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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NA May 18. 2019

니스에서 아비뇽을 거쳐 아를까지

나쁘다가도 좋은 그런게 여행인가보다


내가 왜 아를을 가겠다고 마음 먹었을까?

발단은 파리 아웃 출국 비행기 일자를 뒤로 미룬 것에서 시작한다. 갑자기 늘어난 일정에 파리에서 출국해야하는데 파리에만 계속 있기는 아까워 다른 도시들을 돌아보기로 한 것이다. 프랑스 남부 니스에 갔다가 아를, 리옹을 거쳐 파리로 돌아 오기로 했다. 다른 도시들도 많았는데 특별히 아를을 선택한 이유는 고흐 때문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고흐의 그림에 나온 노란 카페에 가보고 싶어서였다.


아를의 한 카페를 배경으로 한 고흐의 그림


단순하고도 열렬한 열망으로 아를에 향했다.

하지만 아를로 가는 내내 후회했다. 모든 것들이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았고 생리 중이었던터라 몸 상태도 엉망이었다. 다 던져버리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으니 꾸역꾸역 여행을 이어나가야했다.



이 고생스런 날을 되돌아보면 떠오르는 첫 기억은 새벽녘 호텔에서 눈을 떴을 때이다. 아직 새벽이라 창밖은 컴컴했다. 짐을 싸고 6시 30분 즈음 호텔을 나와 니스빌(Nice Ville)역으로 갔다. 삼일 동안 머물렀던 니스를 드디어 떠나는구나. 호텔 바로 옆이 니스빌역이라 금방 도착했다. 역 안에서 기차를 기다리다가 전광판에 플랫폼이 떠서 이동하려는데 높다란 계단만 있을 뿐, 에스컬레이터가 없었다. 무거운 캐리어를 끙끙 끌어 올리며 계단을 올라갔다.

조금 기다리다 기차에 탔는데 다행스럽게도 내 자리 바로 뒤에 캐리어 놓는 공간이 있었다. 기차에 오를 때마다 캐리어를 어디에 또 어떻게 둬야할지가 고민이었다. 유럽 여행 중 기차에서 짐을 도난당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자리 바로 뒤에 캐리어를 둘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나는 안심하며 캐리어를 두고 자물쇠로 잠궈두었다. 창밖으로 붉게 타오르는 핑크빛 하늘이 보였다. 이제 쿨쿨 자다가 일어나면 도착이겠구나, 편안히 잠드려는데 일이 터졌다.



기차가 갑자기 멈춰버렸다. 한참을 멈춰있다가 다시 출발했는데 걸어가는 편이 더 나아보일 정도로 기차는 느리게 갔다. 안내방송은 온통 불어라서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도대체 지금 무슨 상황이 벌어진 것인지, 언제 내려야하는지 감을 잡을 수 없어서 계속 긴장 상태를 유지해야했다.



내가 받은 기차표에 따르면 니스빌역에서 오전 7시 2분에 출발해 아비뇽에 10시 즈음 도착한 뒤, 10시 25분에 아를로 가는 기차로 환승해야했다. 그런데 10시 25분에 난 아비뇽역이 아닌 아비뇽으로 가는 기차 안에 있었다. 머리가 새하애졌다. 난 이제 어떻게 해야하는 것일까? 표를 다시 사야하는 것일까? 아니면 역무원에게 달려가 내 사정을 이야기해볼까? 그냥 아를행 아무 기차나 잡아 타볼까?

아비뇽 TGV역에 도착하자마자 매표 창구 같아 보이는 곳으로 달려갔다.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내 차례가 왔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내가 가진 표를 내밀며 아비뇽 오는 기차가 연착되어서 아를가는 기차를 탈 수 없었다고 이야기했다. 내 이야기를 듣더니 역무원은 아비뇽 시티센터를 경유해 가는 아를행 티켓을 발권해주었다.



