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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NA Apr 14. 2019

시간이 멈춘 곳, 생폴드방스에 가다

아침부터 비가 주룩주룩 내려서 우산을 챙겨들고 호텔을 나섰다. 내 발걸음은 노트르담 성당으로 향했다. 이날은 전날 우연히 니스 전망대에서 만난 이름이 같던 언니와 함께 생폴드방스에 가기로 했다. 이른 아침 노트르담 성당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약속시간이 한참 지나도 언니는 나타나질 않았다. 나는 비를 피하려고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경건한 노래소리가 성당 안에 울려퍼지고 있었다. 그리고 밖에서는 빗소리가 두두두- 들려왔다. 순간 내 마음은 티끌 하나 없이 맑아지는 듯 했다.

이 웅장한 성당과 빗소리 섞인 평화로운 노래소리는 영원토록 잊지 못할 것이다. 약속시간에 늦은 언니 덕에 소중한 추억이 만들어졌다.



우리는 100번 버스를 타기 위해 니스 해변가의 맥도날드 앞으로 갔다. 그런데 미리 알아본 100번 버스는 생폴드방스로 가지 않는다고 하더라. 생폴드방스로 가는 버스는 400번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정류장이 근처라서 얼른 400번 버스를 타는 곳으로 갔다. 우리는 조금 기다리다가 버스를 탈 수 있었다.

계속된 여행에 피곤했나보다. 나는 정신을 놓고 입까지 벌리며 잤다. 잠에서 깨니 창밖으로 이국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생폴드방스에 다 왔나보다. 니스에서 생폴드방스까지 대략 40여분 정도 걸렸다. 멀리 긴 성벽과 수풀 사이로 붉은 지붕들이 보였다.



생폴드방스에 들어서니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넘어온듯한 기분이 들었다. 영화 속에서나 보던 장면들이 눈 앞에 펼쳐졌는데 중세시대에 온 느낌이더라. 건물들과 성벽, 골목길들 모두 시멘트가 아닌 돌로 만들어졌다.



길 위로 다양한 빛깔의 돌들이 촘촘히 박혀있었다. 모양과 크기가 제각각인 돌들은 기하학적인 무늬를 이루고 있기도 했다. 때마침 비가 내렸던지라 돌바닥에서는 반들반들 윤이 났다.



비를 머금은 공기는 차갑고도 신선했다. 좁은 골목 사이사이를 돌아다니며 마을 구경을 했다. 아침 내내 흩뿌리던 비는 우리가 생폴드방스에 도착할 즈음에 그쳤다.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지도를 받았지만 이곳에서는 지도가 필요 없었다. 정처없이 돌아다니다보니 길이 다 외워졌기 때문이다. 마을의 크기는 반나절이면 다 돌아볼 정도로 조그만했다.



건물을 자세히 살펴보니 벽돌들을 차곡차곡 쌓아 올려 만든 것이었다. 붉은 빛이 감도는 돌이라서 그런지 마을 전체에 붉은 막이 드리워진 것 같았다. 돌 틈새로 싱그럽게 자라난 담쟁이들이 건물 외벽을 감싸고 있었다. 이름 모를 원색의 꽃들은 초록 틈바구니에서 활짝 피어났다.



골목마다 숨어있는 갤러리들을 찾아다니며 그림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가게마다 개성있는 그림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그림 가격이 후덜덜해서 어느 것 하나 사오지는 못했지만 눈으로 바라보기만 해도 즐거웠다.



프로방스 지역은 라벤더로 유명하다. 끝도 없이 펼쳐진 라벤다 밭은 여름이 되면 보랏빛으로 물든다. 그래서 그런지 갤러리마다 라벤더와 관련된 그림들이 많았다. 그리고 바다! 푸른 지중해가 담겨있는 그림은 보기만 해도 마음이 상쾌해졌다.


생폴드방스 골목골목을 거닐다보면 갤러리 뿐만 아니라 아기자기한 기념품을 파는 가게들도 만나게 된다. 호기심에 가게마다 들어가서 구경했는데 시간가는 줄 몰랐다. 보통 사람 북적이는 관광지에 가면 이곳저곳에서 비슷한 물건들만 파는데 여기는 가게마다 특색이 있어 좋았다.



우리는 어느 카페 안으로 들어가 잠시 쉬었다 가기로 했다. 따뜻한 카푸치노 한 잔과 프로방스 지역의 전통 과자라는 '누가(Nougat)'를 시켰다. 난생 처음 먹어보는 디저트였는데 한 입 베어 물어보니 우리나라의 엿 같았다. 찐득하니 입에 들러붙고 고소하며 달콤한 크림 맛이 났다. 처음에는 맛있어서 와구와구 퍼 먹다가 갑자기 속이 훅 느끼해졌다. 다 먹지 못하고 포장해서 카페를 나왔다.



카페 밖으로 나와 다시 걷기 시작했다. 끝없이 이어진 계단을 따라서 걸었다.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아름다운 이곳. 며칠 여기 묵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 이른 새벽 차가운 공기를 마시며 좁다란 길들을 걸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언제가 될런지는 모르겠지만 생폴드방스에는 꼭 다시 와야겠다.



쭉쭉 뻗은 높다란 건물 틈으로 붉은 지붕들이 보였다. 멀리 보이는 풍경을 쫓아 외곽으로 향했다. 우리는 멋드러진 아치 밑을 지나갔다. 고개를 들어보니 하늘은 여전히 구름으로 꽉 차있어 흐릿했다. 그래도 어디선가 구름을 비집고 햇살이 찾아들었다.



성곽 쪽으로 걸어나오니 장관이 펼쳐졌다. 산등성이가 멀리 보이고 그 아래로 붉은 지붕의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높다란 언덕 위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는 기분이랄까? 푸릇푸릇한 나무들은 빽빽히 산을 채우며 생폴드방스를 감싸고 있었다.



짧은 생폴드방스 여행, 우리의 마지막 행선지는 샤갈의 무덤이다. 샤갈은 마지막 여생을 생폴드방스에서 보냈다. 그의 무덤이 이곳에 있다고 들었기에 가보기로 했다. 마침 전날 샤갈 미술관에도 들렀다온지라 더 마음이 동했다.



내려다보이는 무덤은 주위의 풍경과 어우러져 묘하게 아름다웠다. 평소에 무덤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음산할 뿐이었다. 동그란 무덤 모양은 한낮에 봐도 무서워서 후다닥 지나쳤다. 유럽 여행을 하며 무덤에 대한 인식이 좀 바뀌었다. 비석 위에는 꽃들이 놓여져있고 가족들의 사진과 애정어린 글귀들이 있었다.



샤갈의 무덤 위에는 조그만 돌들이 올려져있었다.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지만 그를 기억하며 찾아온 이들이 하나 둘씩 올려놓은 것이 아닐까?



시간이 멈춘듯한 이 오래된 마을에서 하루하루를 보낸다면 그 누구라도 예술가가 될 것 같다. 언제나 예술가를 꿈꾸었지만 쳇바퀴 같은 삶을 살아가던 나, 생폴드방스를 돌아보니 다시 꿈이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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