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초엽,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감상
많은 사람들이 추천한 책이어서 도서관에 갈 때마다 매번 있는지 확인했는데 없던 차에, 결국 구입한 책이다. 우선 작가가 93년생이라 좀 놀랐다. 내가 알고 있는 젊다는 작가들의 연령대는 보통 80년대 생들이 대부분인데, 내 생각보다 어리셔서 놀랍기도 했고, 살짝의 기대감도 들었다.
이 책은 여러 개의 단편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sf 소설이다. 하지만 마치 이 세계의 이야기가 아닌 것 같은 이질감은 별로 들지 않았다. 사실 생각해보면 미래라고 해서 주인공들의 생각이나 삶이 큰 변혁을 일으키진 않으니까. 이 소설집은 모두 다른 주인공들과 다른 시대, 다른 삶을 다루고 있지만 어떠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인간의 삶이라는 큰 틀은 변하지 않는다.
단편들이 많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단편은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다. 가장 인상 깊었다고 해서 내가 문장을 기록해 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책의 내용을 돌이켜보면 좋은 문장 하나보다는 버려진 우주 정거장의 광막한 분위기와 드넓은 우주 속에서 누군가를 백 년 넘게 기다리고 있는 주인공이 떠오른다.
이야기는 워프로 우주를 이동할 수 있는 기술이 도입되고, 냉동인간 기술이 발전하고 있는 미래를 다룬다. 지구의 포화상태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다른 우주로 이민을 떠나고, 주인공은 그러한 기술들을 다루는 과학자이다. 그녀의 가족들은 이미 이민을 떠났지만, 그 후 그곳으로 가는 것이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가족들과 떨어져 살게 된 주인공은 딥 프리징을 몇 번이고 하면서 언젠가 가족들을 보러 다른 우주로 떠날 수 있는 날이 올 때까지 낡은 우주 정거장에서 기다린다. 그리고 결국엔 고물 우주선을 타고 그곳의 좌표를 향해 떠난다.
주인공은 이미 가족들은 죽은 지 오래이고. 자신도 그 우주선을 타고 떠나면 어차피 도착하지도 못하고 우주에서 죽을 것을 안다. 하지만 그녀가 떠나는 이유를 왠지 나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어차피 인간이 빛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거라면, 그리고 자신도 어느 행성에 도착할 가능성이 없을 거라면, 가족들이 있는 곳을 향해 간다는 것도 그리 불행한 결말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노력을 한 거고, 가족들이 있는 곳과 가까워진다는 것이니까.
다음으로 나를 한참 동안 생각하게 만들었던 단편은 ‘감정의 물성’이라는 소설이다. 어느 회사에서 감정을 보이고, 만질 수 있는 것으로 개발해서 판매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여기서 나는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슬픔이나 우울감, 분노와 같은 감정을 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었다. 주인공의 연인이 그런 사람이었다. 집 안에 우울감을 쌓아놓고 살다가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이었는데, 나로서는 사실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글을 계속 읽어나가고, 다 읽고서도 생각해보니 왠지 알 수 있었다. 소설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소비가 항상 기쁨에 대한 가치를 지불하는 행위라는 생각은 이상합니다. 어떤 경우에 우리는 감정을 향유하는 가치를 지불하기도 해요. 한 편의 영화가 당신에게 늘 즐거움만을 주던가요? 공포, 외로움, 슬픔, 고독, 괴로움... 그런 것들을 위해서도 우리는 기꺼이 대가를 지불하죠. “
가만 생각해보면 우리는 즐거움만을 얻기 위해 매체를 향유하지는 않는다. 가끔씩은 슬픈 영화를 보고 싶을 때가 있는데, 그 특유의 아련하고 숨 막히는 분위기를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 감정을 가만히 느끼고 있으면, 감정에 휩쓸려버리는 느낌을 받는데, 그러한 느낌이 좋을 때가 있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나도 감정에 물성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한번 사 보고 싶다. 예를 들면 우울감 같은 것 말이다. 우울감이나 슬픔. 나는 매체를 보면서 잘 울지 않는 사람이다. 감정이 충분치가 않은 건지, 감정의 폭발을 참는 것인지 몰라도, 정말 슬픈데 눈물이 나지 않는 상황이 오면 나는 조금의 불편함을 느끼곤 한다. 그럴 때 우울감이라는 물성을 가지고 있으면 감정이 넘쳐흘러 눈물이 날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이 소설집에는 우리가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단편들이 많이 있다. 이 작품이 작가의 첫 발간된 작품집이라고 하는데, 이 사람의 이야기를 좀 더 읽어 보고 싶고, 느껴 보고 싶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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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