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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NA Feb 24. 2022

어둑어둑한 헬싱키의 아침, 그리고 헬싱키 대성당


우리는 전날 저녁 8시 정도에 숙소에 돌아와 곧장 뻗어 버렸다. 일찍 잠들어버린 덕분인지 둘 다 이른 아침에 눈을 뜨게 되었다. 호텔 조식이 6시 30분부터 시작이었는데 그보다도 훨씬 전에 일어났다. 우리는 방 안에 있는 사우나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아침을 먹고 곧장 밖으로 나가려고 준비를 싹 다 마치고 1층으로 내려왔다. 7시 정도에 아래로 내려왔는데 아직 어둑어둑한 레스토랑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우린 창가에 앉아서 맛난 음식들을 담아 와 느긋하게 아침식사를 즐겼다. 음식들이 너무 맛있어서 그릇 가득히 두 접시나 먹었다.


신선한 야채와 세 가지 다른 맛의 스무디, 치즈, 요거트 그리고 커피까지 이곳은 내 취향의 음식들로 가득했다. 이 조식 때문에라도 다시 헬싱키에 찾는다면 라플랜드 호텔(Lapland Hotel)에 묵어야겠다 싶었다.



아침을 맛있게 먹고 밖으로 나왔는데 기분이 어찌나 좋던지, 붕붕 하늘 위를 날으는 기분이었다. 아직 컴컴한 밤 같았지만 하늘이 새벽녘처럼 푸르스름했다.


도로변으로 나오니 도시의 불빛들이 반짝이며 어둠을 밝혔다. 트램과 자동차에서 세어 나오는 불빛들과 거리를 장식하고 있는 조명들이 뒤섞여 세상은 한밤중 같았지만 훤했고 경쾌했다.


바다가 보고 싶었던 우리는 헬싱키 관람차가 있는 항구 근처로 걸어가고 있었다. 가는 길에 어제 스치듯 지나갔던 헬싱키 대성당에 들렀다 가기로 했다. 어쩌다 보니 어제 걸었던 길들을 다시 걷게 되었다. 아직 헬싱키는 낯선 도시였지만 한번 스쳐간 길들은 눈에 익어서 그런지 마음이 편안했다.



우리는 어제 낮에 지나왔던 에스플라나디 공원(Esplanadi Park)에 들어섰다. 시계를 보니 아침 8시를 갓 넘긴 시간이었다. 아직 빛이 내리기 전인 밤의 공원. 하얗게 반짝이는 트리와 노랗게 빛나는 순록들, 어둠 속에서 더 빛이 나는 겨울 풍경들은 낮보다 더 몽환적이었다.



한적한 거리를 거닐며 아직 문을 열지 않은 가게들의 유리창 너머를 엿보며 걸었다. 그러다가 나는 어느 옷가게 앞에서 멈춰섰다. 예전부터 호피무늬 옷을 가지고 싶었는데 마침 눈 앞에 떡하니 나타난 호피무늬 옷. 결국 나중에 이 옷가게에 들러 호피무늬 후리스 자켓을 하나 사고야 말았다. 지금까지도 마르고 닳도록 잘 입고 있으니 참 잘 산 것 같다.



길을 걷다가 문을 연 어느 서점에도 들렀다. 이른 아침부터 몇몇 사람들은 서점에 와서 책을 읽거나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나는 작은 가판대를 둘러보다가 일기장으로 쓸 무민이 그려진 노트를 하나 구입했다. 여행지에서 구입한 노트에 한글자 한글자 적어 나가면 여행지에서의 추억들이 떠올라서 좋다. 그래서 여행을 다닐 때마다 상점에 들러 노트를 사곤 했다.


Helsinki Cathedral


헬싱키 대성당.

어제 잠깐 스치듯이 지나쳤던 헬싱키 대성당을 다시 찾아왔다. 하얀 성당 위로 구름이 짙게 깔려 있었다. 해가 뜬 것 같았지만 세상은 아직 뿌연 안개가 낀 듯이 침침했다.



커다랗고 새하얀 기둥 위로 푸르른 돔이 돋보였다. 구리가 산화되어서 푸르스름하게 보이는 것이라 한다. 둥그런 돔 위에는 작고 날카로운 금빛 십자가가 반짝였다.


층층히 쌓인 계단을 따라서 위로 올라갔다. 가까워진 성당은 더욱 더 커보였다. 고개를 높이 들어 우러러 보야아 할 정도로 웅장했다.



헬싱키 대성당 계단 위에 올라서면 네모난 광장이 내려다 보인다. 원로회 광장이라 불리는 곳인데 바닥에 40만개의 화강암이 깔려 있다. 광장 주변으로 헬싱키 대학과 대통령 관저 건물이 있고 한가운데에는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2세의 조각상이 서있다.



핀란드는 600년간 스웨덴의 지배를 받다가 뒤이어 100년간 러시아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지리적으로 두 나라 사이에 낀 핀란드를 보니 우리나라가 떠올랐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 껴서 우리 민족은 오랜 세월동안 얼마나 고생했던가? 핀란드는 왠지 모르게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그 때 만들어진 동상이 아직까지 그대로 서있다는 점이 신기했다. 알렉산드르 2세는 핀란드의 자치권을 인정해 주고 고유한 언어를 사용하도록 허락해 주었다. 그러한 점에서 동상을 굳이 치우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고, 지나간 치욕의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 두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나는 왠지 후자에 더 마음이 기운다.



우리는 아름다운 백색 성당 앞에서 기념 사진들을 남겼다. 하얀 구름이 가득 낀 하늘에 더해진 하얀 성당, 신을 믿지는 않지만 저 장엄한 성당을 보니 왠지 믿고 싶어지기도 했다. 나의 짙은 걱정들과 아픔들이 모두 벗겨져 나가서 하얗게 되도록 만들어 주세요, 그렇게 빌고 싶었다.


대성당을 거닐다 보니 날이 점점 밝아 오르는 것을 느꼈다. 우리는 바닷가 쪽을 향해 다시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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