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외로운 것들은 늘 높이 서 있다

느려지고 마모되고, 끝내 파손된 채 버티는 삶에 대하여

by 레노

이상하게도 가장 외로운 것들은 늘 높이 서 있다.


요즘 들어 나는 자꾸 느려진다.

예전에는 더 빨랐고, 더 쉽게 몰입했고, 적어도 내가 하는 일에 아직 미련 비슷한 것은 있었다. 개발도 그랬고 디자인도 그랬다. 새로운 걸 익히는 일이 피곤해도 재미는 있었다. 따라간다는 감각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세상은 점점 더 빨라지고, 나는 점점 더 늦어진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흐름이 너무 빨라서인지, 아니면 내가 이미 오래전에 지쳐버렸기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건, 나는 이제 더 이상 앞으로 달려드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멈춘 것은 아닌데, 어딘가 분명히 파손된 채로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만은 또렷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재미가 없다.

이게 제일 치명적이다. 사람은 힘들어서 일을 그만두는 게 아니다. 대개는 더 이상 흥미를 느끼지 못할 때 먼저 망가진다. 개발도, 디자인도, 이제는 생존을 위해 붙잡고 있는 기술에 가깝다. 할 수는 있다. 아직은 한다. 하지만 좋아하지는 않는다. 예전에는 적어도 이 일들이 나를 설명해줬다. 지금은 그냥 나를 소모시킨다. 기술은 남아 있는데 애정이 사라진 상태. 그건 생각보다 더 추하고, 더 오래 사람을 닳게 만든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안에서는 이미 몇 군데 중요한 부품이 파손된 것처럼.


사진도 다르지 않다.

나는 여전히 사진을 찍는다. 여전히 빛을 보고, 프레임을 보고, 셔터를 누른다. 하지만 요즘의 사진에는 자꾸 이유가 빠진다. 예전에는 적어도 무엇을 붙잡고 싶은지 알았다. 지금은 찍어놓고도 왜 찍었는지 흐려진다. 의미를 가지고 찍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그 의미는 너무 쉽게 퇴색된다. 장면은 남는데 마음이 남지 않는다. 결국 사진의 문제라기보다 나의 문제일 것이다. 초심을 잃었다기보다, 초심이라는 말을 믿을 체력조차 줄어든 쪽에 가깝다. 한때 나를 지탱하던 감각의 일부가 조용히 파손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좋아하던 것들이 의무가 되는 순간, 사람은 자기 안에서 먼저 퇴직한다.


그게 제일 마음에 들지 않는다.

느려진 것보다, 뒤처지는 것보다, 내가 한때 진심으로 좋아하던 것들을 이제는 습관처럼 만지고 있다는 사실이 더 싫다. 살아남기 위해 일하고, 무너지지 않기 위해 버티고, 버티고 있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기 위해 아무렇지 않은 척한다. 겉으로는 아직 굴러간다. 문제는 안쪽이다. 안쪽은 이미 많이 마모됐다. 그리고 마모는 어느 순간부터 파손이 된다. 사람은 완전히 부서진 뒤보다, 애매하게 파손된 상태로 훨씬 오래 살아간다.


그래서 내일이 걱정된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지금 하던 일을 계속 붙들고 가는 게 맞는지, 아니면 진작 다른 길을 찾았어야 했는지 자꾸 생각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렇게 걱정하면서도, 막상 어떤 순간에는 그냥 놓아버리고 싶어진다. 더 잘해보겠다는 마음보다 이제 그만 피곤하고 싶다는 마음이 먼저 올라온다. 미래는 불안한데 의지는 닳아 있다. 사람을 가장 초라하게 만드는 건 실패가 아니라, 불안을 느끼면서도 움직일 힘이 없는 상태인지도 모른다. 파손된 마음은 쉽게 결심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완전히 포기하지도 못한 채 오래 흔들린다.


가장 곤란한 건 이 변화가 너무 조용하다는 점이다.

나는 바깥에서 보기엔 멀쩡하다. 여전히 일하고, 여전히 사진도 찍고, 여전히 하루를 끝낸다. 무너지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속은 다르다. 예전보다 덜 설레고, 더 쉽게 지치고, 훨씬 자주 스스로를 의심한다. 외로움은 꼭 혼자인 상태를 뜻하지 않는다. 자기 안에서 천천히 파손되어가는 소리를 혼자 듣는 시간, 그것도 충분히 외롭다.


그래서 나는 이 사진 속 크레인을 보며, 나와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멀리서 보면 높이 서 있다. 아직은 쓰러지지 않았고, 아직은 자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저 높이는 대단해서 얻은 자리가 아니라, 쉽게 내려오지 못해서 버티는 자리인지도 모른다. 바람을 먼저 맞고, 회색 하늘 속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나고, 아래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피로를 오래 견디는 자리. 지금의 나도 그렇다. 아직 서 있기는 하다. 다만 더 이상 가볍게 올라가는 중은 아니다. 무너질 수 없어서, 체면처럼 남은 책임감 때문에, 겨우 자기 높이를 유지하는 쪽에 가깝다. 멀리서는 구조물처럼 보이겠지만, 가까이서 보면 오래된 파손 위에 간신히 균형을 얹고 서 있는 것에 더 가깝다.


예전에는 높은 곳이 대단해 보였다.

지금은 안다. 높은 곳은 종종 고립된 곳이다. 잘 보인다는 건 잘 숨을 수 없다는 뜻이고, 오래 버틴다는 건 오래 닳는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서 있는 모양만 본다. 얼마나 재미를 잃었는지, 얼마나 마음이 식었는지, 얼마나 자주 모든 걸 내려놓고 싶었는지는 보지 않는다. 아니, 봐도 대개는 모른 척한다. 사회는 무너진 사람보다, 애매하게 파손된 채 제 기능을 하는 사람을 더 오래 사용하니까.


그래도 완전히 끝났다고 말할 생각은 없다.

희망적이어서가 아니다. 대개 삶은 끝났다고 선언한다고 끝나는 방식으로 무너지지 않는다. 그냥 덜 사랑하고, 덜 믿고, 덜 기대한 채로도 계속 이어진다. 그래서 더 지겹고, 더 오래간다. 지금의 나 역시 완전히 포기한 사람은 아니다. 다만 좋아서 하는 사람에서, 해야 하니까 하는 사람으로 옮겨온 것뿐이다. 그 차이는 생각보다 크고, 꽤 잔인하다. 파손은 언제나 한순간에 일어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이런 식으로 조용하고 오래 지속된다.


이상하게도 가장 외로운 것들은 늘 높이 서 있다.

그리고 나는 요즘,


버티는 것이 아니라 오래 망가지는 중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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