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하던 로바니에미로 떠나는 날이 드디어 왔다. 헬싱키에서 오전 7시 25분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야했기에, 전날 미리 호텔에 새벽 5시 즈음 공항가는 택시를 불러달라고 요청했었다. 이른 새벽부터 잠에서 깨어나 마지막 사우나도 하고 주섬주섬 준비를 마친 후 로비로 나왔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선물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호텔에서 새벽에 떠나는 우릴 위해 간단한 아침식사를 챙겨 준 것이다. 전날 아침에 조식으로 맛나게 먹었던 스무디 그리고 랩으로 싸인 샌드위치를 받았다. 아침부터 누군가가 우릴 위해 이렇게 아침식사를 준비했을 것을 생각하니 너무 고마웠다.
테라스의 멋진 헬싱키의 풍경과 핀란드식 사우나, 방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와 여행 내내 흥얼거렸던 핀란드 가수 'SOLJU'의 음악들, 호텔에서 나와 차가운 공기를 마시며 새벽길을 걷던 때, 호텔로 들어가던 어두컴컴한 길, 호텔의 순록 장식과 그림들, 그리고 너무 맛있었던 조식까지 행복하고 좋은 기억들을 줘서 너무 고마웠던 라플란드 호텔.
택시를 타고 컴컴한 새벽 헬싱키 국제 공항에 도착했다. 아직 우리 비행편 카운터가 열리지 않아서 어느 식당에 들어가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기다렸다. 호텔에서 싸준 샌드위치도 커피와 함께 마저 맛있게 먹었다.
카운터가 열리고 체크인을 하고 안으로 들어갔는데 공항이 어찌나 넓던지! 헬싱키는 여러나라에서 경유지로 많이 들리는 곳이다. 그렇다 보니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이동하려는 사람들로 무척 혼잡했다.
게이트 안내판을 보니 우리가 타야하는 게이트까지 가는데 30분이 걸린다고 하더라. 에이, 설마 정말 그렇게까지 시간이 걸릴까 싶었다. 그런데 정말이었다. 한눈팔지 않고 걷기만 했는데도 우리가 가야할 게이트까지 꼬박 30분이 걸렸다.
그런데 도착하고 보니 우리 비행기는 연착되어 있었다. 오전 7시 25분에서 8시 10분으로 무려 45분이나 말이다.
탑승까지 시간이 좀 남았기에 게이트 옆 식당에서 주전부리를 사 먹었다. 비행기 연착이 준 소소한 선물이었다. 우리가 주문한 것들은 핫도그와 맥주, 감자칩과 요거트. 별것도 아니었지만 헬싱키에서의 마지막 기억이 더 즐거워졌다.
로바니에미로 가는 비행기에 올라탔다. 헬싱키에서 로바니에미까지 비행기로 대략 1시간 30분 정도가 걸렸다. 마치 서울 김포에서 제주도를 향해 가는 그런 기분이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곧 해가 떠오를 것처럼 지평선 부근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이윽고 먼 곳에서 동그란 해가 떠올랐다. 비행기가 연착된 덕분에 이렇게 하늘 위에서 낭만적인 일출을 보게 되었다. 로바니에미에 가까워오자 땅 위는 온통 눈으로 가득한 검은 숲이었다. 아득히 먼 곳인데도 하얀 눈과 끝없이 이어진 숲을 보니 감동이 벅차 올랐다.
로바니에미 공항에 도착해서 짐을 찾고 밖으로 나왔다. 핑크빛 하늘 아래로는 온통 눈으로 가득한 새하얀 세상이었다. 공항 밖 주차장에 있던 자동차들 위에는 소복히 눈이 쌓여 있었다. 삐죽삐죽 솟은 커다란 나무들에는 눈꽃들이 맺혀 있었다.
자, 이제 시내로 어떻게 가야하나 싶었다. 공항 밖에 나오자마자 입간판 하나가 보였는데 시내로 가는 셔틀버스 안내문구가 적혀있었다. 잘 읽어보니 7유로를 내면 편안하게 시내 왠만한 곳은 다 갈 수 있었다. 우리가 예약해둔 호텔 'Arctic City Hotel'도 적혀있어서 셔틀버스를 타야겠다 싶었다.
로바니에미에 내렸던 많은 이들이은 거의 다 관광객이었는지, 모두 우르르 셔틀버스를 타러 왔다. 무거운 캐리어를 싣고 커다란 버스 위에 올랐다. 차창 너머로 푸르스름 하면서도 붉은 하늘과 하얀 풍경들이 이어졌다.
멀리 뾰족하게 솟은 나무들 사이로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가득 쌓인 하얀 눈들은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버스는 하얗게 눈이 쌓인 붉은 지붕들이 가득한 마을에 도착했다. 이곳이 말로만 듣던 산타 마을이었다.
나는 추운 겨울 핀란드에 오면 어딜가나 눈이 한가득 쌓여 있을 줄 알았다. 겨울의 낭만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헬싱키에 있는 내내 쌓인 눈을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왠지 모르게 아쉬웠었는데 로바니에미에 오니 눈을 원없이 볼 수 있게 되었다. 이제야 비로소 핀란드에 온 기분이 제대로 들었다.
드디어 'Arctic City Hotel'에 도착했다. 새벽부터 부지런히 움직인 덕분이었다. 하얗게 쌓인 눈들을 밟으며 캐리어를 질질 끌고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아직 체크인 시간 전이었기 때문에 짐을 맡겨두고서 배를 채우러 가기로 했다. 가방 안에서 모자와 목도리, 장갑까지 꺼내서 만발의 준비를 하고 거리로 나섰다. 입김이 나올 정도로 추웠지만 주위에 온통 눈들이 가득해서 어찌나 신나던지, 아직까지 눈이 좋은 걸 보니 어른이 되려면 멀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