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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NA Aug 17. 2019

한여름 1박 2일 남해 여행기

우리가 여태 가장 많이 찾았던 국내 여행지를 생각해보니 구례와 경주, 남해가 떠오른다. 대구에서 간다면 당일치기나 1박 2일로도 여행이 가능해서 주말에 별다른 일이 없다면 즉흥적으로 떠나기도 했었다. 이번에 우리는 많은 추억이 새겨진 남해로 여행을 떠났다.

8월은 온 여행지가 여행객들로 북적이는 시기이다. 한여름에는 남해를 가야지 생각해두고 숙소를 미리 예약해두었다. 성수기라서 숙박비가 엄청났지만 뭐, 매년 이러는거니까 그려려니 했다. 이번 여행은 아침 일찍 남해로 가서 해수욕을 하고 풀빌라 펜션에서 수영하며 쉬는 것으로 계획을 잡았다.



지난 남해 여행에서 들렀던 솟대 하우스라는 카페에 찾아왔다. 도로 옆에 자리잡은 이 카페에서 내려다보이는 남해 바다와 마을 풍경이 참 아름답다. 멀리 보이는 이름 모를 섬은 바다 위에 둥둥 떠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 카페에는 작년 봄에 처음 왔었다. 1년이 지나 다시 찾아온 카페는 그 때 그 모습 그대로였다. 카페 안으로 들어가니 차가운 에어컨 바람이 훅 느껴졌다. 이날은 밖에 잠깐 서있기만해도 땀이 줄줄 흘러내리는 그런 날씨였다. 실내에 들어오니 살 것 같았다. 아무리 기막힌 풍경도 더위 앞에서는 소용이 없나보다. 시원한 실내에서 창밖 풍경을 바라보니 그제서야 남해 바다가 더 아름답게 보였다. 우리는 토마토 주스와 커피, 에그타르트를 시켜 먹었다.



카페 곳곳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추억들이 담겨져 있었다. 벽면을 지나서 천장까지 포스트잇으로 뒤덮여 있는데 그 포스트잇에 저마다의 사연이 적혀있다. 그 글귀들을 찬찬히 읽어보면 참 재미있다. 이루고 싶은 소망, 전하지 못한 사랑 고백, 어린 아이의 순진무구한 말, 남해에서 남긴 추억들... 우리도 1년 전 어느 봄날에 포스트잇을 남기고 갔었다. 사실 카페에 다시 오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그 때 남기고 간 포스트잇을 찾아보고 싶어서였다. 우리가 붙여놨던 자리에 가보니 포스트잇이 그대로 천장에 붙어 있었다. 뭉클했다.



카페를 나와서 은모래 해변쪽으로 달려갔다. 가는 길 중간에 은모래 해변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 있다. 남해에 올 때마다 이 곳에 잠시 차를 멈춰 세우고 은모래 해변을 바라보곤 했다. 내가 느끼기에는 은모래 해변에 가서 바다를 보는 것보다 이렇게 높은 고지에서 내려다 볼 때가 더 아름다운 것 같다. 산이 병풍처럼 해변을 감싸고 있다. 푸르스름한 바다가 파도를 철썩이며 하얀 모래를 덮었다.



남해는 드라이브하기 참 좋은 곳이다. 어딜가나 멀리 바다 위에 떠있는 이름 모를 섬들의 실루엣이 그림같이 보이고 푸른 바다가 보인다. 그리고 여름을 맞아 초록빛으로 반짝이는 다랭이 논들과 푸릇푸릇한 산들도 보기 좋다. 언젠가 남해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리 자주 남해를 찾다 보면 어느새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은모래 해변에서 해수욕을 할 작정이었으나 사촌 해수욕장으로 일정을 바꾸었다. 펜션 체크인이 3시였는데 시간이 애매하게 남아서 펜션과 더 가까운 해수욕장이 나을 것 같았다. 은모래 해변은 다음을 기약하고 사촌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같은 남해인데도 차를 타고 40여분 정도 달려가야 했다. 남해에는 남해도와 창선도 두 개의 큰 섬이 있다. 창선도 위쪽은 사천이고 남해도 위쪽은 하동이다. 우리는 사천을 통해서 창선도를 지나 남해도로 내려왔다.



사촌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모래밭으로 뛰어들어갔다. 햇볕이 너무 뜨거워서 파라솔 없이 해변에 있다가는 통구이가 될 것 같았다. 우리는 파라솔(만원)과 튜브(중형 오천원) 2개를 대여했다. 화장실에 가서 수영복으로 갈아 입고 나와 바다 속으로 뛰어들었다. 처음에는 너무 차가워서 발만 담그고 있다가 서서히 익숙해졌다. 익숙해지니 바다는 마냥 시원하게 느껴졌다. 바다 속에 있으니 더위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사촌 해수욕장은 은모래 해변보다는 사람이 적어서 덜 번잡스러워 좋았다. 파라솔도 꽉 차지 않았고 가족 단위 피서객들이 많았다. 다만 아쉬웠던 점은 발에 계속해서 해초들이 걸리적거려서 수영하기가 불편했다는 점이다. 먼 바다로 나아가면 덜해졌지만 파도를 느끼며 놀려면 해변가에 있어야했는데 자꾸만 미역이 내 다리를 휘감았다. 그래도 재미나게 잘 놀았다. 해변가 초입구에 자갈돌들이 많아서 아쿠아슈즈를 신고 와야 좋다.



