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편지를 주고받은 지가 오래다. 가장 최근에 받은 편지는 지난봄 샌프란시스코에서 신혼여행을 보내고 있던 새신랑에게서 온 것이었다. “사랑하는詩人께로 시작되어 “여기에 와서 다른 사람들의 삶을 보고 있자니 그저 어디에서건 살아지는 게 답답하고 또 좋습니다. 여백이 많지 않습니다”로 끝맺는 짧은 편지였다.
박준,《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편지' 중에서...
손 편지를 주고받는 걸 좋아하던 때가 있었다. 고등학교 때 나와 친구들의 취미는 매점에서 예쁜 편지지를 사서 서로에게 편지를 써 주고 답장을 하는 것이었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점점 시들해지긴 했지만, 우리만의 소소한 행복이었던 것 같다. 학교를 졸업하고선 손편지가 이메일로, 시간이 더 지나서는 카톡으로 서로의 안부를 묻는 정도로 바뀌어 가긴 했지만 여전히 내 서랍 속에는 손편지들이 자리하고 있다.
생각날 때 가끔 편지지 봉투를 열어보곤 하는데, 지금 보면 이런 건 대체 왜 쓴 걸까 싶을 정도로 정말 사소한 일상 투성이다. 하지만 또 그중에는 그 나이에만 할 수 있는 진지한 고민들도 적혀있다. 그런 것들이 여백도 없이, 심지어 편지지 뒷면까지 꽉꽉 채워서, 두 장 분량으로 빽빽하게 적혀있다. 그런 고민들에 대해 내가 어떤 답장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내가 쓴 손편지는 타인의 손에 넘어갔으니까.) 여백도 없는 편지지 속에는 우리의 삶이 담겨 있다. 어떻게 보면 내가 가진 편지들은 다른 친구들의 삶의 흔적인 것이다.
그렇게 열심히 편지를 주고받던 친구들 중 나와 여전히 연락을 주고받는 친구는 단 한 명뿐이다. 나나 그 애나 대학교를 다른 지역으로 갔어서 잘은 보지 못하지만, 연락은 이어지고 있다. 꽃이 만개할 때쯤에, 그 친구와 오랜만에 만나기로 약속했다. 친구를 만나기 전에 예쁜 편지지를 사서 별 내용도 없지만 빽빽한 손편지를 써주고 싶다. 별 건 없는 내 삶의 어느 순간을 손에 쥐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