남은 시간이 별로 없어서 너무 아쉬웠다.

짐을 꾸리고 쉬며 하다가 시간 맞춰 고택을 나왔다.


늦은밤부터 시작 되었던 옥연정사에서의 아쉬운 하루가 끝났다.


다음번에는 체크인 시간에 맞춰 와 오랫동안 머무르다 가야지 다짐해본다.


우리는 주인 아저씨께서 충효당 안채를 소개시켜주신다기에 하회마을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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