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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NA Sep 05. 2020

나홀로 리옹 오뙤흐 공원과 구시가지 걷기



비가 그쳤으니 언덕 아래로 내려갈 때는 푸니쿨라를 타지 않고 여유롭게 경치를 둘러 보며 걸어가기로 했다. 대성당 아래로 걸어가는 길목은 파릇파릇한 초록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구글맵을 살펴보니 이곳은 오뙤흐(Hauteurs)라는 이름을 가진 공원이었다.

나홀로 먼 이국 땅의 공원을 걷고 있으니 갑자기 내 자신이 어른이 된 것 같았다. 한 단계 성장한 기분이랄까? 난 의기양양한 기분으로 힘차게 걸었다. 혼자라는 사실이 어떤 때는 무척 외롭고 지루하게 다가오다가, 또 어떤 때는 가슴이 벅차 오르도록 행복하기도 했다. 이 순간은 아마도 후자 쪽이었나 보다. 여행 중 왔다갔다하는 감정기복을 다스리는 것은 혼자 감당해야할 일이었다.





하늘을 가득 채운 뿌연 구름들 아래로 리옹 전경이 내려다 보였다. 유럽 여행을 처음 시작했던 하이델베르크가 떠올랐다. 그 때도 나홀로 철학자의 길을 걷고 있었고 언덕 위에 올라 하이델베르크의 전경을 내려다 보았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한달여의 시간이 길게만 느껴졌었는데 어느새 나는 여행의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산책을 하다가 붉은 무궁화 군락을 만났다. 여름철 길거리마다 환하게 피어나는 무궁화를 먼 이국에서 만나게 되니 반가웠다. 큼지막한 꽃잎에 빗방울들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발 가는대로 걷다가 로즈가든이라는 표지판을 보고 방향을 틀었다. 길을 따라 쭉 이어진 아치 위로는 장미 덩쿨들이 가득했다. 꽃은 없었지만 적막한 아치 터널 아래를 걸으니 좋았다.





그렇게 걷다가 끝없이 아래로 이어진 옛스러운 계단을 발견했다. 가파른 계단을 하나씩 하나씩 내려가다 보니 방금 전 언덕 위에서 내려다 보았던 그 풍경에 다다랐다.





알록달록한 건물들은 아주 오래 전에 지어진 것처럼 보였다. 이곳에서는 내가 평소에 자주 보던 회색조의 건물들을 찾기 힘들었다. 거리를 두리번거리며 걷다가 황금빛깔의 사자상을 발견했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어디에선가 리옹(Lyon)이 불어로 사자를 뜻한다고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리옹에 사자상이 있는 것일까?





아래로 내려오니 언덕 위로 하얀 푸비에르 노트르담 대성당이 보였다. 언뜻 푸니쿨라를 타고 올라가던 순간이 떠올랐다. 뒤이어 성당 안에서 비를 피하며 앉아 있던 순간, 아름다운 벽화들을 보았던 순간도 떠올랐다. 다시 볼 날이 있을런지 모르겠다 저 하얀 성당, 그런 생각을 하며 돌아섰다.





언덕 위가 아닌 아래에도 성당이 하나 더 있었다. 이렇게 큰 성당이 여럿 있는 걸 보니 리옹은 정말 큰 도시였구나 싶었다. 쉬어갈 겸 성당 안으로 들어가서 잠시 앉아 있기로 했다. 짧은 휴식을 마치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푸른 하늘을 마주하게 되었다.





비가 그쳤고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던 먹구름들도 걷혔다. 파란 하늘과 그 하늘이 담긴 강줄기를 보니 기분이 산뜻해졌다. 나는 리옹역 근처를 향해 걸었다. 역 근처에 있는 쇼핑 센터에서 뭐라도 먹고 내일 떠날 기차표를 알아볼 요량이었다.

하루 종일 걸어다녀서 그런지 다리가 너무 아파서 지하철을 타기로 했다. 지하철을 타고 2정거장을 지나 리옹역에 도착했다. 우선 기차표를 알아 보러 역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내일 가려고 마음먹은 곳은 스위스와 프랑스의 경계에 있는 안시(Annecy)였다. 목적지를 안시로 설정하고 표를 조회해보니 생각보다 너무 비싸서 화들짝 놀라는 바람에 표를 사지 못했다. 어쩌피 표가 비싸도 갈 생각이었지만, 왠지 주저되어서 밥부터 먹고 표를 사기로 했다.





리옹역 근처에는 쇼핑센터가 있었는데 2층 언저리에 스시라고 적힌 글씨를 보고 신이 났다. 쌀알을 생각하니 절로 군침이 돌았다. 스시집을 찾아 가려는데 나에게 갑자기 길을 묻는 한 사람. 내가 길을 아는 사람처럼 보이나? 나도 여행 온 외국인인데 말이다. 나도 잘 길을 모른다고 하고 후다닥 자리를 피했다.

10유로짜리 스시 세트와 콜라 하나를 시켜놓고 나홀로 행복한 만찬을 즐겼다. 여행을 다니며 갑작스럽게 울화가 치미듯이 한식이 먹고 싶을 때가 많았다. 한식당은 큰 대도시에나 있었으니 그나마 마트에 종종 구매할 수 있던 것은 스시였다. 하얀 쌀알과 간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에 위안삼으며 열심히 스시를 먹었다. 다 먹고 화장실에 가려니 쇼핑 센터 내 화장실도 50센트를 지불해야했다. 갑자기 그리워지는 한국, 이놈의 화장실!





인터넷으로 조회해보니 안시로 가는 기차표가 더 싸길래 다시 역으로 가보았다. 이리저리 매표기계를 만지작 거리다가 처음보다 더 싸게 표를 구매했다. 뿌듯한 마음으로 호텔로 가는 길, 마트에 들러 쥬스와 요거트를 샀다. 숙소에 돌아와서 창밖을 바라보니 하늘이 너무 아름다웠다. 나는 욕조에 뜨끈한 물을 받고 반신욕을 하며 피로를 풀고 긴 하루를 마무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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