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OONA Dec 17. 2018

지베르니 모네의 정원

지베르니 꽃의 정원과 물의 정원(Jardins de Cloud Monet)

파리에서의 셋째날 나는 지베르니에 가기로 했다. 지베르니에는 화가 모네의 집과 꽃들이 만발한 정원이 있고, 아름다운 연못도 있다. 모네의 그림을 좋아해서 그가 여생을 보낸 지베르니에 기념삼아 가보고 싶었다. 특히나 궁금했던 것은 수련 연작의 배경이 된 연못이다.



지베르니로 떠나는 날 민박집 아침식사는 제육볶음이었다. 먼 타국에서 느끼는 익숙하고 정겨운 맛! 양껏 배부르게 먹고 지하철에 올라 30분 정도 이동했다. 생 라자르 역에 도착해 매표기계에서 베농행 기차표를 샀다. 오전 10시20분에 출발하는 기차였다. 시간이 남아서 크로아상과 따뜻한 커피를 하나씩 샀다. 고소한 버터향이 나는 크로아상을 베어물고 커피로 몸을 녹히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지베르니는 생 라자르 역에서 베농(Vernon)행 기차를 타고 베농역에 내려 다시 버스를 타고 가야한다. 간혹  베농역에서 지베르니 모네의 집까지 걸어가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는데 당일치기로 지베르니를 방문하는 경우에는 버스를 타고 가는 것이 효율적이다. 베농(Vernon)역에 내리면 사람들이 일렬로 줄지어서 한 길로만 걷는다. 그 길을 따라 나도 졸졸졸 걸었다. 그 끝에 지베르니행 버스를 탈 수 있는 정류장이 있었다.



지베르니로 향하는 버스에 오르기까지 지루한 기다림이 있었다. 몇번 버스를 보내고 난 뒤에야 비로소 버스에 올랐다. 흐르는 하천을 보고 논밭 시골 풍경들을 지나치다보면 지베르니에 도착한다. 버스에서 내려 모네의 정원 매표소를 찾아갔다.



매표소 부근에는 엄청난 줄이 있었다. 입장권을 사기까지 버스를 기다릴 때보다 더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했다. 기다리고 또 기다린 끝에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9.5유로의 입장료를 지불하고 제일 먼저 꽃의 정원에 들어섰다.



정원에 들어서니 싱그러운 향기가 코를 찔렀다. 조그만 이 정원 안에 온 세상 꽃들을 다 모아놓은 듯 했다. 벌들이 꽃 주변을 배회하며 윙윙거렸다. 따사로운 햇살은 정원을 가득 채워 꽃들이 강렬한 색을 내뿜었다.



이곳에는 다른 곳 보다도 특히 어르신들이 많았다. 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웃음꽃 만발이었다. 나처럼 그들도 행복해보였다. 꽃은 사랑인가보다.



모네의 정원에서 어느 한국인 모녀를 만났다. 같이 정답게 다니는 모습이 참 부러웠다. 이곳에서의 기억은 둘에게 평생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겠지? 꽃을 정말 좋아하는 우리 엄마와 이곳에 함께였다면, 그런 상상을 자꾸만 했다. 언젠가 엄마와 함께 이곳에 와보리라 다짐했었다.



멀리 보이는 길 끝에 남색 지붕의 집이 보였다. 모네와 가족들이 살던 집이다. 꽃의 정원을 지나서 물의 정원에 들렀다가 모네의 집에 가보기로 했다.




모네의 정원은 유럽 여행을 다니며 보았던 정원들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벨베데레 궁전이나 님펜부르크 궁전의 정원에는 모든 것들이 사람의 손을 거친듯한 가공된 아름다움이 담겨 있었다. 정교한 조각상과 화려한 분수대, 색깔별로 정렬되어 질서있게 심겨진 꽃들, 기하학적인 무늬로 가지치기 된 관목들...



반대로 모네가 직접 가꾸었다는 꽃의 정원에는 여러가지 식물들이 질서 없이 어지러히 널려있다. 색과 모양이 제각각인 꽃들이 한꺼번에 시야에 들어와 다채로웠다. 일반적인 유럽식 정원이 유명한 관광 명소에 들른 느낌을 주었다면 이곳은 어느 이름모를 숲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주었다.



두 정원 다 나에게는 매력적이었다. 모두 나에게 행복한 기분을 선사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러나 저러나 꽃들이 있다면 어디든 좋았다.



촘촘한 대나무 숲을 지나왔다. 이 먼 유럽 땅에 대나무 군락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모네는 일본 정원에서 영감을 받아 꽃의 정원과 물의 정원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가 정원에서 동양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꽃의 정원을 지나 물의 정원에 도착했다. 요정이 튀어나올 것만 같은 신비롭고 몽환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버들나무 가지들이 물에 닿을 듯 말 듯 늘어져 있었고  하늘이 비쳐 파아란 못 위로는 흰 구름이 떠다녔다. 그리고 가득한 수련! 연꽃은 없었지만 동그란 연잎들이 모여있는 모습을 보니 모네의 그림이 절로 떠올랐다.



못 주위를 두르고 있는 길을 한바퀴 돌며 천천히 정원을 감상했다. 길 위로 나같은 관광객들이 북적거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연신 카메라 셔터 누르는 소리와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번잡한 길 위와는 달리 눈앞에 보이는 물속은 한없이 평화롭고 고요해 보였다.



