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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NA Jun 18. 2019

봄 _ 벚꽃 야행(夜行) 교토 기온 거리를 걷다

벚꽃 가득한 기온 거리와 재즈바 HELLO DOLLY

교토를 처음 찾았던 어느 여름날 인상깊게 남았던 장면이 하나 있다. 어둠이 내린 기온 거리 사이사이를 흐르는 실개천 위로 푸른 나뭇잎과 색색의 전등빛이 은은하게 비치던 모습이다. 실개천 다리 너머로 초록빛 엉덩이를 반짝이며 반딧불이가 돌아다녔다. 청량했던 그 여름날 밤 기억을 안고서 이곳에 다시 찾아오고 싶었다.



벚꽃 가득한 교토의 봄은 낭만적이며 사랑스러웠다. 가지마다 알알히 맺힌 꽃송이들이 활짝 피어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꽃잎이 떨어진 자리에는 작은 이파리들이 돋아나 푸릇푸릇했다. 거리의 불빛들은 실개천 위에서 일렁이며 어둠을 밝혔다.

우리는 저녁 먹을 식당을 찾아 기온 거리 곳곳을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어느 좁은 골목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좌우로 식당들이 줄지어 들어선 길이었는데 지나다니는 사람들로 빽빽했다.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식당들을 살펴보는 중 간판 하나가 우리의 시선을 잡아 끌었다.



적색 외벽에 매달린 간판에는 'HELLO DOLLY'라는 문구와 모자를 쓴 여인의 실루엣이 담겨 있었다. 창문이 없어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없었기에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가보았다. 그리 넓지 않은 공간에 테이블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좋은 기운이 느껴졌다. 늦은 밤 이 아늑한 공간에서 재즈와 함께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었다. 마침 오늘 공연이 있다고 하니 자리를 예약해두고 저녁식사 후 이곳에 다시 찾아오기로 했다.



다시 식당을 찾아 기온 거리를 헤맸다. 실개천 위로 떨어진 꽃잎들은 밤하늘에 떠있는 별들처럼 빛났다. 밤이지만 환하고 생기가 넘쳐 보였던 것은 흐드러지게 핀 벚꽃 덕분인가보다. 하늘에도 땅에도 벚꽃이 가득했다. 우린 복작거리는 거리를 걸으며 낭만에 젖어들었다.



우린 구글 평점이 높은 어느 식당에 찾아 들어갔다. 하지만 만석에다가 예약도 꽉 차있어서 오늘은 불가능하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꿩 대신 닭이라고 바로 옆 어느 조그만 이자카야에 들어갔다. 겨우 사람 한명이 지나다닐 공간에 바 테이블이 길게 놓여 있었다.



방금 전까지 벚꽃 만발한 거리를 걷다가 왁자지껄 일본어로 가득한 좁은 이자카야 안으로 들어오니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았다. 외국에 왔음을 강하게 실감했다. 메뉴판을 받아 보니 온통 일본어여서 한참을 고민했다. '이찌방 메뉴가 난데스까?'를 외치려는데 갑자기 옆에 앉아있던 여자가 말을 걸어왔다.

놀랍게도 한국말이었는데 알고보니 그녀는 재일교포 2세였다. 그녀가 메뉴판을 해석(?)해주며 다양한 메뉴들을 추천해 주었고 덩달아 교토의 가볼만한 곳들도 여럿 소개해 주었다. 우리가 먹은 것들은 두부 튀김, 치킨 가라아게, 오뎅 그리고 일본 소주이다. 여러가지 메뉴를 조금씩 맛보며 술과 함께 먹으니 입이 즐거웠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예약해둔 재즈 공연을 보기 위해 이자카야 밖으로 나왔다. 펑키한 골목길을 지나 헬로 돌리 간판을 향해 걸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굳게 닫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직원은 드럼이 놓여있는 자리 옆 테이블에 우리를 안내했다. 운좋게도 우리는 바로 눈 앞에서 공연을 볼 수 있었다. 맞은편에는 피아노가 놓여 있었고 창밖으로는 새카만 가모가와가 보였다.



곧 세 사람이 걸어 들어왔다. 보컬 겸 피아노 연주자가 각자 누군지 소개를 해주었지만 자세히 기억나질 않는다. 베이스, 드럼, 피아노가 뒤섞여 이 조그만 공간을 가득 채웠다. 바로 옆에서 연주를 들으니 느낌이 남달랐다. 베이스가 한 줄 한 줄 튕겨질 때마다 귓가에 진동이 울렸다. 어느 순간 연주는 배경음악처럼 들려오고 우리는 칵테일을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끝이 없을 것만 같던 하루가 저물어가고 깊은 밤이 찾아왔다. 어느덧 연주는 막바지에 다다르고 옹기종기 이곳에 모인 사람들의 갈채 박수와 함께 공연은 끝이 났다. 오랫동안 기억 속에 머물 재즈와 가모가와. 헬로돌리에서 잊지 못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밖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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