새로 받은 표는 아비뇽 TGV역에서 아비뇽 시티센터역까지 가서 다시 아를행 기차로 환승하는 것이었다. 어떻게든 아를에 갈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긴 했지만 시티센터에 가서 30분을 기다렸다가 또 환승을 해야하니 으악스러웠다. 그래도 어쩌겠느냐! 11시 8분에 출발하는 아비뇽 시티센터행 기차에 올랐다. 시티센터에 도착해서 30분 하고도 10분 더 기다린 끝에 아를행 기차에 오를 수 있었다. 니스 호텔을 나선지 6시간여가 흘러서야 드디어 아를에 도착했다. 감격스럽기도 하면서 마음 한구석에서는 짜증이 확 올라왔다.



아를역에는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높은 계단을 또 올라야했다. 힘겹게 아를역을 나오니 이번엔 구글맵이 먹통이더라. 내 위치가 잡히질 않아서 숙소를 찾는데 애먹었다. 어찌저찌 겨우 숙소를 찾아 들어갔더니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로비에서 한참을 기다리니 어떤 여자가 들어왔다.

그런데 그 여자분과 말이 하나도 통하질 않았다. 여자는 불어로 뭐라뭐라 이야기했지만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나는 불어를 못하고 여자는 영어를 못하니 소통이 되질 않았다. 서로 답답하니 어떻게든 소통해보려고 눈짓과 손짓으로 발버둥쳤다. 여자의 말을 대충 알아듣기로는 지금은 청소 중이라 방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일단 캐리어를 맡기고서 아를을 돌아보다가 체크인 시간에 맞춰 다시 호텔에 오기로 했다.



여태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아를에 도착해서 긴장이 풀리니 갑자기 너무 피곤하고 배가 고팠다. 우선 늦은 점심식사를 해결해야했다. 숙소 옆에 레소토랑이 하나 있었는데 여기저기 따질 처지가 아니어서 그냥 고민 없이 들어갔다. 야외 테이블에 앉아서 메뉴를 들여다 보는데 온통 불어라서 알아먹을 수가 없었다. 유일하게 버거(Burger)라는 아는 단어가 눈에 띄어서 주문했다. 그리고 유럽 여행 중 즐겨 마셨던 사과쥬스를 시켰다.

음식이 나왔을 때 놀라서 입이 쩍 벌어졌다. 햄버거 하나만 나왔어도 다 못먹을텐데 엄청난 양의 감자튀김과 바게트 빵도 같이 나왔다. 나에게 이 조합은 한 끼 식사로 버거웠다. 음식들을 대체로 맛있게 먹었으나 다 먹지는 못한 채 일어나야했다. 여태 무척 힘들었는데 레스토랑 직원분이 과할 정도로 친절하게 대해주셔서 우울했던 기분이 사르르 녹았다.



나름 얄팍하게나마 불어를 공부했었기에 어느정도는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몇몇 단어나 문장들가지고는 어림도 없었다. 제대로 주문하고 제대로 알아 들으려면 얼마나 공부를 더 해야하는 것일까? 아는만큼 힘이 되었을 것이다. 내가 불어를 잘했더라면 기차가 왜 연착되었는지 알았을테고, 더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었을테고, 영어를 모르는 호텔 스텝과도 즐겁게 대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여행지에서 제대로 느끼고 고생하지 않으려면 언어를 배워야겠구나, 뼈저리게 느낀 날이다.



늦은 점심을 해결하고 길을 나섰다. 호텔 근처에 로마시대에 건축된 원형 경기장이 있어 일단 그리로 향했다. 거대한 경기장은 영화 속에서나 보았던 옛스런 모양이었다.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려 했으나 표를 내밀어야하는데 어떻게 구입해야할지 몰라 근처 투어 인포메이션 센터로 향했다.

센터에서 11유로 주고 통합권을 샀다. 센터에 계시던 분이 통합권에 대해 무척 친절하게 설명 해주셨다. 통합권으로 아를의 유적 4곳, 박물관 2곳을 갈 수 있고 뮤지엄 한 곳은 화요일 휴관이니 내일 가보라고 이야기 해주었다.



통합권을 사들고 인포메이션 센터를 나왔다. 이제 본격적으로 아를을 돌아보아야지. 모든걸 내려놓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지만 착착 잘 마무리되니 다시 힘이 생겼다. 여행은 이런건가보다. 오락가락 왔다갔다, 나쁘다가도 좋아지니 그래서 계속 여행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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