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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NA Apr 15. 2022

헬싱키에서 즐기는 사우나와 늦은 저녁 헬싱키 거리 걷기

캄피 예배당과 아모스 렉스 뮤지엄


해가 질 무렵 호텔에 도착한 우리는 서둘러 방으로 올라갔다. 우리가 머무는 방은 외부 테라스와 사우나가 딸려 있는 곳이었다. 돌아와 무거운 패딩과 모자, 목도리를 벗어 던지고 테라스로 나왔다. 촉촉히 물에 젖은 듯한 도시의 풍경이 내려다 보였다. 



짙게 깔린 구름 위로 잔잔하게 붉은 노을빛이 깔려 있었다. 뾰족한 첨탑 옆으로 붉고 검은 빛깔의 지붕들이 이어졌다. 이곳에서는 내가 늘상 보던 잿빛 아파트나 높은 빌딩이 보이지 않았다. 색색의 지붕들이 덮힌 아리보리빛깔 벽체의 낮은 집들이 다였다. 물은 머금은 지붕들이 반질반질했다.



테라스에서 흠뻑 젖은 도시를 배경으로 사진을 몇 번 찍다가 안으로 들어왔다. 이제 고대하던 사우나를 할 시간이다. 켜켜히 쌓인 돌들을 데우고 양동이에 물을 가득 담아 안으로 들어갔다. 


작은 국자 모양을 한 녀석으로 물을 퍼 담아 돌 위에 끼얹었다. 스스스- 하얀 연기가 올라오며 돌들이 타는 듯한 소리가 났다. 사우나 안은 금방 덥혀졌다. 서서히 몸에서는 땀이 흘러 내리기 시작했다.



사우나를 마치고 잠시 침대 위에서 뒹굴거리다가 잠에 빠져 들었다. 아직 우리는 시차에 적응 중인 것일까? 그러다가 문득 잠에서 깼다. 시간이 꽤 흐른 뒤였다. 


창밖으로 보이는 세상은 이제 진한 어둠으로 물들어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잠들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아직 헬싱키에서 보고 싶은 곳들도 많이 남았으니 다시 밖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단단히 챙겨 입고 호텔 밖으로 나섰다. 어둠 속 헬싱키는 낮보다 훨씬 추웠지만 쉬고 온 덕분인지 힘들지는 않았다. 우리는 경쾌한 걸음으로 헬싱키의 밤거리를 거닐었다. 



어둠이 내린 공원을 지나 깜삐 예배당과 아모스 렉스 뮤지엄이 있는 쪽으로 걸었다. 가는 길 보이던 'SUOMI'라는 간판. 여행을 떠나기 전 핀란드에 대해 잠시 공부했을 때 이 '수오미(Suomi)'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다. 핀란드 사람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수오미라고 부르는데, 핀란드어로 '호수의 나라'라는 뜻이다. 



우리는 구글 지도에 캄피 예배당을 찍고 걸어가는 길이었다. 그러던 중 '캄피(KAMPPI)'라는 아주 커다란 쇼핑몰이 하나 나타났다. 반짝거리는 조명들로 우뚝 선 건물이 번득였다. 쇼핑몰 앞은 넓은 광장이었는데 근처에 우리가 찾던 캄피 예배당이 있었다. 



쇼핑몰 앞은 넓은 광장이었는데 근처에 우리가 찾던 캄피 예배당이 있었다. 누군가가 커다란 나무 토막을 세워 놓은 것 같았다. 이 건물에는 창문도 없고 뾰족한 첩탑도 없었다. 미리 이곳을 알지 못했다면 예배당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캄피 예배당은 노아의 방주를 모티브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세가지의 다른 나무들을 켜켜히 11미터 정도 쌓아 올렸다. 고요한 시간 속에서 기도를 원하는 자라면 누구에게나 개방된 곳이다. 예배당 내부는 사진촬영이 금지여서 외부만 간단히 찍어 두었다.



