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트램에 올라 탔다. 그러다 어느 역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길래 얼떨결에 내렸다. 바보! 내리려던 곳에 내렸으면 될 것을 괜히 불안한 마음에 사람들을 따라서 내려버렸다.
목이 말라서 일단 dm을 찾아 들어갔다. 물 하나를 산김에 저녁에 먹으려고 망고 쥬스도 사고 덩달아 필요했던 샴푸랑 치약도 샀다. 가방 속에 꼬깃꼬깃 구겨 넣고서 다시 출발했다.
DM 마트 근처에 지하철역이 있었는데 한 정거장만 더 이동하면 뮤지엄스 콰르티에(Museums Quartier)역이었다. 이 역사 근처에는 여러 전시관들이 있었다. 레오폴드 뮤지엄, 자연사 박물관(Museum of Natural History Vienna), 무목(MUMOK:Museum of Modern Art Ludwig Foundation) 등등. 나는 그 중에서도 레오폴드 뮤지엄(Leopold Museum)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오스트리아의 화가인 에곤 쉴레의 작품이 가장 많다고 알려진 곳이라 와보고 싶었다. 에곤쉴레 그림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한번쯤은 직접 보고 싶었다.
날씨는 왜 이렇게 꾸리꾸리한 것일까? 오스트리아 빈에서는 항상 이런 날씨였다. 내일까지 빈에 머무르는데 하필 레오폴드 뮤지엄 휴관일이 내일인지라 힘들고 무리 아닐까 싶었지만 찾아왔다.
매표소에서 13유로짜리 티켓을 구입한 뒤 급하게 전시관 안으로 입장했다. 티켓을 살펴보니 내가 4시 36분에 티켓을 구입했다고 표시되어 있었다. 뮤지엄 개장 시간이 6시까지여서 여유롭게 관람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했다. 전시관 안으로 들어가 중간쯤 봤을 즈음에 곧 문을 닫는다는 방송이 나왔다. 그래서 허겁지겁 보았던 기억이 난다.
오스트리아의 조각가이자 화가인 허르베르트 보클(Herbert Boeckl)의 작품들. 색감이 독특해서 기억에 남았다. 묘하게 이끌리는 빛깔. 이리저리 붓을 휘둘러서 마구 칠한 것 같다가도 선들이 인물을 감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에른스트 슈퇴르(Ernst Stöhr) 'Paar am See:Couple by the Lake'.
어느 호숫가 아마 해가 질 무렵이었을 것 같다. 두 연인은 난간에 기대어있다. 몸은 서로에게 향해있다. 서로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그림을 보는데 마음이 따뜻해졌다. 나도 저 그림 속 장면의 주인공이었을 때가 있었던 것 같다. 추억 속 오래된 감정들이 떠올라 가슴이 뭉클해졌다.
오스트리아 화가 오스카 코코슈카(Oskar Kokoschka)의 'Dolomite Landscape: Tre Croci'.
이탈리아 돌로미티 산맥을 그린 작품이었다. 겹겹히 쌓인 산들은 빙하를 머금고 있어 푸르스름했고 하늘에 뜬 태양은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초록으로 물든 세상, 바라보면 기분이 상쾌해지는 풍경화였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작품은 구스타프 클림트의 'Tod und Leben:Death and Life'. 죽음을 표상하는 이미지는 아마도 왼편의 해골녀석일테지. 그 오른편은 역동적이며 찬란하게 타오르는 생명의 이미지였다. 안겨있는 아기와 엉켜있는 사람들에게서 사랑이 느껴졌다.
삶은 곧 죽음이다. 누구나 태어나면 죽게되어있다. 사람들의 표정은 행복에 잠겨있다. 그들에게는 두려움이 보이지 않았다.
해골녀석은 사람들을 보며 무엇을 골똘히 생각하는 것일까? 그에게도 삶이 있었을테다. 지난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일 수도 있다. 살아있었을 때의 추억들. 한번뿐인 삶을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할까? 죽음이 두렵지만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니 덜 무섭다.
벨베데레 궁전에서 보았던 클림트의 키스, 유디트 그리고 제체시온에서 보았던 베토벤 프리즈. 이 모든 작품들보다 더 강하게 뇌리에 남았던 클림트의 작품이었다.
에곤쉴레(Egon Schiele)의 작품들. 작품 속의 인물들의 시선이 모두 작품을 바라보는 사람에게 향해있었다. 계속 그림을 바라보기에 좀 부담스러웠다. 그리고 어두웠다. 어둡고 기괴한 기분이 느껴졌다. 그의 그림들은 전혀 내 취향이 아니지만 그래도 기괴함에 눈이 가게 되었다. 기분이 묘했다.
시간이 별로 없어서 4층을 먼저 후다닥 보고 내려오면서 그림들을 구경했다. 뮤지엄 샵에서 인상 깊었던 작품 위주로 엽서를 구입했다. 음울하게 느껴지던 에곤쉴레의 작품과 클림트의 작품이 담긴 엽서를 잡아 들었다. 하, 이날 하루는 모든 기력을 다 소진해버린 것 같았다. 이제 저녁을 먹으러 가야지. 힘을 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