해수욕 하다가 배가 고파져서 주차장 옆에 있던 마트에 들렀다. 김치 왕뚜껑 하나와 치킨을 시켰다. 주인 아저씨가 전화번호를 적어가더니 치킨이 다 되면 연락한다고 놀고 있으라고 하더라. 아저씨가 직접 만드시는 수제 치킨! 사실 아무런 기대가 없었는데 허기가 져서 그런지 아니면 정말 맛있어서 그런 것인지, 무튼 한입 치킨을 베어 물었을 때 꿀맛이었다. 바삭바삭 갓 튀긴 치킨이 맛이 없을리 없지.

와구와구 먹어치우고 또 해수욕을 즐기다가 펜션 체크인 시간이 임박해와서 해변가로 나왔다. 짐을 다 치워두고 갈아입을 옷과 수건을 준비하고 근처 샤워장으로 향했다. 성인 2천원 요금을 내면 샤워장에서 따뜻한 물로 씻고 나올 수 있었다. 샤워장에는 아무것도 없으니 미리 샴푸, 바디워시, 수건을 챙겨가야한다. 난 챙겨가지 못해서 물만 적시고 와야했다.



샤워장에서 샤워를 하고 나와서 마트에 잠깐 들렀다. 삼겹살이랑 구워 먹을 야채들과 과일, 군것질 거리들을 좀 사서 곧장 예약해둔 펜션으로 향했다. 체크인이 3시부터였는데 마트에 들렀다 오느라고 살짝 늦었다. 우리가 배정받은 방으로 들어가니 창 너머로 햇살에 반짝이는 바다가 보였다. 가만히 보기만해도 기분 좋은 풍경이었다. 맞은편으로 보이는 땅은 바로 여수라고 들었다. 우리는 남해와 여수 사이의 바다를 보고 있는 것이었다.



숙소는 참 깔끔했다. 화장실, 부엌, 거실 모두 다 깨끗하게 잘 정돈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바깥에 보이는 바다가 너무 아름다워서 좋았다. 때마침 날씨도 좋아서 시야가 뻥 뚫려서 좋았다. 밖으로 나가보니 수영장에는 시원한 물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얼른 수영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튜브와 물안경을 챙겨서 물에 뛰어들었다. 밖에 있어도 시원한 물 속에 있으니 여름 무더위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수영장 너머로 보이는 풍경들이 끝내줬다. 해가 바다 위로 내리쬐고 은모래가 뿌려진 것처럼 반짝반짝 빛이났다. 바로 앞에 보이는 이름 모를 섬에는 파도가 철썩이며 하얀 거품이 일어났다. 무인도일까? 지도를 살펴보니 죽도라는 이름을 가진 섬이었다. 아, 눈앞에 보이는 바다가 너무 아름다워서 그냥 물 위에 둥둥 떠있기만해도 좋았다. 해수욕을 하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고요한 바다를 그냥 바라보는 것이 더 좋은 건 왜일까?



시원한 맥주로 갈증을 풀고 이번 남해 여행에서 읽으려고 데려온 책도 읽고 한가로이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배고파질 즈음에 저녁 준비를 시작했다. 여기는 따로 숯을 주는 것이 아니고 그릴을 제공해 주었다. 처음에는 고기가 잘 안 익는 것 같아서 이를 어쩌지 고민했다. 열이 오르는데 시간이 좀 걸려서 그렇지 고기가 타지 않고 골고루 아주 잘 익었다. 고기 뿐만 아니라 마트에서 사온 치즈랑 버섯, 파프리카를 구워 먹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기름이 안 튀고 저온으로 계속 익히는 것인지 타지를 않아서 좋았다. 나중에 저 그릴 살려고 이름도 알아뒀지. 배가 터지게 먹고나서 다시 물 속에 뛰어 들었다.



우리가 보고있는 바다 쪽이 아마도 서쪽이었나 보다. 해가 저무는 모습이 실시간으로 보였다. 길게 늘어진 햇살은 잔잔하게 바다를 비췄다. 온 세상이 노랗게 보이는 이 시간을 난 참 좋아한다. 익숙했던 풍경도 느즈막한 오후 햇살 앞에서는 아름답게 보인다. 배부르게 밥도 먹고 수영을 마치고 썬베드에 누워 책을 보는데 노을이 쫙 펼쳐져서 환상적이었다.



하늘은 점점 더 불타오르고 붉은 노을은 절정을 향해 달려간다. 해는 넘어가고 보이지를 않았다. 아마도 저 여수 땅 너머에 있으려나?



