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친구와의 안녕을 준비하고 있다

사랑은 끝을 알리지만, 우정은 대개 흔적으로만 남는다

by 레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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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대개 이별이라고 하면 먼저 사랑을 떠올린다.


연인과 헤어지는 일은 비교적 선명하다. 거기에는 장면이 있고, 이유가 있고, 적어도 서로가 끝을 알아차리는 순간이 있다. 말투가 달라지고, 눈빛이 흐려지고, 예전에는 서운해하던 일들을 이제는 그냥 넘겨버리는 순간들이 생긴다. 사랑은 무너지기 전에 몇 번쯤 신호를 보낸다. 우리는 모르는 척하기도 하고, 다 알고 있으면서도 아직 괜찮다고 자신을 속이기도 한다. 그래도 마음 한쪽에서는 조금씩 준비하게 된다. 아, 이 사람은 멀어지고 있구나. 이 관계는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겠구나.


사랑의 끝은 아프지만, 대체로 알아차리기 쉽다.


반면 친구는 다르다.


친구는 좀처럼 헤어진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공식적인 종료도 없고, 마지막 장면도 분명하지 않다. 다만 어느 날부터 대화의 결이 달라지고, 답장이 늦어지고, 웃음의 타이밍이 어긋나고, 예전 같으면 길게 이어졌을 이야기가 몇 마디 안에서 끝나버린다. 만나도 예전 같지 않고, 만나지 않아도 특별히 이상하지 않은 관계. 그렇게 친구는 소리 없이 멀어진다.


돌이켜보면 친구와의 이별은 부서지는 일보다 닳아 없어지는 일에 더 가깝다.


크게 깨지는 소리는 없는데, 분명 어딘가 달라져 있다.

어제까지 있던 것이 오늘 갑자기 사라진 것이 아니라, 늘 있던 자리에 같은 모양으로 남아 있지 않게 되는 일. 친구와의 관계는 그렇게 끝난다. 사건보다 흔적으로 오래 남고, 설명보다 침묵으로 먼저 도착한다.


그래서 더 늦게 아프다.


사랑은 적어도 떠난 자리를 비워둘 명분이라도 남기지만, 친구는 그렇지 않다. 친구는 언제든 다시 전화하면 받을 것 같고, 마음만 먹으면 다시 볼 수 있을 것 같고, 시간이 지나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을 남긴다. 바로 그 착각 때문에 사람은 더 늦는다. 정말 끝나기 전에 손을 써야 할 순간을 놓치고, 이미 늦었는데도 아직 괜찮다고 믿는다.


어쩌면 친구가 더 힘든 이유는, 그 존재를 너무 익숙하게 여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은 잃을까 봐 두려워하면서도, 친구는 곁에 있는 동안 그 소중함을 자주 잊는다. 너무 오래 곁에 있었고, 너무 자연스럽게 내 삶 안에 들어와 있었고,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계속 거기 있을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친구에게는 사랑만큼 자주 애정을 증명하지 않는다. 미안함도, 고마움도, 서운함도 적당히 미뤄둔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다음에 말하지 뭐. 친구니까 이해하겠지. 관계를 망치는 것은 대개 거창한 배신이 아니라 오래 방치된 무심함이다. 큰 잘못 하나보다, 괜찮겠지 하고 넘긴 작은 순간들이 더 오래 남는다.


젊었을 때는 그게 억울했다.


멀어짐이 느껴지면 이유를 알고 싶었고, 설명하고 싶었고, 어떻게든 예전으로 돌려놓고 싶었다. 내가 먼저 손을 내밀면 괜찮아질 거라고 믿었다. 잃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면 붙잡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관계란 노력으로 유지되는 것이고, 진심이 있다면 결국 통한다고 믿었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믿음은 순진했고, 조금은 오만하기도 했다.

모든 관계가 의지로만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이미 다른 방향의 삶으로 흘러가고 있고, 어떤 관계는 잘못된 것이 아니라 다만 다 끝난 것일 뿐이다. 끝났다는 말조차 없이 끝나는 관계도 있다. 처음에는 그 사실이 잔인하게 느껴졌지만, 이제는 안다. 세상에는 붙잡을수록 더 빠르게 망가지는 관계도 있다는 것을.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어쩌면 그런 사실을 인정하게 되는 일인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붙잡지 않아야 할 때를 배우는 것.

굳이 풀린 끈을 다시 묶지 말아야 할 때를 아는 것.

억지로 이어진 관계는 대개 오래가지 못하고, 오래가더라도 이미 예전의 것이 아니다.


