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음 속에 사는 그를 생각하며,
출판사 일을 시작하고 처음 감리를 가 보았다.
내가 있는 곳에서 차를 타고 조금의 거리를 이동해야 한다. 들어가자마자 엄청난 소음이 귀를 때리고 종이, 잉크 냄새가 뒤섞인 묘한 냄새가 코에 스몄다. 썩 좋지도, 그렇다고 불쾌한 냄새도 아니었다. 하지만 오래 있는다면 어지러워 질것이란 생각이 드는 그런 곳이었다.
이곳에서 종일 소음과 함께 일하는 분들을 바라봤다. 다들 귀 안쪽엔 작은 귀마개를 하고 계셨다. 저 작은 귀마개가 소음의 일부를 막아주는 것이 꽤 다행이라 생각했다.
나는 바로 옆에 있는 분과 이야기를 하는데도 목소리을 엄청나게 높이고 손짓도 보태가며 말했다. 소음을 뚫으려면 내가 시끄러워져야 했다. 처음 가 본 현장에서, 시끄럽게 기계들이 돌아가는 소리에 나는 멍하니 서서 표지를 토해내는 광경만 보고 있었다.
옆에 분이 '색이 너무 옅어요', ' 조금 짙어요', 무어라 무어라 귀에 꽂히지 않는 이야기를 하면 작업하시는 분은 요래조래 조절하고선 또 다시 표지를 출력해주셨다. 뚝딱뚝딱 숙달된 장인의 손길이었다. 얼마나 많은 소음을 뚫고 이야기를 해왔을까, 그때마다 소리를 얼마나 높여야 했을까. 귀마개로 귀를 막은 채 목소리를 높이는 광경이 어딘가 이질스럽게 느껴졌다.
집에 나뒹구는 귀마개를 쓰레기통에 넣던 날이 있었다. 주황색 손가락 끝마디같이 생긴 물건이 시커매 진 채로 방 안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어서 갖다 버렸는데 아빠가 자꾸 그 물건을 찾는 것이었다. 처음엔 내가 버린 그 물건인 줄 몰랐다가 나중에 알고서 그건 버렸다고 하자 일할 때 써야 하는데 왜 버렸느냐고 했다. 사실 귀마개라 하기엔 형체도 멀쩡하지 않았는데. 그때 나는 그 물건이 귀마개인걸 처음 알았고 그런데도 왜 일을 할 때 귀마개를 써야 하는지 의문이었다. 잘 들어도 모자랄 판에 귀마개를?
서울에 오고 나서 고향 집에 내려가거나 아빠가 서울에 올라올 때면 우리는 가끔 외식을 했다. 집에 있을 때면 잘 모르겠는데, 바깥에서 외식할 때마다 아빠의 엄청나게 큰 목소리가 신경 쓰였다. ‘작게 말해도 될 걸. 왜 저렇게 크게 말하지? 사람들이 다 쳐다보는 것 같아.’ 나는 처음엔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다가 엄마와 언니에게 눈짓했고, 나중엔 아빠에게 조금 조용히 말하면 안 되냐고 타박을 줬다.
아빠는 그 소리에 금세 소리가 작아지는 듯하다가 이내 또 큰소리로 말했다. '누가 보면 화내는 줄 알겠네. 싸우는 줄 알겠네' 괜한 오해를 받을까 겁이 났다. 아빠가 혼자 어디를 가거나 무언가를 먹을 때 괜히 큰 목소리에 사람들이 한번 더 쳐다보고 한 번 더 수군거리는 모습을 상상했다. 엄청 싫었다.
지금은 사람들이 우리 가족을 바라보겠지만 아빠가 혼자일 땐 아빠 혼자 이 시선을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이 짜증 났다. 아빠한테 짜증이 나는 건지, 그렇게 쳐다보는 사람들에게 짜증이 나는 건지, 그런 생각을 하는 나에게 짜증이 나는 건지 어쩌면 그 모두였겠지. 눈으로 핀잔을 주는 사람들을 뒤로하며 아빠는 계속 말을 이었다. 우리의 세계보다 몇 배는 볼륨이 큰 세계 속에서.
15분 정도의 감리를 끝내고,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멍하니 서서 이런 생각을 하다가 밖으로 나왔다. 밖은 너무 고요했다. 마치 다른 세계처럼.
아빠의 나뒹구는 귀마개와 귀를 막고서 큰소리를 치는 것과 좀 전의 시끄러운 세계를 떠올렸다. 30분도 채 안 되는 시간이 꼭 다른 세계 같았는데 아빠는 매일 그 세계를 왔다 갔다 하는 거겠지. 엄마가 그랬다. 아빠 일하는 곳에 가봤는데 엄청 시끄럽다고, 아빠는 거의 항상 화나 있는 투로 이야기한다고, 하도 큰 목소리를 내야 하다 보니 일상에서도 그런 것이라고, 그러니 너무 뭐라 하지 말라고 말이다. 귀를 막고서 서로에게 무어라 무어라 외치는 사람들을 생각했다. 참 이질적인 광경이지, 마치 나와 아빠의 세계처럼. 아빠에게 고요는 낯선 것이 되어버렸을까 조금 겁이 났다.
이곳에서는 작게 말해도 알아들을 수 있어요.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내 귀에는 이명이 들렸고, 조금 전의 소음이 아직은 귓전에 남아있었다. 소음 속에서는 너무 빨리 지치는 것 같았다. 고요한 시간이 아빠에게도 있었으면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