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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NA Oct 24. 2019

아를 고대 극장에서

아를의 로마 유적지를 찾아가다

넓은 원형 경기장을 홀로 정처없이 걷다가 밖으로 나왔다. 나는 경기장 부근에 있는 아를 고대 극장(Théâtre antique d'Alres)으로 향했다. 이곳도 역시 로마시대 유적으로 아를 통합권을 이용해 입장할 수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니 신비로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여기저기 건물 잔해들이 흩어져 있었고 서있던 벽은 무너진 듯 기둥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울퉁불퉁 부서진 돌조각 위로 정교하게 새겨진 문양이 보였다. 오랜 세월이 지나 바스라진 모습에서 아득하게 먼 시간이 느껴졌다.



기원전 1세기에 만들어진 이 건축물은 로마 시민의 극장으로 쓰였는데 무려 8천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였다. 사람들은 반원 모양으로 쌓인 계단 위에 빼곡히 앉아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연극을 관람했을 것이다. 어떤 연극이었을까? 극장의 모습은 어땠을까? 로마 시민의 모습은 또 어떨까? 희미하게 남은 과거의 흔적들을 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보았다.



덩그러니 남은 커다란 두 기둥을 보니 몇년전 갔었던 캄보디아 씨엠립이 떠올랐다. 왕조가 망하고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진 앙코르 유적들은 깊은 정글 속에 파묻혀 폐허처럼 변해 버렸다. 19세기 어느 프랑스 고고학자가 숨겨진 유적을 발견했고 복원 작업이 진행되었지만 아직까지도 온전한 모습은 갖추질 못한 상태다.

아를의 빛바랜 극장은 앙코르 유적의 무너져내린 벽 그리고 굴러다니는 돌들처럼 비슷하게 다가왔다. 그 시절을 살아가던 사람들은 사라지고 흔적만 남은 곳, 언젠가 사라져버릴 내 존재에 대해서 생각했다. 삶이 허무하게 느껴져서 가슴이 아파왔다. 어떻게 살아가야 이 짧은 삶이 후회가 없을까?



우습게도 이 극장에서 모기들에게 왕창 물어 뜯겼다. 훤하게 살을 드러낸 사람들이 주위에 널렸는데 굳이 검은 스타킹으로 꽁꽁 싸맨 나의 다리를 물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생각해보니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이 여럿 모여있어도 나만 모기에 물리곤 했다. 그 때문에 인간 모기향이라고 놀림 받기도 했었다. 외국 모기에게도 인기가 많다니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물린 자리들이 너무 가려워서 숙소에 잠시 들렀다. 물파스를 덕지덕지 바르니 비로소 살 것 같았다. 혹시나 싶어 캐리어에 물파스를 챙겨온 내 자신이 어찌나 기특하던지!

침대 위에 드러누워 잠들고 싶었지만 다시 호텔을 나섰다. 아를 통합권으로 볼 수 있는 장소들이 더 있었기 때문이다. 아를 시청사로 향하는 길, 인적 드문 거리는 적막했다. 쓸쓸함을 느낄 찰나 초록빛깔 싱그러운 담쟁이가 눈에 들어왔다. 옛스러운 건물 위를 가득 수놓은 담쟁이가 혼자인 나를 위로해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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