노을을 한참 바라보며 밖에서 책을 읽었다. 그러다가 날이 어둑어둑해지고 책이 안보이기 시작하고 모기들이 왕성하게 활동하기 시작할 즈음 안으로 들어왔다. 마트에서 사온 동치미 물냉면을 끓여서 후다닥 먹고 영화를 하나 봤다. 펜션 안에 ip티비가 연결되어 있어서 영화를 골라 볼 수 있었다. '조'라는 영화를 보았는데 로봇인 여자와 로봇을 만든 남자의 사랑을 담은 이야기였다.



다음날 아침, 눈을 뜨고 창밖을 내려다보니 뭔가 찌뿌둥한 날씨였다. 구름이 잔뜩 끼어서 곧 비가 내릴 듯 했다. 아니나 다를까 후두두둑 소나기가 갑자기 쏟아졌다. 밖에서 말리고 있던 수영복들과 아쿠아슈즈 등등 다 챙겨서 안으로 들고와야했다. 아침 9시부터 조식을 제공해줘서 시간 맞춰서 식당으로 향했다. 비가 와서 큼지막한 우산을 쓰고 갔다.



깔끔한 아침상. 보기에도 좋고 맛도 좋았던 조식이었다. 난 과일을 참 좋아하는데 복숭아, 아오리, 멜론, 포도 총 4가지의 과일이 한 접시에 담겨있어서 너무 좋았다. 크로아상과 커피는 찰떡궁합이니까 역시 좋았고, 다만 한가지 아쉬웠던 점은 소시지나 햄, 베이컨과 치즈가 좀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과일 종류를 좀 줄이고 저 둘을 추가하는게 더 음식 밸런스가 맞지 않을까 싶었다. 고기가 없어서 그런지 다 먹었는데 배가 차지 않았다. 방으로 돌아와서 열심히 체크아웃 준비를 했다. 분리수거하고 설거지도 하고 이것저것 정리하고 치우다보니 어느새 체크아웃 시간이 왔다. 살랑 거리는 바람이 피부에 닿고, 나긋나긋하게 들려오던 파도소리. 그 느낌이 너무 좋았어서 아마도 나중에 다시 이곳에 찾아올 것 같았다.



다행스럽게도 날이 화창하게 개었다. 언제 비가 내렸냐는 듯이 하늘은 푸르고 바다도 푸르렀다. 우리는 곧장 점심을 먹으러 갔다. 남해에 왔으니 멸치쌈밥을 먹어줘야지 싶어서 여기저기 인터넷을 뒤적이다가 찾은 어느 식당을 찍고 달려갔다. 그런데 가는 도중 괜찮아보이는 식당이 눈에 보여서 너무 배가 고팠던지라 그냥 들어갔지. 우리가 멸치쌈밥을 꽤나 먹어본 결과로는 남해 식당 어디를 가든 맛은 비슷비슷하다. 그냥 덜 붐비고 깔끔한 곳이라면 들어가면 될 것 같다.



상추 한 장에 멸치, 마늘,쌈장을 넣고 한입에 와앙 싸먹으면 맛이 참 좋다. 이 멸치쌈밥 맛은 갈치조림의 미니버전이라고 해야하나? 작은 갈치를 먹는 듯한 기분이 나는 맛이다. 그런데 평소에 먹던 갈치조림은 뭔가 밥을 비벼서 먹기만 했었지 쌈을 사먹을 생각은 못해봤다. 이 멸치는 조그만해서 쌈싸먹기에 딱이다. 가운데 큰 뼈만 발라내서 먹는데 잔가시들은 씹어서 넘길 수 있다.



그리고 멸치쌈밥과 함께 꼭 같이먹어야할 멸치회무침! 처음에 멸치회를 맛보기 전에는 무척 비릴 것이라 생각하고 지레 겁먹었는데 진짜 이 멸치회가 별미다. 새콤달콤하게 잘 무친 멸치회는 전혀 비리지 않았고 한치 비슷한 느낌의 회가 입에 쨕쨕 붙었다. 이 식당에는 멸치회에 미나리가 들어가있어서 특히 맛있었다.



우리의 남해 여행의 마지막 행선지는 카페 유자. 여기도 남해 여행 올 때마다 들리는 것 같다. 남해 여행을 마치며 카스테라를 사가는 것이 뭔가 의식처럼 굳어졌다. 별 생각없이 찾아갔는데 안은 손님들로 꽉 차있었다. 다행스럽게도 두 자리가 남아있어 운좋게 앉을 수 있었다. 우리 뒤에 온 손님들은 자리가 없어 다시 나가시더라. 봄에는 나가서 먹는 분들도 꽤 있었던 것 같은데 요즘같은 무더운 날씨에 야외에 앉아서 먹는 것은 무리였다. 우유랑 유자청 주스와 커피, 카스테라를 시켜 놓고 챙겨온 책을 읽었다. 여행지마다 책을 한권씩 읽는 건 좋은 것 같다. 여행을 떠올리면 그 책이 떠오르고, 책을 떠올리면 여행이 떠오른다. 추억이 얽혀 있어서 서로가 서로를 떠올리게 해서 좋다.

이번 여행에는 노르웨이 작가의 책과 함께했다. 남해 바다와 피오르드 뿌연 바다가 오버랩되었다. 조만간 노르웨이에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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