모네는 이곳에서 하루종일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는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하는 빛을 따라 다양한 수련의 모습을 담아냈다. 모네의 수련 연작은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 파리에 머무는 동안 오랑주리 미술관을 방문할 예정이라 이 정원은 나에게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



연못을 한바퀴 돌고난 뒤 모네의 집으로 향했다. 집 앞에 화사한 꽃들이 가득했다. 꽃밭을 거닐며 집 외관을 구경했다. 지붕 위에는 굴뚝이 나있고 쨍한 빛의 초록 창문 너머로는 하얀 커튼이 보였다. 그리고 담쟁이들이 집 벽면 구석구석 빽빽히 자리잡고 있었다.



모네의 집 안으로 들어가보았다. 모네와 가족들이 살았던 당시의 모습 그대로 재현했다고 한다. 노란 벽지와 노란 가구들로 꽉찬 이곳은 거실 같았다. 한쪽 벽면에는 일본 화풍의 그림들이 쭉 걸려있었다.



그리고 모네의 그림이 가득 걸려있던 방. 미술관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방금 전 정원에서 연못 위에 떠있던 수련들을 떠올리게하는 그림들과 내가 좋아하는 양산을 든 여인 그림이 있었다. 그리고 모네의 정원 풍경이 담긴 그림들도 여럿 보였다.



모네의 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부엌이다. 이곳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파란색으로 꾸며져있었다. 파란 체크무늬 커튼, 파란색 타일, 파란색 가구들 그리고 반질반질 윤이 나던 황동 조리기구들. 창틈으로 부엌을 비추는 햇살이 내 살결에 스며들어 따뜻했다.



모네의 집을 나와 기념품 샵으로 왔다. 샵 벽면에 거대한 수련 작품이 걸려있었다. 모네가 그린 진짜배기 작품은 오랑주리 미술관에 있고 이곳에는 복제본을 설치해둔 것 같았다. 아마도 어스름 낀 새벽녘이지 않을까? 물결이 출렁이는 것 같았다.



사고 싶은 것들이 한가득이었지만 모두 사기에는 내게 역부족이었다. 고심끝에 수련 엽서 몇 개 집어들고 모네 그림 도록을 사서 샵을 나왔다.



되돌아 가는 길에 여러 상점들이 내 눈을 즐겁게 해줬다. 어느 가게 앞 천장에는 모네의 그림이 그려진 우산들이 매달려있었다. 만만치 않은 가격이었지만 내 것 하나와 선물용 하나를 사들고왔다. 여행 다니는 내내 캐히어에 넣고 다녔는데 무거워서 혼났다. 다닐때는 괜히 샀나 후회도 몇번 했는데 한국으로 돌아와 비올 때 눈올 때 이 우산을 쓰니 여행하던 때가 생각나서 너무 좋다.



그리고 어느 꽃집 앞 식당에서 간단하게 허기를 채웠다. 식당 안에서 이것저것 사서 나와 야외 테이블에 자리잡았다. 생과일 주스와 베리류가 담긴 과일컵, 샌드위치를 사왔다.



배고파서 허겁지겁 먹고 싶었는데 그러질 못했다. 바게트 빵이 너무 질껴서 먹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마치 고무를 씹는 것 같았다. 물론 내가 고무를 씹어본 적은 없었지만 만약에 고무를 씹는다면 딱 이 맛일거다!



모네의 집 쪽이 아닌 전시관 방향으로 걷다보면 여태 보지 못했던 정원의 모습들이 나타난다. 이곳의 정원은 앞서 보았넌 정원들보다 정돈된 느낌이다.



각지게 가지치기된 관목 사이사이를 지나오는데 미로찾기를 하는 듯 했다. 근처의 전시관에서는 인상파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었다. 정말 들어가보고 싶었으나 파리로 돌라갈 기차를 타야했기 때문에 외관만 구경하고 말았다.



버스 정류장에는 이미 꽤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도 거기서 기다리다가 무사히 버스에 탑승하고 베농역으로 이동했다. 베농역에서는 올 때 산 표에 펀칭을 해놓고 기다렸다. 내가 탄 파리행 기차는 4시 53분에 출발하는 14.7유로짜리 기차였다.

쿨쿨 자다보니 어느새 생 라자르역에 도착했다. 이날 하루가 너무 피곤했기에 파리 시내를 둘러볼 생각을 못하고 바로 숙소로 직행했다. 숙소에 들어가서 이모님이 해주신 감자탕을 먹었다. 그리고 민들레 무침! 파리 에펠탑 근처에서 따온 민들레라는데 뭔가 웃겼다. 세상에 살다살다 내가 파리산 민들레를 먹다니...



한국에서는 감자탕을 쳐다도 안봤었는데 타국에서 먹는 감자탕은 왜 그리 맛있던지! 지베르니에서 먹다 남은 과일들을 오물오물 먹으며 일기를 썼다. 하루를 정리하다보니 문득 드는 내일에 대한 생각. 내일은 비행기를 타고 니스로 가는 날이다. 여태까지 나름 잘 해왔건만 또 다시 모든 것들이 새롭고 불안했다. 아침 6시 40분 알람을 설정해두고 머릿속으로 내일을 시뮬레이션 해보았다. 공항까지 잘 가서 비행기도 잘 타고 그렇게 니스에 별 탈 없이 도착할 수 있겠지? 모든 것들이 처음이어서 낯설던 나,걱정으로 뒤척이던 파리에서의 밤.


매거진의 이전글 바토무슈에 올라 보는 파리 센강 야경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