캄피 예배당을 지나서 아모스 렉스 뮤지엄(Amos Rex Museum)으로 향했다. 이곳은 내가 헬싱키에서 가장 와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독특하게 생긴 초현대적인 뮤지엄 외관이 무척 궁금했었다.



넓은 광장 위로 경주에서 자주 보던 볼록 솟은 능 같은 언덕모양 구조물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구조물 바깥으로 작은 타일들이 촘촘히 붙어 있었다. 언덕 꼭대기 부근에는 커다랗고 둥그런 유리가 달려 있었다. 이 요상한 모양의 언덕들이 모여 있으니 마치 외계 행성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모스 렉스 뮤지엄은 핀란드의 사업가 아모스 앤더슨이 설립한 사립 뮤지엄이다. 역사가 오래된 광장을 보존하기 위해 지하 공간을 활용해 전시공간을 만들었고, 광장 위에는 독특한 언덕 모양 구조물들을 만들었다. 2018년에 개관한 이후로 헬싱키의 명소로 자리잡았다. 



우주 비행선이나 잠수함의 창 같은 모양이었다. 마치 우리가 서있는 공간이 우주나 바다처럼 느껴지는 순간. 뮤지엄 안에 들어가서 밖을 본다면 또 다른 기분일 것 같다. 한낮에는 파란 하늘이 보일 것이고, 창을 통해 햇살이 스며들 것이다. 언젠가 다시 헬싱키를 오게 된다면  뮤지엄 안으로 들어가 전시도 구경해보고 싶다.



광장에 서있던 나는 전혀 다른 세상에 온 것처럼 신비롭고 몽환적인 기분이었다. 한참 이곳에서 구경을 하며 사진을 찍다가 근처에 있는 헬싱키 키아스마 현대 미술관(Museum of Contemprary Art Kiasma)에 들렀다. 

이곳에서는 아이슬란드의 사진작가의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곧 미술관이 폐장될 시간이었기 때문에 1층만 쓰윽 구경하고 아트샵에 들어가 기념삼아 엽서들을 몇 장 사들고 나왔다.



미술관을 둘러보고 나와서 길을 걷다가 어느 작은 무민샵을 만나게 되었다. 헬싱키 곳곳에 무민샵이 있으니 귀여운 무민과 만나기가 아주 쉬웠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무민 용품들을 구경하고 추위도 녹일 겸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무민샵마다 구색이 다 달랐기에 구경하는 재미가 좋았다. 나는 여기서 커다란 하얀 무민 인형과 함께 기념 사진을 찍었다. 작고 귀여운 무민 인형들을 구경하고 내가 좋아라하는 노트들도 실컷 구경했다. 몸을 좀 녹히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잠깐 화장실에 들리고 싶다는 남편의 말을 듣고 쇼핑몰 안으로 들어갔다. 커다란 건물 안에는 소품샵, 옷가게, 음식점 등등 구경할만한 가게들이 무척 많았다. 그중에 내 눈길을 가장 사로잡았던 곳은 바로 꽃을 파는 가게였다. 코 끝을 찌르는 향기를 쫓아 갔더니 꽃들이 가득했다.



마치 우리나라 고속터미널 꽃시장에 간 듯한 기분이었다. 작은 바구니 안에는 색색의 봉우리진 튤립들이 종이에 싸여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한다발 데려가고 싶었지만, 내일 비행기를 타야 하니 참기로 했다. 한쪽에는 카라가 가득 있었는데 향기가 아주 그윽했다. 꽃들을 보고 즐거운 마음으로 이제 호텔로 돌아가기로 했다.



어둠이 내린 거리를 걸으며 헬싱키의 밤과는 작별인사를 했다. 내일이면 비행기를 타고 로바니에미로 떠나기 때문이다. 오늘의 저녁은 호텔 근처 한식당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한식을 먹을 생각하니 두근두근 발걸음이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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