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스 샤갈 미술관은 내가 머무는 호텔에서 도보로 15분 거리에 있었다. 15분이면 산책삼아 부담없이 갈 수 있겠다 싶어 걸어서 미술관까지 가보기로 했다. 핸드폰 구글 지도를 보며 찾아가는데 어째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어 등골이 서늘했다.
사람이 없어도 너무 없으니 내가 가는 이 길이 정말 맞는지 의문스러울 지경이었다. 옆에 보이는 도로 위로 자동차들만 간간히 지나다니고 주변은 쥐죽은 듯이 조용했다. 난 구글 지도를 믿고 걸을 뿐이었다. 점차 내 걸음은 빨라졌다.
혼자라서 무서웠던 탓인지 주위 풍경을 즐기지 못하고 긴장하며 빠르게 앞만 보고 걸었다. 다행히 내가 걷던 길 끝에 샤갈 미술관이 있었다.
놀라운 사실 하나는 샤갈 국립 미술관에서 일부 지폐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20유로를 내미니 미술관 측에서 잔돈이 없다며 받기를 거부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5유로짜리 2장을 냈더니 그제서야 잔돈을 내주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5유로와 동전들을 냈을텐데 잔돈이 없다는 말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지폐를 냈다가 거절당하며 황당해했다. 잔돈이 없다는 이유 말고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미술관을 다 둘러보고 나와서 샵에 갔는데 샵에서도 20유로는 받을 수 없다고 했다. 동네 구멍가게도 아니고 국립 미술관에서 이러니 이해가 되질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들어오게 된 샤갈 미술관.
샤갈이 생폴 드 방스에 머물던 노년 시절, 칼베르 노트르담 성당 벽을 꾸미기 위해 창세기 이야기를 담은 작품들을 만들었다. 하지만 완성된 작품들이 지나치게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교회에서 설치를 거부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당시 문화부 장관이던 앙드레 말로의 주도로 니스에 국립 샤갈 미술관이 개관되었다.
종교를 믿지 않더라도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는 여러번 들어서 잘 알고 있었다. 아는만큼 보인다는 말이 맞나보다. 익히 들어서 알고있는 성서 내용이 담긴 작품들에 더 눈이 갔다.
아담과 이브는 선악과를 바라보며 먹을지 말지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브의 왼편으로 뱀이 슬며시 웃으며 그들을 바라보고 있다. 아담과 이브 위로 날개 달린 천사가 걱정스러운 듯 연인을 쳐다보고 있다.
아담과 이브 이야기를 모르더라도 이 그림은 사람을 잡아끄는 힘이 있었다. 사랑스러운 두 연인, 붉은 꽃다발과 열매. 나는 샤갈의 푸릇한 색채와 부드러움이 좋았다. 그의 그림에는 날카로움이 없었다. 사랑과 행복이 담겨있고 몽환적이며 따뜻했다.
에덴동산의 아담과 이브를 그려낸 그림을 제외하면 나에게 깊게 와닿는 작품은 없었다. 창세기 내용이 세세하게 기억이 안나서 그렇기도 하고 종교적인 이야기들이 마음에 다가오지 않아서이기도 했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던 대형 모자이크 작품이 기억에 남는다. 투명한 유리창 앞에 길쭉한 의자가 놓여 있어서 그 위에 한참 앉아 있었다. 하늘은 파랗고 구름은 하얗고 내리쬐는 햇살은 물 위로 부서져 일렁거렸다. 그리고 거대한 모자이크. 많은 사람들이 한참동안 서서 모자이크를 바라보다 갔다.
모자이크에 내가 좋아하는 색들이 다 모여있었다. 파란색, 보라색, 초록색, 분홍색 등등. 모자이크는 황도 12궁을 나타내는 것 같았다. 가운데 마차를 탄 이는 누구일까?
사실 기억에 남는 작품들 대부분은 성서 이야기가 아닌 꽃이 담긴 그림들이었다. 이쪽 전시관에 있던 그림들은 담겨있는 이미지들이 비슷했다. 원색의 꽃들이 담긴 부케, 연인, 물고기, 새, 해와 달, 바다 등등. 샤갈이 비슷한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구현해낸 것인지 아니면 느낌대로 그리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인지 궁금했다.
샤갈 미술관에서 제일 마음에 들던 작품은 바로 이 그림이다. 그림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절로 따뜻해졌다. 꽃 속에 파묻힌 얼굴을 맞댄 연인을 바라보니 나도 사랑에 빠져드는 것 같았다.
어릴적부터 보라색과 파란색을 섞어 그림을 그렸었다. 주로 바다를 그릴 때 이 색 조합을 즐겨 썼었다. 그래서 강하게 이끌리는 것일까? 오묘하고 몽환적인 색채가 너무 좋았다. 그리고 그림 안에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다 담겨있었다. 달, 하늘, 바다, 꽃, 사랑... 그리고 꽃 속의 두 사람은 행복해보였다. 혼자 여행한지 오래되어 외로운 마음에 더 가슴이 뭉클했던 것일까?
샤갈이 직접 만들었다는 스테인드글라스가 전시되어 있던 방에서 잠시동안 휴식을 취했다. 다리가 찢어질 듯이 아팠지만 언제 다시 이곳에 와보겠냐는 생각에 좋았던 그림들을 다시 돌아보려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렇게 몇번을 더 돌아보다 아쉬운 맘을 뒤로 하고 미술관을 나왔다.
미술관 샵에 잠깐 들러서 엽서들을 몇 개 구입했다. 성서 이야기를 담은 엽서들만 가득해서 고르기 어려웠지만 말이다. 이제 숙소로 돌아가서 쉬고 싶었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서 니스에 왔으니 바다는 봐야겠다는 생각이 꿈틀거렸다. 그래서 난 또 다시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