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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NA Feb 05. 2020

겨울 낭만, 포항 구룡포 여행

겨울을 맞은 포항 구룡포 여행



여름 바다는 무더위를 피해 뛰어들 수 있어서 좋다.
시원하게 물놀이를 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리고 시원한 맥주를 한 잔 들이키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겨울 바다는 보기만 해도 차갑다.
뛰어들 수는 없지만 차가운 공기 때문일까?
왠지 더 청량하고 깨끗하게 느껴져서 좋다.
해변가 너저분한 미역도 없고 냄새도 나지 않는다.

바다는 어느 계절이나 참 좋다.





겨울이 되면 제철을 맞은 대게가 생각나서 이 부근으로 여행을 오게 된다.
동해안 국도를 따라 영덕이나 울진에 가고 싶었지만 시간 관계상 가까운 포항에서 대게를 먹기로 했다.

구룡포로 진입하는데 차가 어찌나 막히던지!
새해가 한참 지났으니 호미곶에 일출을 보러온 것도 아닐테고, 다들 무얼 보러 온 것일까?
대게를 먹으러 온 것인가?
알고보니 얼마전에 구룡포에서 '동백꽃 필 무렵'이라는 드라마를 촬영했다고 한다.
특히 일본인 가옥 거리가 유명하다는데 우리는 드라마를 보지 않아서 그냥 패스했다.

구룡포 진입하는 입구에 있는 식당에 들어갔다.
작년에는 직판장에서 작고 싼 대게를 먹었는데 올해는 식당에서 제대로된 대게를 먹어보고 싶었다.
다리 하나가 부러진 박달대게 한마리와 러시아산 대게 한마리를 시켰다.
같은 게인데 맛이 뭐 그리 다를까 생각했는데 박달대게가 훨씬 맛있었다.
살이 더 촉촉하고 게 행이 진했다고 해야하나?
양이 적은 우리 둘은 몇 점 남기고 말았는데 다음부터는 박달대게 한 마리만 시켜 먹자고 결의했다.





카페 가는 길,
너무 아름다워서 멈춰섰던 어느 바다.
바다 위에 반짝거리는 은빛 조각들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차를 세워두고 모래 위를 걸었다.
구두를 신고있던터라 발걸음 내딛을 때마다 푹푹 구두 굽이 모래 속으로 박혔다.





솨아아-
파도소리가 들려오고 파아란 바다와 하늘 덕에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파도소리만 귓가를 울려대고 인적 드문 이 곳,
내 마음은 아무런 잡생각 없이 평화로움만 가득했다.

멀리 보이는 은빛 조각들이 일제히 하늘로 날아올랐다.
작은 조각들은 알고보니 갈매기 무리였다.
우리 둘 다 난생 처음 보는 장관이어서 입 떡 벌리고 바라보았지.





마치 엽서 속 장면 같은
등대와 바다와 거품과 모래와 갈매기들.

이름 모를 해수욕장과 안녕하고서
우리가 찾아간 곳은 카페 포인트 (POINT)
숙소로 가는 길에 있길래 들렀던 곳인데 엄청 인기가 많은 곳인가보다.
카페 안은 사람들로 바글바글 꽉 차 있었다.
우리는 막 나가는 손님들을 운좋게 발견해 앉을 자리를 겨우 마련했다.




북적거리는 곳을 선호하지 않는터라
시끄럽고 정신없는 분위기 때문에 마음이 영 편하지 않았다.
그런데 주문한 음료랑 디저트가 나오고 나서는 마음이 싹 바뀌었다.
일단 애플티가 너무 내 취향이었고 좋았고 녹차 아이스크림이랑 같이 먹는 브라우니는 최고였어.
번잡함 빼고는
바다가 앞에 보여서 분위기도 좋고 맛있어서 기억에 남을 카페이다.





카페 안으로 들어갈 때 바다를 가로지르는 콘크리트 다리를 지나게 된다.
지나오며 방파제랑 갈매기랑
해질 무렵 반짝이는 바다랑
늘어진 우리 그림자랑, 사진을 남겼다.

