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4.11 감각 소실 전
나는 핸드폰이나 아이패드와 같은 디지털 기기로 영화, 소설 혹은 만화를 밤새 보며 주말을 보내는 것을 좋아한다. 한데, 나이가 드니 글씨나 그림이 두 개로 보이기 시작이다. 노안이 시작되면서 쓰기 시작한 돋보기를 써도 여전히 불편하고 심한 날은 '이러다 실명되는 건 아니겠지..?'라는 무서운 생각도 든다.
건강 염려증이 심한 나는 녹내장, 백내장과 같은 실명과 연관된 이야기를 듣고 공포에 떨며 병원으로 달려갔었다.
특히,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을 보고, 피부로 느끼는 감각은 세상과 다이내믹한 소통을 가능하게 해주는 소중한 기능인데... 그런 타고 난 오감 중에 어떤 하나라도 없어지는 것은 어떤 세상일지.. 상상조차도 불가하고, 혹여나 물체가 두 개로 보이는 날이 심해서 걱정 수준이 높은 날에도 두려움에 그런 상상을 끝까지 끌고 가본 적도 없다.
이렇게 나름 열심히 건강을 챙기고 살아왔는데, 2025년 내 생일 하루 전날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유방은 오랫동안 추적 검사를 해왔기 때문인지 몰라도, 내가 생각하기에도 놀랄 정도로 덤덤하게 진료실을 나왔다. 같이 들어갔던 엄마와 다음 해야 할 일을 차분하게 이야기하고 계속 추적관찰했왔던 암센터 예약을 잡았다. 그곳에서도 기존 검사결과를 보고 역시 초기암이고 아주 작은 상피내암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부분 절제와 이후 검사 결과에 따라 전절제 가능성도 이야기를 들었지만, 크게 걱정은 안했다.
'뭐, 전절제하고 복원하면 되지'
이런 나의 오만함이 문제였을까?
이후 수술방향을 결정하기 위해 진행된 검사 결과, 유두에 가까이 붙어 있는 위치 때문에 전절제와 함께 유두도 함께 제거할 가능성이 높다라는 말을 들었다.
이때의 절망과 답답함을 어찌 표현해야 할까!
왜 유두제거가 나에게 더 충격적이었을까?생각해보니 다른 피부와의 다른, 고유의 감각이 몰려있는 부분이 영영 없어진다는 상실감이 컸기 때문이리라. 주변에서는 유두 복원도 요즘엔 기술이 좋아서 문제없이 복원된다고 하지만, 없어진 유두와 100% 똑같진 않다고 한다.
너무 웃기지만, 그 이후로 나의 모든 인식의 초점이 '유두'로 옮겨졌다.
요즘 보기 시작한 "왕좌의 게임"에 선정적인 장면이 나오면 눈이 그냥 '거기'로 향한다.
목욕을 하고 나와 거울을 볼 때에도 내 눈은 바로 나의 '거기'로 향한다.
"감각의 제국"이라는 영화제목을 봐도 내 머릿속을 채운 감각은 나의 '유두'로 향한다.
그리고 침울해지고 우울해지고 어두워진다.
식구들이 안타까워할까 봐 우스개 소리도 해가며 웃지만 마음은 쓰리다.
이미 정해진 수술날짜와 하루하루 줄어드는 날들이 나의 마지막 감각 소실에 대한 초조함을 증가시키고 있지만, 딱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중년에, 결혼도 안 했고, 애도 없기에 딱히 쓸 곳? 도 없다지만 그동안 내 몸에서 바르게 기능하던 부분이 없어진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울고 싶다.
어떤 형태로든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을 겪는 사람들은 다들 '왜 하필 나인가?'라는 생각이 먼저 떠오를 것이다. 나도 그렇다. 왜 하필.....!! 왜 하필..왜 하필 생각을 할 수록 우울이 바닥을 뚫고 내려간다. 해서 내키진 않지만 억지로 생각을 돌려야한다. 이건 그간 많이 받아오고 넘치게 쥐고 살던 내게 이제 조금은 내어주고 느슨하게 살아보라는 연습의 시작일 것이다. 그래서 남들 다 있는 것 중에 아주 작은 부분 회수해 가는 것이다라고...
이런 억지 생각이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그냥 이렇게 생각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괜찮아..라고 자기 위안도 해보지만 그래도 침울해지는 것을 보니 아직 나의 작은 상실에 대한 정신 수양은 더 필요한가 보다.
* 이후) 다행히 수술은 최소한의 부분절개로 끝이났다. 짧은 칼자국이 남긴했지만 감사한 마음으로 체력회복에 힘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