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를 통합권으로 볼 수 있는 곳이어서 일부러 찾아갔는데 들어가자마자 왜 이곳에 제 발로 찾아왔을까 후회스러웠다. 컴컴하고 습기 찬 지하 회랑을 나 홀로 걸었다. 지나다니는 사람이라도 한 명 있었으면 덜 무서웠을 텐데 내 발소리만 넓은 회랑에 울려댔다. 간간히 켜져 있는 조명은 너무 어두워서 공포심을 떨치는데 별로 도움이 되질 않았다.
아치 형태의 통로가 길게 이어졌다. 걷는 길 주위로 부서진 돌 조각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돌 조각에는 아름다운 무늬들이 새겨져 있었는데 어느 시대의 유물인 것일까? 이곳은 오래전 로마시대에 만들어진 회랑이라고 들었다. 그러니 굴러다니는 돌조각들은 아마도 로마 시대의 흔적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와 함께였다면 이 유물들을 자세히 관찰해 보기도 하고 빛바랜 시간을 떠올리며 감동을 받고 지나갔을 텐데, 난 그저 어둠 속에서 잔뜩 긴장을 머금은 채 걸었다.
아를 시청사 지하 회랑을 나와 근처에 있는 성당을 구경했다. 이 성당의 정식 명칭은 'Saint-Trophime Primatial Catholic Church'. 지하를 벗어나 밝은 세상으로 나오니 좀 살 것 같았다. 이제 긴장을 풀고 여유롭게 발길 닿는 방향으로 걸어 보았다. 멋들어진 기둥들이 촘촘히 서있는 아치 복도 아래를 지나가며 아름다운 조각들을 구경했다. 이 성당은 과연 언제 지어진 것일까?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조각들을 보면 근래의 건축물은 아닌 듯싶었다.
기둥마다 정교한 조각들이 새겨져 있었다. 어떤 내용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래도 종교와 관련된 것 같았다. 이곳도 지하 회랑처럼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무척 고요했다. 성당을 전세 낸 기분이랄까? 중간중간 돌 난간에 앉아 멍하니 하얀 건축물과 나무,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리저리 구도를 바꿔가며 카메라에 열심히 풍경 사진들을 담았다. 혼자 있으니 이야기할 사람은 없고 시간은 넘쳐흐르니 사진을 더 많이 찍게 되는 것 같았다.
한참을 밖에 있다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 위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계단을 오른 뒤 밖으로 나오니 방금 전까지 내가 서 있었던 네모난 광장과 복도가 내려다 보였다. 그리고 커다란 탑 하나가 눈앞에 서있었다.
실컷 둘러보고 이제 아늑한 내 숙소로 돌아가야겠다 싶었다. 배가 고파서 뭐라도 먹고 숙소에 들어가기로 하고 방황하다가 어느 식당에 들어갔다. 일본인 아주머니가 운영하는 샌드위치 가게였다. 계속 혼자 다니다가 나와 비슷하게 생긴 동양인 아주머니를 보게 되니 고향 사람을 만난 듯 편안함이 느껴져 좋았다.
나는 아보카도 샌드위치와 사과주스를 주문했다. 퍼런 샌드위치가 나왔는데 속이 반으로 갈라진 빵 안에 온통 초록색들 투성이었다. 올리브 오일에 무친 아보카도와 양상추 그리고 피클. 아보카도를 좋아하는지라 맛은 좋았는데 왠지 내가 토끼가 된 기분이 들었다. 치즈나 햄 한 점이라도 들어가 있으면 좋으련만.
샌드위치를 배부르게 먹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아를 강변을 잠깐 거닐었다. 아를에 머물렀던 내내 날씨가 좋지 않아 하늘이 뿌연 빛깔이었는데 이 날은 하늘 색깔이 이쁘장했다. 맑고 푸른 하늘과 흐르는 강을 바라보며 길을 걸으니 기분이 상쾌했다.
숙소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서 망고, 치즈, 요거트를 사들고 왔다. 아를에서의 마지막 식사는 잠들기 전 침대 위에서 해결했다. 동행 없이 혼자 다닐 때는 보통 해지기 전에 들어와 숙소에서 간단히 저녁을 먹었다. 사실밖에 나가서 맛있는 음식들을 먹고 싶었지만 어두운 밤거리를 혼자 걸어 들어오는 것이 너무 무서웠다. 타국에서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걱정도 되었고. 나름의 내 여행 원칙을 지킨 덕분에 무사히 혼자서도 유럽여행을 잘 다녀온 것 같다. 맛난 것들을 많이 못 먹었어도 그것으로 위안 삼으며 하루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