어느 바닷가 앞 숙소.
창문을 열어두면 파도 소리가 철썩 철썩 들려왔다.
멀리 보이는 수평선을 바라보면 그냥 기분이 좋아졌다.





스파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아 놓고서 파도 소리를 들으며 몸을 녹였다.
무릉도원이 따로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매일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일을 하고
그렇게 내 자신이 의미 없어지고 하루하루가 그저 그래 보이다가도

이렇게 가끔씩 바람 쐬러 나오면
뭐 사는게 별거인가 싶기도 하고,
이렇게 돈 벌고 돈 쓰고 그러면서 보통의 사람처럼 사는게 행복한 것이지 싶기도 하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수평선과 바다를 사진에 담고,
차를 타고 다시 구룡포 시내로 향했다.
근처에 가까운 마트가 없어 장을 보러 시내까지 가야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장을 봐서 숙소에 들어올 껄 그랬다.





저녁은 근처 횟집에서 사온 모듬회랑 매운탕,
마트에서 사온 과일과 술, 점심에 먹다 남은 대게.

컴컴한 밤이라 멀리 바다가 보이진 않았지만
파도소리가 계속 들려와서 바다가 바로 옆에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술잔을 기울이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맛있는 음식들을 먹으며 그렇게 저무는 하루.





다음날 아침,
주인 아저씨에 말로는 오른편 가장자리에서 해가 뜨는게 보일거라고 하셔서
굳이 호미곶까지 가지 않고 그냥 숙소에서 일출을 보았다.
사실 전날 늦게 잠들어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는게 가장 큰 이유였어.

잔잔히 파도소리가 귓가에 울려와 눈을 뜨고
눈 비비적거리며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창 너머를 바라보니 하늘이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바다도 붉게 물들었고 자갈돌들도 붉게 물들었다.
숙소의 이불도 계단 난간도 붉게 물들었다.
그럼 나도 붉게 물들었던가?





수평선 위로 구름이 짙게 깔려있어서
해가 동그랗게 솟아오르는 장면을 보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기다림은 꽤나 길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윽고 해가 동그랗게 떠오르는 순간,
2020년 들어 처음 보는 일출이었다.





새해 첫 날 맞이하는 일출은 아니지만
그래도 2020년 첫 일출이니까
윗층에서 자고 있는 남편을 급하게 깨워서
계단 밑으로 내려와 창문 앞에 두 손을 모으고 소원을 빌었다.





다시 잠들었던 우리는 체크아웃 시간에 맞춰 일어나 준비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철썩이는 파도 소리는 아침보다 더 거세진 것 같았다.
아까 붉게 물들었던 바다는 이제 파랗게 보였다.





포항에서 먹은 점심은 엄마 찐빵과 모리국수이다.
찐빵은 TV에 방송도 나오고 맛있다길래 간식거리로 한 통 사보았는데 맛이 좋았다.
팥은 별로 특별하게 느껴지진 않았는데 반죽이 정말 쫀득쫀득 맛있었다.
먼 길 운전하는 중에 차안에서 주전부리로 먹기 좋았다.

그리고 모리국수,
포항 구룡포에서 옛날부터 해먹던 음식이라고 하는데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모리국수는 갖은 해물을 넣고 고춧가루를 팍팍 뿌려 얼큰하게 끓여낸 것이라고 한다.
유명한 곳들은 줄을 서서 기다려야해서 일부러 덜 유명한 곳을 찾아갔다.

모정국수라는 식당이었는데 식당 안은 이미 손님들로 꽉 차있었다.
부엌 옆에 자리가 하나 남아있어 얼른 자리에 앉고 국수를 두 개 시켰다.
양은 냄비에 자글자글 끓여 내어 나오는 국수는 양이 엄청나서 성인 세 명이 와도 배부르게 먹을 것 같았다.
큼지막한 생선살에 해물들과 툭툭한 칼국수면,
국물이 진득하니 시원하고 왠지 모르게 정겹게 느껴지는 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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