애써 묶어둔 끈은 결국 서로의 손목만 더 아프게 할 뿐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덜 아픈 것은 아니다. 보내줘야 할 때를 안다고 해서 보내는 일이 쉬워지는 것도 아니다.

다만 예전처럼 모든 멀어짐을 비극으로 만들지 않게 될 뿐이다.


이유를 끝까지 캐묻지 않고, 변명을 다 듣지 않아도, 세상에는 그냥 그렇게 멀어지는 관계도 있다는 사실을 조금씩 받아들이게 된다. 사람이 떠나는 데 늘 거창한 이유가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 어떤 관계는 배신이 아니라 시간 때문에 끝나고, 어떤 우정은 미움이 아니라 속도의 차이 때문에 무너진다는 것. 그 단순하고도 잔인한 진실을 우리는 대체로 너무 늦게 배운다.


그래서 나는 지금 친구와의 안녕을 준비하고 있다.


대단한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돌이킬 수 없는 말을 주고받은 것도 아니다. 다만 이제는 안다. 어떤 관계는 소리를 내며 부서지지 않고, 아주 조용히 제 몫의 끝으로 걸어간다는 것을. 예전 같았으면 무슨 일이든 이유를 만들고, 어떻게든 다시 매듭을 묶으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안다. 모든 멀어짐을 붙잡는 것이 애정은 아니라는 것을. 때로는 붙잡지 않는 쪽이 더 오래 상대를 존중하는 방식일 수도 있다는 것을.


그래서 이번에는 억지로 끈을 묶지 않으려 한다.


예전의 자리로 돌려놓기 위해 애쓰지 않고, 이미 달라진 것을 모른 척하지도 않으려 한다. 서운함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고, 슬프지 않은 것도 아니다. 다만 어떤 관계는 끝까지 붙드는 것보다 조용히 놓아주는 편이 더 정직하다는 사실을, 이제는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어쩌면 이런 식으로 누군가를 잃는 법을 배우는 일인지도 모른다. 끝내 남지 않을 관계 앞에서 소란을 피우지 않는 것. 떠나려는 사람의 등을 붙잡기보다, 그 사람과 함께했던 시간을 너무 망가뜨리지 않는 쪽을 택하는 것.


그래서 친구와의 이별은 사랑의 이별보다 더 쓸쓸하다.


사랑은 한 시절이 끝났다는 감각이라면, 친구의 이별은 한 사람의 세계가 조용히 닫히는 감각에 가깝다. 함께 알고 있던 농담 하나가 사라지고, 설명하지 않아도 통하던 감각 하나가 사라지고, 내 지난 시간을 증언해주던 사람이 하나 줄어든다. 친구를 잃는다는 것은 단순히 사람 하나를 잃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과 함께 있을 때만 존재하던 나 자신의 일부를 잃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 늦게 아프고, 더 오래 남는다.


결국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친구가 줄어드는 일을 견디는 방식까지 배워가는 과정일 것이다.


젊을 때는 사람을 얻는 일에 마음을 썼다면, 나이가 들어서는 사람을 놓아주는 일에도 품위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예전처럼 매달리지 않고, 굳이 억지로 의미를 덧붙이지 않고, 떠나는 사람의 등을 보며 잠깐 아프되 끝내 붙잡지는 않는 일. 어쩌면 그것이 어른의 관계일지도 모른다. 성숙해서가 아니라, 이제는 안다. 남고 싶은 사람은 붙들지 않아도 남고, 떠나려는 사람은 사랑으로도 우정으로도 끝내 붙잡을 수 없다는 것을.


그렇게 우리는 친구를 잃으며 늙어간다.


사랑은 잃기 전부터 두려운 사람들이고, 그래서 끝을 예감하는 순간마다 마음을 다급하게 만든다. 하지만 친구는 다르다. 친구는 늘 내 삶의 한쪽에 오래 남아 있을 것처럼 느껴지고, 그렇게 익숙한 존재일수록 사람은 더 쉽게 안심해버린다. 괜찮겠지, 이 정도쯤은 이해하겠지, 조금 멀어져도 다시 돌아오겠지. 우리는 그런 식으로 친구를 믿고, 또 그런 식으로 친구를 잃는다. 그리고 너무 늦은 다음에야 알게 된다. 정작 가장 오래 남을 거라 믿었던 사람이, 내 지난 시간의 가장 많은 부분을 알고 있던 사람이, 설명 없이도 나를 알아보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친구를 잃는다는 것은 사람 하나를 잃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 앞에서만 가능했던 내 일부를 함께 잃는 일이라는 것을.


지나간 관계는 때로 사람보다 흔적으로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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