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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NA Feb 14. 2019

파리에서 니스로 가는 길

오를리 공항에서 비행기타고 파리에서 니스로

이른 새벽에 눈을 떴다. 일어나서 부지런히 니스로 떠날 준비를 했다. 전날 미리 싸놓은 캐리어와 백팩을 다시 정리해보며 어떻게 그곳까지 가야할지 다시 한 번 되새겨 보았다. 준비를 마친 뒤 백팩을 둘러매고 무거운 캐리어를 끌며 숙소를 나섰다. 민박 이모님이 쫓아나와 내 캐리어가 무겁다며 1층까지 들어다 주셨다.



고작 며칠 있었을 뿐인데 정이 들어버렸다. 익숙해져버린 골목, 머물던 방, 가파른 계단... 떠날 때 이리도 아쉬운 것은 기약 없는 이별이기 때문일까? 잘츠부르크 수도원 숙소에서 종소리 들리던 복도를 걷던 순간, 온통 하얀 페인트칠이 되어있던 빈의 게스트하우스, 스멀스멀 안개가 떠다니던 고자우제의 단 하나뿐인 숙소에서의 추억, 민들레 무침을 해주셨던 파리 민박 이모님... 하나하나씩 여행의 기억들이 더해져간다.



오를리 공항으로 가는 에어프랑스 리무진 버스를 타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개선문역으로 갔다. 역에 도착해 리무진 버스 탑승장과 가장 가까운 'carnot'이라는 출구를 찾아가는 도중 엄청난 계단을 만났다. 이럴줄 알았다면 엘레베이터를 타고 지상으로 올라와 출구를 찾아갈껄 그랬다.

계단을 열심히 오르고 있는데 갑자기 집시처럼 보이는 여자 두 명이 내 뒤로 바짝 붙었다. 나는 그들을 예의주시하며 핸드폰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을 꽉 줬다. 온 몸에 긴장을 가득 품고 걷다보니 어느새 내 뒤에 있던 집시들이 사라졌더라. 휴, 안도의 숨을 내뱉었다.

힘겹게 오르던 계단 끝으로 빛이 보였다. 눈부신 빛 사이로 어떤 이가 나를 향해 다가왔다. 그는 나보다 앞서가던 여행객이었다. 내가 끙끙거리며 계단을 오르는 모습이 안타까웠는지 캐리어 들어주겠다며 온 것이다. 천근만근 같던 내 캐리어를 가볍게 들더니 순식간에 계단 꼭대기까지 올라 캐리어를 내려다 주었다. 그러고는 내가 감사하다는 말을 미처 하기도 전에 안녕 손짓하며 떠났다. 뭔가 울컥하며 가슴이 찡해졌다.

출구로 나오자 리무진 버스가 보였다. 갑자기 에어프랑스 직원이 나를 보더니 놀라서 말을 건냈다. 가방이 다 열려있는데 무슨 일이 있었냐는 것이다. 에에? 나도 놀라서 뒤돌아 백팩을 확인해보니 지퍼란 지퍼는 모조리 다 열려있었다.

백팩 지퍼마다 옷핀으로 다 끼워놨건만 소용 없었다. 충격적인 사실은 가방이 열릴동안 내가 전혀 느끼질 못했다는 것이다. 왠지 아까 내 뒤에 착 붙던 집시들이 가방을 연 것 같았다. 급히 가방 안을 뒤적이며 사라진 것들이 없는지 확인해봤다. 문득 생각해보니 안에 있던 것들이라곤 스카프, 쓰레기들, 우비, 인형 등등 잡동사니 뿐. 그들은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았다. 사라진 것들이 전혀 없음에도 내가 모르는 사이 가방이 까발려졌다는 사실이 공포스럽게 다가왔다.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버스에 올라탔고 오를리 공항으로 향했다. 서쪽 동에 내려서 에어프랑스 항공사를 찾아갔다. 기계를 통해 셀프 체크인을 하고 수화물 태그를 받아 직접 캐리어에 붙였다. 그리고 컨베이어 벨트 위에 캐리어를 올려 두고 나왔다.



캐리어가 사라지니 온 몸이 홀가분했다. 출출한 배를 채우려고 먹음직스런 빵이 가득한 폴(Paul) 매장을 기웃거렸다. 그런데 계산대 앞으로 엄청나게 늘어진 줄을 보니 안되겠다 싶더라. 다시 공항 안을 배회하다 만난 라 뒤레(la duree). 한국에서도 얼핏 이름을 들어본 적 있는 마카롱으로 유명한 곳. 가게 안으로 들어가 자리잡고 앉아 너트 크로아상과 핫초콜릿을 주문했다. 견과류가 잔뜩 씹히는 바삭하며 촉촉한 크로아상! 달콤하면서도 쌉싸래한 핫초코와 아주 잘 어울렸다.



유명하다는 라 뒤레 마카롱 두 개를 사왔다. 비행기 안에서 야금야금 먹고 깊게 잠들었다. 파리에서 니스까지 1시간이 걸리는데 마치 서울에서 제주도에 가는 느낌이 들었다. 잠에서 깨니 니스에 도착했다. 캐리어를 찾고 공항 밖으로 나가니 버스 타는 곳이 보였다.

99번 버스를 타고 니스 중앙역(Gare de Nice ville)으로 가야했다. 일단 표를 사려고 매표소 앞에서 늘어진 줄 끝에 섰다. 그런데 반대편으로 99번 버스가 들어오고 있었다. 사람들에게 버스 안에서 표를 살 수 없냐고 물어보니 매표소에서 표를 사고 버스를 타야한다고 하더라. 무지 급하게 표를 사서 캐리어 질질 끌며 버스 안으로 돌진했다.



무사히 버스 위에 오르고 종점인 니스 중앙역까지 향했다. 가는 도중 차창 너머로 푸른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유럽에 와서 처음 보는 바다였다. 시원한 바닷바람이 내 살결을 스치는 듯 했다. 기분이 붕붕 떠오르며 상쾌한 행복감을 느꼈다. 내가 니스에 왔구나!



니스 중앙역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리고 한 2분정도 걸었던가? 내가 삼일동안 머무를 호텔을 찾았다. 여태 많은 숙소들이 나에게 쇳덩이로 만든 커다랗고 무거운 열쇠를 줬었다. 반면 이 호텔은 카드키를 줘서 들고다니기 무척 편했다. 방 안으로 들어와 창을 열고 니스 시내를 구경 했다. 시원한 공기를 맡으며 잠깐 숨을 돌리며 여독을 풀었다.



잠깐의 휴식을 뒤로하고 니스를 돌아보기로 했다. 파리에서는 도난위험 때문에 주머니가 많은 가방에 핀셋까지 걸어 잠그며 다녔다. 여기서는 왠지 그런 걱정이 덜 들어서 에코백에 카메라, 지갑 등 간단한 물품들만 넣어 들고 나왔다.

니스에서 첫 행선지는 샤갈 미술관이다. 호텔에서 도보로 15분거리였다. 유럽여행 오기 전부터 샤갈 미술관을 무지 기대했었는데!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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