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쫄딱 맞으며 겨우 리옹 호텔에 도착한 뒤 젖은 옷을 벗어 말리고 잠시동안 휴식을 취했다. 곧이어 나는 보송보송한 새 옷으로 갈아 입고 밖으로 나섰다. 리옹에 머무르는 시간은 단 이틀 뿐이었다. 내일은 안시에 가기로 했으니 리옹을 돌아볼 시간은 사실상 이 날 하루 뿐이었다. 몸도 마음도 지쳤지만 다시 힘을 내서 뚜벅뚜벅 걷기 시작했다.
푸니쿨라를 타고 푸비에르 언덕 위로 올라와 성당에 도착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오후, 하늘에는 뿌연 구름이 가득 차있었다. 눈 앞에 보이는 성당은 무척 거대했다. 높이 솟아오른 두 첨탑 사이로 잿빛 기둥들이 나란히 서 있었다. 성당에 가까이 다가서니 건물 외벽에 새겨진 정교한 조각들이 눈에 들어왔다. 감탄하며 올려다 보다 비를 피해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성당 안에서 잔잔한 성가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힘들었던 오늘 하루를 위로하는 듯한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성당 안을 둘러보는 사람들은 몇 없었고 그 흔한 발소리도 나질 않았다. 고즈넉한 분위기에 마음은 절로 평화로워졌다.
찬찬히 성당 안을 둘러 보았다. 성당 내부는 화려한 모자이크와 조각들로 가득했다. 길쭉한 스테인드글라스 창으로는 은은한 빛이 스며 들어왔다. 벽면과 천장을 수놓은 다양한 색채의 모자이크들을 구경하다 보니 저절로 입이 떡 벌어졌다. 이 모든 것들이 사람의 손에서 나왔다니! 인간이란 존재가 참으로 경이롭게 느껴졌다.
푸비에르 노트르담 성당은 리옹 시민들의 성금이 모여 만들어진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된 성당이다. 리옹 시민들에게 성모 마리아라는 존재는 아주 특별하다. 오래 전 유럽 전역에 페스트가 창궐해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어갈 때, 리옹 시민들은 성모 마리아에게 간절히 기도를 올렸고 페스트는 리옹을 빗겨갔다. 리옹에서는 매년 12월 8일이 되면 성모 마리아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담아 초를 밝힌다고 한다. 그리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리옹 빛 축제가 시작된다.
성당을 나오니 어느새 비가 그쳐 있었다. 비를 맞은 나뭇잎사귀에는 그렁그렁 물방울들이 맺혀 있었다. 성당 아래를 바라보니 아름다운 리옹 전경이 펼쳐졌다. 조금씩 걷히기 시작한 구름 덕분에 파란 하늘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아래로 붉은 지붕들의 집과 도로, 다리 그리고 푸른 강이 보였다. 동화 속 한 장면 같았다. 눈앞에 보이는 풍경이 너무 좋아서 푸니쿨라를 타지 않고 걸어서 내려가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