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시에 알람을 맞춰두었는데 그 전에 눈이 떠졌다. 평소에는 그렇게도 어려웠건만 유럽여행 중에는 매번 아침 일찍 절로 눈이 떠지니 신기하다. 하루이틀 계속 그렇게 내 몸은 일찍 깨고 있었다. 이제 익숙해질법도 한데 계속 신기했다. 캐리어에 짐을 차곡차곡 싸고 내 방을 나왔다.
3일동안 머물렀더니 은근 정이 들었다. 처음에는 이 방이 차갑게 느껴졌었다. 하얗게 도장된 벽과 천장, 하얀 철제 프레임의 침대, 하얀 책상과 문 위에 달린 십자가 등 인테리어 때문에 그랬다. 그런데 깔끔하고 와이파이도 잘 터졌고 침대가 푹신푹신 너무 편안했기에 만족스러웠던 곳이었다.
캐리어 이끌고 나와서 체크아웃을 했다. 캐리어는 처음보타 훨씬 무거워져서 두 손으로도 들기가 어려웠다. 빈 서역으로 가니 공항버스가 딱 보이길래 미리 짐칸에 짐을 실어두었다. 그러고는 급히 빈 서역 안으로 들어가 샌드위치를 하나 사가지고 왔다.
오전 9시 10분에 출발하는 공항 버스였다. 요금은 8유로. 버스를 타고 편안하게 빈 국제공항까지 잘 왔다. 오는 길에 이 티켓(E-ticket)을 살펴보니 내 파리행 티켓의 항공사는 에어프랑스(Air France)였다. 에어프랑스는 터미널1이라길래 그리로 향했다. 그리고 에어프랑스 셀프 체크인 기계를 찾아 체크인을 하려는데 아무리 시도해도 안되더라.
데스크에 문의해보니 내 티켓은 에어프랑스가 아니었다. 공동 운항편인 것인지 에어프랑스에서 끊기는 했지만 실제로는 오스트리아 에어(Austria Air) 비행기을 타야했다. 결국 나는 터미널1이 아닌 터미널3으로 가야했다.
캐리어 질질 끌고 터미널3으로 가서 오스트리아 에어를 찾아냈다. 셀프 체크인을 한 뒤 보딩패스를 받고 짐을 부쳤다. 의자에 앉아서 한동안 샌드위치와 물을 흡입했다. 다 먹고나서 이제 보안 검색대를 지나려는데 몸 수색을 당했다. 랜덤하게 체크하고 있는 중인데 하필 내가 딱 걸린거라더라.
나는 오후 12시 55분에 출발하는 파리행 비행기에 올랐다. 오스트리아 에어 승무원들은 온통 빨간 옷을 입고 있었다. 승무원들의 인종과 체형, 나이 등 모든 것들이 다양했다. 꾸벅꾸벅 졸다가보니 어느새 샤를 드골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내려서 수화물 찾는 곳에서 한참 기다렸다. 정말 한참 기다렸다. 아직도 그 때의 지루함이 언뜻 기억날 정도니까. 캐리어를 찾고 공항 밖으로 나왔다. 'Les Cars'라고 적힌 표지판을 보고 쫓아가면 에어프랑스 리무진을 타는 곳이 나온다.
나는 개선문 쪽에서 내릴 것이라서 라인2에서 기다렸다.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앞에 라인3, 라인4 버스는 줄줄이 잘만 오던데 라인2 버스만 계속 오지 않았다. 엄청나게 기다렸다. 내가 샤를드골 공항에 아마도 3시 즈음에 도착했었는데 버스는 4시 넘어서야 탈 수 있었다. 땡볕에 힘들었다.
버스 창 밖으로 개선문이 보이기 시작했다. 텔레비전에서나 보던 개선문을 실제로 보게되다니! 심장은 주체할 수 없이 두근두근, 내 기분은 붕 떴다. 드디어 파리에 왔구나.
개선문 에어프랑스 리무진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니 5시가 넘었다. 오늘 파리에서 묵을 숙소는 캄브론(Cambronne)역 근처에 있어서 지하철을 타고 가야했다. 근데 나는 파리에 대한 험한 이야기들을 하도 많이 들었던터라 엄청 쫄아있던 상태였다. 그래서 온 신경을 곤두 세우며 지하철을 타러갔다.
두려운 마음이 앞선 상태로 까르네 10장을 사고 지하철을 타려고 개찰구를 지나려는데 일이 생겼다. 내 캐리어 손잡이가 걸려서 개찰구를 지나갈 수 없었다. 캐리어 손잡이를 집어넣고 갔어야 하는데 빼놓고 지나가서 걸려버렸다. 이미 까르네는 반대편으로 넘어가있고 나는 우왕자왕하고 있는데 옆으로 지나가던 어떤 파리 시민이 자기 교통카드를 찍어주었다. 그래서 캐리어와 내가 무사히 지나갈 수 있었다. 어찌나 고맙던지!
캄브론 역 내려서 숙소 방향으로 갔어야 하는데 바보같이 반대로 가버려서 길을 헤맸다. 한참을 어리둥절하다가 겨우 숙소를 찾을 수 있었다.
문을 열고 들오거니 어마어마한 계단이 나타났다. 계단 오르면서 내가 왜 호텔 싱글룸을 안하고 이곳을 예약했을까 후회 막심 했었다. 하지만 숙소에 도착해서 이모님이 끓여주신 김치찌개 먹고서는 여기 하길 잘했다고 내 자신을 칭찬했다. 돼지고기에 두부 송송! 반찬도 너무 맛있었다.
밥그릇 싹싹 긁어먹고서 조그만 가방만 들고 길을 나섰다. 저녁 먹고 숙소에 그대로 있기는 아쉬워서 에펠탑 야경을 보러 사이요궁쪽으로 혼자 걸어가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