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는 그동안 꽤 무거웠어요.

by 붙박이별

엄마,


나는 딸 둘에 둘째니까,

말하자면 막내인데.

어렸을 때부터 어른들이나 친구들에게 많이 들은 말이 있어요.


'너 첫째 같아. 너 장녀지?'


내가 아니라고, 언니가 있고 막내라고 하면

다들 고개를 갸우뚱하곤 했죠.

장녀 같은데... 하면서요.


엄마는 기억 못 하실 거예요.

언젠가 엄마가 나를 앉혀놓고,

'결국에는 네가 언니를 책임져야 한다.'라고 말했어요.


엄마가 어떤 의미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대충 알지만, 초등학교 저학년인 나에게 그런 말을 하는 엄마. 왜냐고는 묻지 않았어요.

그렇게 물었다면 아빠 얘기부터 아빠를 닮아서 그렇다는 언니의 단점을 다 들어야 했을 테니까요.

나는 그냥 알겠다고 했어요.


그때부터 나는 장녀의 짐을 어깨에 짊어진 것 같았어요. 안 좋은 일이 있으면 모든 게 내 탓 같았죠.

언니가 잘못하는 것도 내 탓 같았어요.

내가 어른이 되면 다 내가 책임져야 하는구나.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래서 누가

'너네 집은 아들이 없어서 엄마 아빠 나중에 어떡하니?'라고 물으면.

나는

'내가 결혼하면, 시집으로 안 가고 데릴사위 데려와서 엄마랑 아빠 모시고 살 거예요'라고 늘 말했었죠.

아주 당연하게요.

어른들은 어쩜 그런 생각을 하냐며 나를 기특해했죠.


나는 그게 내가 엄마 아빠를 너무 사랑해서 하는 생각이라고 여겼어요.

엄마는 내가 그렇게 말할 때마다 조금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었던 것 같아요.

이제와 생각해 보니, 그 효심은 나 스스로 가진 게 아니라 엄마가 처음 심어주신 거였네요.

말로 아주 명확하게요.


엄마,

막내인 나는 막내인 남편과 결혼했지만,

이상하게도 우리는 양쪽집의 여러 일들을 책임져야 했던 것 같아요. 생각보다 당연하게요.

우리는 둘 다 막내이지만 둘 다 맏이인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하지만 어쩔 수 없었죠.

상황이 그랬으니까요.


엄마, 나는 성격이 무뚝뚝한 편이에요.

아주 내향적이죠.

그런 내가 아주 막내가 될 때가 있어요.

엄마와 아빠와 함께 있을 때요.

특히, 두 분이 언쟁을 하거나 엄마가 아빠의 잘못을 들추기 시작할 때요. 그때는 애교 많은 막내가 되어서 다른 얘기들을 하고 괜히 너스레를 떨기도 해요.

가끔은 나처럼 내향적인 남편도 그런 나를 도우려 애쓰는 게 보이기도 해요.


내가 아프고 나서야 나는 엄마에게 겨우 '싫다'는 말을 하게 된 것 같아요.

그땐 몸이 너무 힘들어 다른 건 생각할 겨를이 없었죠. 그 뒤로 신기하게 주변 사람에게 막내 같다는 얘기도 들어요.


얼마 전 남편이 돌발성 난청으로 입원했을 때,

괜찮냐는 엄마의 물음에 정말 괜찮아서 괜찮다고 했더니, 엄마는 그러셨죠?

"너는 안 괜찮아도 맨날 괜찮다고 하니까."


엄마,

알고 있었나요?

그래도 난 안 괜찮다고 솔직히 말할 순 없어요.

난 이제 그런 사람이 되어 버렸어요.


엄마,

내가 아이를 가질 수 있었다면,

지금쯤은 엄마를 잘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었을까요?


가끔 그게 진심으로 궁금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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