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날은 기차를 타고 아를에서 리옹으로 떠나는 날이었다. 이른 아침에 기차를 타고 떠나야해서 오전 6시 즈음에 일어났다. 전날 분명 일찍 잠들었는데 어찌나 피곤하던지 침대에서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피로가 누적된 것일까? 그냥 이대로 더 잠들었다가 느즈막히 일어나 호텔 조식을 먹고 출발할까 싶었다. 그렇게 일어날까 말까 혼자 머릿속으로 치열한 고민을 하다가 미리 끊어둔 표값이 아까워서 결국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짐을 정리하고 밖으로 나오니 7시 즈음이었다. 이틀간 머물렀던 아를 벨베데레 호텔, 정든 숙소와 안녕하고 아를역으로 향했다.
무거운 캐리어를 끙끙 들어 올리며 허름한 기차에 올라탔다. 캐리어에 자물쇠를 걸어 놓고 근처에 앉았다. 지역 기차다 보니 내가 산 표에 좌석이 따로 지정되어 있지 않았다. 기차에서 캐리어를 통채로 도난당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그런지 캐리어를 자물쇠로 잠궈 놓거나 내가 보이는 곳에 캐리어를 놓아둬야 맘이 편했다. 기차는 지나치는 역마다 멈춰 섰다. 나는 정신 없이 고개를 휘두르며 자다가 방송이 나올 때마다 어렴풋이 깼다. 무슨 소린지 도통 알 수 없는 안내 방송을 들으며 다시 잠들고 깨기를 반복하다가 리옹에 도착했다. 리옹에는 비가 무지 많이 내리고 있었다. 배가 고파서 역에서 샌드위치를 하나 사서 백팩에 챙겨 넣고 호텔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리옹 역에서 꽤나 떨어진 곳에 내가 예약한 호텔이 있었다. 보통은 이동하기 편한 역 근처에 숙소를 잡았다. 그런데 리옹에는 괜찮은 호텔이 별로 없어서 역에서 좀 떨어진 곳에 숙소를 잡았는데 이렇게 고생할 줄이야! 한 손은 우산을 집어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캐리어를 질질질 끌고 갔다. 그리고 중간중간 멈춰서서 핸드폰으로 지도를 챙겨봐야 했다. 우산을 써도 비는 내 몸쪽으로 들이쳤다. 내 온 몸이 점점 더 축축히 젖어 들어갔다.
마침내 호텔에 도착했다. 난 물에 젖은 생쥐 꼴로 체크인을 했다. 모든 방이 청소 중이어서 로비에서 조금 기다렸다가 방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우선 방 안에 들어오자 마자 홀딱 젖은 옷과 신발을 벗어 던지고 말려 두었다. 캐리어도 잔뜩 비를 맞아서 혹시나 젖었을까 싶어 열어 보았는데, 으악! 캐리어 확장하는 부분이 천으로 되어있다보니 물이 안까지 다 스며들었다. 부랴부랴 캐리어도 열고 안에 있던 내용물들을 꺼내서 말려 두었다.
정리가 좀 되고 한시름 놓으니 배가 고파졌다. 우여곡절 끝에 먹는 리옹역에서 산 샌드위치. 혼자 호텔 방 안에서 샌드위치를 먹는데 왜 이렇게 서러운 것인지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비는 왜 하필 내가 숙소로 이동할 때 억수로 쏟아졌는지, 숙소는 왜 이렇게 역에서 먼 것인지, 왜 나는 홀딱 젖은 채로 이 방안에 있는 것인지 모든 상황들이 원망스러웠다. 토로할 곳도 없고 도와줄 이도 없으니 그냥 눈물의 샌드위치를 삼키면서 내 스스로를 위로했다.
쉬면서 마음을 달래고 난 뒤에 정신 차리고 보니 내가 예약한 호텔이 꽤나 좋아 보였다. 고생한 보람이 있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름 위로가 되는 호텔 방이었다. 화장실에 들어가니 레몬 버베나 향이 풍겼고 큰 욕조가 있어서 반신욕을 하며 피로를 풀 수 있었다. 호텔 침구는 깨끗했고 길쭉한 창 너머로는 내가 걸어온 거리가 내려다 보였다. 금세 마음이 편안해졌다. 사람이 행복해지는 겅 한순간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