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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NA Feb 05. 2018

빈 시립공원에서 즐거운 아침 산책

8시 30분에 알람을 맞춰 놓고 잠들었는데 그 전에 일찍 눈이 떠졌다. 일어나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옆 자리에 모셔둔 토끼인형 바람이와 인사를 나눴다. 긴 여행기간 동안 타국의 호텔방 안에서 매일매일 혼자 잠들다보면 갑자기 아무 이유도 없이 무서워지는 순간이 종종 있었다. 옆에 인형이라도 두면 괜시리 위안이 되었다.


어젯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사온 샐러드를 먹으며 라디오 스타를 봤다. 한국 예능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여기는 머나먼 타국 땅이 아니라 한국 어딘가일 것이라는 그런 착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거리로 나섰다.


빈 시립공원에 들어선다
푸릇푸릇한 시립공원


나의 첫 행선지는 빈 시립공원 (Stadtpark). 9월 오스트리아 빈은 조금 추웠다. 흰 경량패딩을 안에 껴입고 청자켓을 걸쳤다. 목도리도 꾸역꾸역 가방 안에 챙겨 놓고 빈 서역으로 향했다. 매표 기계에서 13유로를 주고 48시간 비엔나 교통 티켓을 구입했다. 이 티켓을 이용하면 48시간 동안 자유롭게 빈의 지하철과 트램을 탈 수 있다.


비둘기들의 낙원
어딜가나 비둘기가 보인다


빈 서역에서 U3을 타고 Stubentor역에서 내렸다. 구글 지도를 보면서 빈 시립공원까지 잘 찾아왔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공원 안은 적막했다. 오늘 가보려고 계획해둔 훈데르트 바서 하우스(Hundertwasser House) 개장시간이 10시였기 때문에 그 전까지 이곳에서 여유롭게 아침 산책을 하며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푸른 나무 이파리들과 차가운 바람, 초록빛 못과 그 위로 잔잔하게 뜬 반영이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제일 기억에 남는 명장면은 엄청난 수의 비둘기 떼다.


비둘기 떼에 이어 오리도 합세
잎파리 무성한 나무들로 우거진 못


비둘기들이 잔디밭에 고개를 박고 뭔가에 열중이었다. 아마도 먹이를 찾고 있나보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도 비둘기들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 사람 따위는 신경쓰지 않는 쿨한 비둘기들이었다. 이곳은 인간을 위해 인간이 만들어낸 공원일테다. 하지만 진정한 주인은 이 비둘기 녀석들 같다.


유유자적 오리 식구들
적막한 시립 공원


못 위로는 오리들이 가득했다. 우거진 버들나무 밑으로 유유자적 거니는 오리들의 모습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내 기분은 평화로움에 푹 잠겼다. 아무런 걱정 없이 오리들은 현재에 충실하며 사는 것 같았다. 내가 바라는 삶은 이런 삶인데, 현재 행복에 충실하게 사는 삶 말이다. 그런데 그런 삶은 말처럼 쉽지가 않았다.





시립 공원에는 많은 명사들의 동상들이 있다. 그 동상들을 찾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특히 인기가 많은 동상은 요한 슈트라우스의 황금빛 동상이 아닐까? 아름다운 꽃들로 장식되어 있는 멋드러진 조각이었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 황금 동상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를 들으며 조용히 동상을 바라보았다. 금빛으로 물든 조각상이 살아 움직이며 바이올린 연주를 하는 듯 했다. 나는 왈츠 선율에 맞춰 발걸음을 움직였다. 춤을 추는 듯한 기분으로 공원 길을 걸으니 몸이 깃털처럼 가볍게 느껴졌다. 적막한 아침이니 음악이 내 뇌속까지 쩌렁쩌렁 울리는 듯 했다.


공원 가장자리
하얀 석재의 다리와 구조물


한국에서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가 무척 힘들었다. 그리고 잠에서 깨면 항상 피곤했다. 언제쯤 잠에서 깨면 개운함이란 걸 느껴볼까 생각했었다.

여행을 다니는 중에는 이른 아침에 눈이 절로 떠졌다. 절로 눈이 떠져서 내 의지로 일어나면 온 몸이 개운했다. 이른 아침 공기를 마시며 공원 산책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를 시작으로 내가 좋아하는 음악들을 연달아 들었다. 여행 내내 가졌던 긴장의 고삐가 풀렸다. 음악에 내 몸을 싣고 가볍게 걸었다.



음악을 들으며 가다가 행여라도 날치기를 당할까 염려되어 어느정도의 긴장감을 품고 다니려 노력했다. 되돌아 보니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몇몇 도시를 제외하고)

사람들의 걱정어린 말들을 너무 많이 들었던 탓일까? 하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그 덕분에 여자 혼자 뽈뽈거리며 무사히 유럽 여행을 잘 다녔으니 말이다. 이제 시립 공원을 지나 훈데르트 바서 하우스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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