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바니에미 시내에서 차를 얻어타고 산타클로스 빌리지에 무사 도착했다. 우리는 새하얀 눈밭 위에 내렸다. 푸르른 하늘 아래 펼쳐진 세상은 온통 하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눈앞에 보이는 쭉쭉 뻗은 나무 기둥에 하얀 눈이 잔뜩 붙어 있었다. 마치 하얀 껍질을 가진 자작나무처럼 보였다. 발을 내딛을 때마다 뽀드득거리는 눈 밟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둘 다 눈만 밟았을 뿐인데 어린아이처럼 신이났다.
하얗게 눈이 쌓인 길을 따라서 걸었다. 하얀 길 양쪽으로 하늘 높이 솟아 오른 침엽수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다. 북유럽의 숲을 상상할때면 언제나 떠오르던 그런 전형적인 설경이 펼쳐졌다. 순백색의 세상이었다. 만화 영화에서나 보던 눈의 세상으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저벅저벅 눈길을 걷다가 산타클로스 빌리지 안으로 들어섰다. 울타리와 지붕, 그리고 나뭇가지까지 어디든간에 하얀 눈이 수북히 쌓여 있었다. 새하얀 도화지처럼 뽀얀 눈길에 발자국을 잔뜩 남기면서 신나게 걸었다. 사진 찍기가 취미인 우리는 한국에서 무거운 DSLR 카메라와 필름카메라, 필름들을 바리바리 챙겨왔다. 산타클로스 빌리지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진 찍기 삼매경에 빠졌다. 어딜가나 처음 보는 낯선 풍경들이라서 카메라를 들이대느라 바빴다.
눈이 바짝 마른 밀가루처럼 포실포실해서 잘 뭉쳐지지 않았다. 장갑 낀 손을 이용해 억지로 둥그렇게 뭉치면 이내 부스스 가루가 되어 흐트러졌다. 눈덩이를 던지려면 심혈을 기울여서 뭉쳐야했다. 돌아다니다 보니 장갑 낀 손이 시려오고 볼은 차갑고 코가 훌쩍거렸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우리는 아름다운 풍경을 쫓아 발길이 닿는대로 걸어다녔다. 걷다 보니 순록이 거니는 길을 지나가게 되었다. 'Route only for Reindeer'. 순록이 그려진 파란 안내판이 귀여워서 사진에 담아 두었다.
길을 걷다가 우연히 우리가 내일부터 이틀간 묵을 노바 스카이랜드 호텔을 지나게 되었다. 이야, 시내에 있는 호텔과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었다. 역시 로바니에미에 온다면 산타마을에 하룻밤 정도는 묵어야 하나보다. 나무들의 가느다란 가지가 온통 새하앴다. 불어오는 바람에 하얀 가지가 흔들리면 백발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것 같았다. 이런 곳에서라면 핀란드의 겨울을 제대로 느낄 수 있겠다 싶었다. 진득한 겨울을 맞은 산타마을에서 며칠밤을 보낼 생각을 하니 마음이 두근두근 설렜다.
로바니에미 곳곳에는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생긴 나무들이 가득했다. 매번 플라스틱으로 만든 가짜 트리만 보다가 이렇게 진짜 트리를 보니 신기했다. 한녀석을 집으로 데려가 크리스마스 장식들을 대롱대롱 매달고 싶었다. 복실복실한 하얀 눈이 가득 쌓인 나무를 툭 건드리니 비가 내리는 것처럼 우수수 눈이 쏟아졌다.
조그만 다리 위를 건너가는데 발 아래로 썰매를 끈 순록들이 보였다. 방금 전 우리는 순록이 지나다니는 길을 지나쳐왔다. 이곳에서부터 순록들이 정해진 루트를 따라 썰매를 끌고 가는 것이었다. 썰매 위에 사람들이 차례차례 올라 타고 있었다. 우리는 아래로 내려가서 가까이서 순록을 바라 보았다. 알록달록한 장식을 두르고 있던 눈처럼 새하얀 순록이 기억에 남는다.
오후 3시가 조금 지났을 무렵이었는데 하늘은 벌써 붉고 누르스름한 노을로 물들어 있었다. 지평선 부근으로 해가 천천히 떨어지고 있었는데 이렇게 이른 시간 맞이한 노을은 난생 처음이었다. 하늘을 봐서는 적어도 오후 5시는 넘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로바니에미의 해는 무척 짧았다.
전나무인지 소나무인지 알 수 없는 쭉쭉 뻗은 나무들 뒤로 붉은 하늘이 보였다. 우리 둘은 아직 쌩쌩한데 로바니에미는 벌써 밤을 맞을 채비를 하고 있었다. 핀란드를 제대로 즐기려면 부지런히 아침 일찍 일어나 하루를 시작해야겠다. 우리는 사부작 사부작 눈을 밟으며 산타마을 우체국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