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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NA Aug 09. 2019

여름 경주 서출지 나들이

배롱나무꽃과 연꽃을 보러 떠난 서출지

어느 무더운 여름날 경주로 향했다. 얼마전까지 여름 참 좋구나 생각했었는데 요새는 왜 이렇게 여름이 길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본격적인 무더위가 찾아오니 속수무책이다. 여름이 좋았었다 생각했던 내가 어리석었다. 가만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진정한 여름을 맛보니 여름이 얼른 지나갔으면 좋겠다 생각이 든다.



원래 계획은 경주의 용산회식당에 가서 회덮밥을 먹고 서출지에 가서 꽃들을 구경하고 돌아오는 것이었다. 근데 아뿔싸! 요즘 같은 여름 휴가철에는 식당이 휴무인지 아닌지 확인한 뒤에 갔어야하는데 그러지를 못했다. 식당 문 앞에 여름휴가 안내문을 보고 돌아서야했다.



용산회식당 주차장 근처에 식당 안내 팻말이 하나 서있었다. 수리뫼라는 식당이었는데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평이 괜찮아서 찾아가보기로 했다. 장독대들이 즐비한 근사한 한옥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에어컨 빵빵한 실내에 자리잡고 앉았다. 열린 문 너머로 파란 하늘이 보였다. 시원한 상태에서 보는 여름 풍경은 참 싱그럽다.



갈비찜이 나오는 세트를 시켜 먹었다. 꽃이 들어간 신기한 잡채, 갓지은 솥밥, 담백한 갈비찜, 오디드래싱 샐러드가 기억에 남는다. 맛있는데 양이 너무 많아서 다 먹지를 못해 아쉬웠다. 그래도 배부른 와중에 갈비찜은 다먹었다. 역시 고기는 배신이 없지, 배를 통통치며 밖으로 나왔다. 차에 올라 네비에 서출지를 찍고 달렸다. 찌는 여름이지만 그래도 때마다 피어나는 꽃이 보고 싶어서 찾아갔다.



푸른 하늘에 파릇파릇한 풀들이 싱그러운 여름, 하지만 차 밖으로 나서는 순간부터 푹푹찌는 더위에 숨이 막힐 것 같았다. 그래도 서출지 한바퀴는 돌아야지 맘먹고 못 둘레를 따라 걸었다. 배롱나무는 지금 한창이었다. 분홍빛 꽃들이 탐스럽게 피어나 있었다. 배롱이라는 이름은 참 귀엽고 듣기에 좋다. 그런데 이름과는 달리 모양새는 귀엽다기 보다 고고하고 기품있어 보인다.



서출지는 신라시대 때부터 이어져온 못이다. 익숙하지만 아득한 나라 신라, 이곳은 참으로 오래된 역사를 지닌 곳이다. 삼국유사에는 서출지와 관련된 설화가 하나 소개되어 있다. 신라 소지왕이 남산에 나들이를 갔는데 갑자기 까마귀와 쥐가 나타났다. 쥐가 사람말로 까마귀를 쫓아가라고 이야기했는데 놀란 왕은 병사를 시켜 까마귀를 쫓아가게했다.



까마귀를 쫓던 병사는 돼지 두 마리가 싸우는 장면을 마주하게 되는데 싸움 구경에 정신이 팔려 그만 까마귀를 놓치고 말았다. 그 때 한 노인이 나타나 병사에게 글이 적힌 종이를 하나 건네주었다. 종이 겉면에는 '열어보면 두 사람이 죽을 것이고 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을 것이다'라고 적혀있었다. 이를 건네받은 왕은 두 사람이 죽느니 한 사람이 죽는게 낫다며 종이를 열어보지 않았다.

그러자 일관이 한 사람은 왕을 가리키는 것이라 간언하여 왕이 종이를 열어보니 '거문고 갑을 쏘아라'고 적혀있었다. 왕이 궁궐 안에 있는 거문고 갑을 활로 쏘았더니 그 안에서 중과 궁주가 간통하고 있다가 놀라서 뛰쳐나왔다. 왕은 이 둘을 사형에 처하고 노인이 종이를 건넨 연못은 서출지(書出池)라 불리게 되었다.



까마득한 먼 옛날에 붙여진 이름이 아직까지도 이어져오고 있으니 신기하다. 못 둘레를 걷다 보면 배롱나무 가지 사이로 한옥 한 채가 보인다. 이요당(二樂堂)이라는 정자인데 조선시대에 만들어졌다. 이요당 덕분에 못 풍경이 더 운치게 느껴진다.

멀리 보이는 못 위로는 연이 빽빽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연꽃은 간혹가다 한 두 송이 정도 피어나 있었다. 아마도 일주일 뒤 즈음이면 온사방이 연꽃으로 가득할 것 같다. 그 시기 즈음 왔으면 코 끝을 찌르는 연꽃향기를 가득 맡았을텐데 아쉬웠다.



서출지를 나와서 향한 곳은 황리단길. 간만에 찾은 황리단길에는 역시나 사람들로 넘쳤다. 갑자기 피자가 먹고 싶어서 어느 피자집에 들어갔는데 완전 실망했다. 도우에는 전혀 쫄깃함이 없었고 토마토 소스가 거의 발려져 있지 않았다. 내 취향에는 영 맞지 않았다. 대구 삼덕동에 있는 피자집이 번득 떠올랐다. 거기는 맛있어서 피자가 나오면 허겁지겁 먹어 치우기 바쁜데 말이다. 우리는 맛없게 배부른 상태가 더 싫어서 반 넘게 남기고 나왔다.



저번부터 가보자 가보자 하다가 못가본 마사지샵에 들어갔다. 황리단길에 있는 로드풋마사지라는 곳이다. 기계로 마사지를 받을 수도 있고 직접 마사지사에게 수기로 받을 수도 있다. 우리는 수기로 하는 풋마사지 신청했는데 꽤나 좋았다. 창밖 보면서 뜨끈한 물에 족욕을 하다가 차도 마시며 마사지를 받았다. 만족도가 높아서 다음에는 전신 마사지 받아봐야겠다. 선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피곤이 가셨다. 마사지를 끝으로 짧은 경주 나들이는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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