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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NA Sep 08. 2019

로마의 흔적이 남아있는 아를 원형 경기장에서

프랑스 남부의 조그만 마을 아를(Arels)은 고흐의 흔적들 뿐만 아니라 로마 시대 유적들로도 유명하다.

도시 곳곳에 산재한 옛스런 건축물들을 보면 마치 내가 로마에 와있는 듯 했다. 사실 로마에 가본적도 없지만 우습게도 괜히 그런 기분이 들었다. 이날은 부지런히 아를에 남아 있는 고대 로마 유적들을 돌아보기로 마음 먹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호텔에서 조식을 챙겨 먹고 밖으로 나섰다. 아를에서 머물렀던 호텔 조식은 여태 겪었던 조식 중 제일 별로였다. 치즈와 햄 종류가 다른 곳보다 현저히 적었고 먹을만한 과일도 없었다. 그래도 오전 반나절을 버텨내려면 배를 채워야했기에 억지로 음식들을 뱃속에 집어 넣었다.



숙소 근처에 커다란 원형 경기장이 하나 있었다. 이 경기장은 2천년 전 로마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수없이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잘 보존되고 있다. 이 조그만 도시가 오래된 로마 유적을 품고 있다니 참 신기했다. 나는 어제 사두었던 아를 통합권을 이용해 경기장 안으로 들어갔다.



경기장은 켜켜히 쌓인 빛바랜 벽돌들로 만들어져 있었다. 2층 높이의 커다란 기둥들이 제일 먼저 보였다. 줄줄이 이어진 아치 기둥들이 건물 전체를 받들고 있었다. 기둥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걸었다. 아무도 없는 길 위로 혼자 걸으니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넘어온 것 같았다.



기둥 사이로 걷다가 안쪽으로 들어서면 넓은 경기장이 나타난다. 경기장은 여러번 보수를 거쳐서 꽤나 현대적인 모습이었다. 오늘날 이곳에서 투우 경기가 종종 열린다고 들었다. 내가 방문했던 날은 아무런 행사가 없어서 한적했다.

나는 평소에 투우 경기를 부정적으로 생각했었다. 일부러 소를 사납게 만들어 화를 돋군 뒤에 잔혹하게 죽여버리는 일은 내 이해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아무리 역사가 오래된 전통이더라도 지금의 윤리 가치에 맞지 않다면 과감하게 지워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행스럽게도 아를에서 열리는 투우 경기는 스페인처럼 소를 죽이는 방식이 아니었다. 투우사들이 크로쉐(Crochet)라는 날카로운 빗을 이용해 소에게 가까이 다가가 뿔에 매달린 리본을 끊어내는 방식의 경기이다. 언젠가 볼 일이 있을런지 모르겠지만 사실 나에게 기회가 생긴다고 해도 보고 싶지가 않다.



프랑스 작가 알퐁스 도데는 이 경기장을 배경으로 '아를의 연인(L'Arlésienne)'이라는 극을 하나 썼다. 프로방스 지역에 사는 시골 농부가 아를 경기장에서 투우 경기를 보다가 어느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진 뒤 벌어지는 비극적인 이야기이다. 사실 극보다는 극에 쓰였던 비제의 모음곡이 더 유명하다. 들어보면 우리가 평소에 어디선가 많이 들어봤던 곡이다.



계단을 따라서 위로 올라오면 아주 근사한 전망을 보게 된다. 아치 기둥 사이로 론 강이 흐르고 있었다. 날이 흐려서 강물과 하늘은 뿌옇게 보였다. 그 밑으로 주홍빛깔 지붕을 가진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흐리멍텅한 날씨 때문인지 도시는 외롭고 쓸쓸해보였다. 아니, 내가 쓸쓸해서 그렇게 보이는 것일까? 아를에 있는 내내 나는 혼자였다. 그리고 외로움을 유독 자주 느꼈다.



멀리 풍경을 바라보며 원형 경기장 꼭대기 위를 걷는데 바람이 거세게 불어 잘못하다간 떨어지겠다 싶었다. 갑자기 기분이 아찔해져서 급히 내려왔다. 혼자 다니다가 이렇게 사람들도 없는 곳에서 갑자기 쓰러지면 영영 끝이 날 것만 같았다.



아, 대화를 나눌 누구라도 하나 이 자리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여행이 지나갈수록 외로움은 더 증폭되었다. 장엄한 유적들과 신비로운 자연 풍경들을 보며 느꼈던 두근거림은 시간이 지나자 이내 사그라들고 외로움만 남았다.

여행 전 나는 내 스스로가 무척 개인주의적이며 함께인 것보다 혼자인 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오랜시간 계속 혼자 지내다보니 알게 되었다. 누구도 혼자 살아갈 수 없으며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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