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cambio.com 입사하다(9)

헬조선이라 욕하면서 민족주의자로 외국 땅에서 살아가기_영어 편

by Honkoni

매일 난 한국에서 온 한국 여자고, 쟤는 스코틀랜드에서 온 스코티시고, 쟤는 프랑스 출신 동거인임을 확인한다. 더군다나 회사에서 제공받은 아파트에서 같이 살면서 (프랑스 여인 1명, 스코틀랜드 여인 1명과 아파트 하나를 같이 쉐어 한다) 잠자는 시간 빼고 어쨌든 영어로 떠들어야 하니 서로 다른 환경에서 다르게 교육받고 컸음을 매일같이 확인하고 있다.

일단 나야 서른이 훌쩍 넘은 나이에 이렇게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른 곳에서 맨땅에 헤딩하듯이 하루하루 귀를 쫑긋 세우고 (안 세우면 안 들리니까 )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이렇게 치열하게 살다 보니,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내 피에 흐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sticker sticker

이렇게 한국이 싫어서 "아아아 아악!!!" 이러고 영국 옆에 붙어있는 듣도 보도 못한 섬나라에 온 주제에 살면 살수록 한국의 좋은 점이 마구 보인다.

아, 아일랜드는 영화 원스로 접했으나 사실 나는 원스의 팬이 아니라서 영화고 노래고 그냥 그저 그랬기 때문에 영화로 인해 아일랜드가 매력적으로 다가온 적은 전혀 없다.

졸업한지 10년이 훌쩍 더 넘은 고등학교 시절을 잠깐 회상해 보자면, 한국인이 유태인 다음으로 머리가 좋고 어쩌고 말씀하신 경제 담당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며, '이건 웬 민족주의적 발상? 믿을 수 없어'라고 단정 지어 생각했었는데, 이게 웬걸. 나는 요새 새삼스럽게 느끼고 있다.

내가 머리가 좋다는 게 아니라, (나는 머리 나쁨) 한국 학생들이 진짜 똑똑한데(그 많은 교과목을 다 소화하는 거 보면) 교육과정과 이상한 입시풍조 때문에 제대로 취업도 못하고 이렇게 '나는 잉여요~' 이렇게 자학 가면서 사회라는 큰 강물로 제대로 떠밀려 오지 못한 채 개울에서 발을 담글까 말까 망설이는 모양이 아닐까 싶다.

뭐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지만 한국인은 기본적으로 우수한 머리와 척박한데서 환경을 개척해 가는 '한강의 기적' 및 'IMF 조기졸업' 등등의 승부근성 유전자를 타고 태어난 것 같다.

다만, 그놈의 모난돌이 정 맞고, 남들 YES 할 때 NO 했다가는 밉상으로 찍히는 문화가 잘난 유전자를 죽이고 있는 거 아닐까.

joy.png <늘 함께하는 긍정이>

미디어에서 한국인들의 영어실력을 꼬집는다. 십 수년 넘게 교과과정을 통해 영어를 공부해도 말을 제대로 못한다고 비난받는 한국인들. 영어 공교육에 문제가 있다는 둥, 문법만 너무 강조한다는 많은 영어교육 관계자들이 이것도 문제고 저것도 문제다 라는 식으로 떠들어 대고 있지만 나는 좀 다른 시각으로 보고 싶다.

영어는, 우리랑 어순과 발음이 완전 다르잖아. 교육과정이 어찌됐든 간에 이 정도로 말하면 잘하는 거지 뭐!!!

더군다나 나는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공교육으로 영어를 접한 세대이고(마지막 국민학교 세대), 선행 학습을 했다고는 하나 6학년 여름방학 때 눈높이 영어를 통해 ABCD Song을 처음 접한, 지방에서 태어나 지방에서 학교를 끝낸 촌여자란 말이지.

대학교 때도 나름 열심히 한다고 했고, 직장에서도 국/영문 이메일을 항상 써야 하는 입장이었고, 개인적으로 노력한다고 했지만 당연히 말하면서 영어의 벽에 부딪히고 아마 죽을 때까지 그럴 것 같다.

처음에는 이 문제 갖고 진짜 좌절 많이 했다. 그렇게 영어 공부해도 왜 적재적소에 말이 제대로 튀어나오지 않는 것일까.

근데 따지고 보면,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에서 온 애들도 영어가 완벽하지 않다는 점.

너네들은 알파벳도 문법도 발음도 비슷비슷하잖아. 나는 어디 출신? 동아시아에서 왔다고! 나는 14살 때 처음으로 영어 공교육을 받았다고! 근데 너네는 왜 영어 못하니? 너네는 40 유로면 왕복으로 아일랜드나 UK로 여행도 할 수 있는데 너네는 왜 유창하지 않으냐고! 우리는 1000유로 가까이 투자해야 영어권 나라에 왕복으로 갔다 올 수 있을까 말까라고

sticker sticker

만약에 우리가 영어교육받듯이 일본어를 공부했다면 정말 일본인과 똑같은 유창한 일본어를 구사하지 않았을까? 왜냐면 한자를 쓰는 문화에 기본적으로 어순이 같으니 얼마나 배우기 쉽냔 말이다.

근데 어순이 비슷한 너네들은, 왜 영어를 잘 못하는데?

그러니 그깟 영어에 졸지 말자. 안 들리면 천천히 말해달라고 하고, 오히려 발음을 똑바로 해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해도 된다. 그리고 네이티브가 내 말을 잘 못 알아 들었다고 고개를 갸우뚱 할때 씽긋 웃어 주면서 다시 천천히 또박또박 말해도 전혀 쪽팔리는 게 아니다.

외국인이 I'm Sorry? Excuese me?라고 했을 때 얼굴이 붉어지면서 '이씽, 내 발음이 구린가? 문법이 틀렸나? 왜 못 알아듣지?' 하고 당황하는 쪽은 한국인과 일본인이고 유럽 쪽 애들은 '왜 내 말을 못 알아듣지? 네이티브가 내 말도 못 알아듣다니... 한심..' 이런 당당한 표정으로 웃으면서 한번 더 문장을 반복한다.

영어 말고도 더 중요한 가치가 있는데 영어에 가려 나의 재능을 뽐내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지 말자.

해외파 연예인들 보면 거기서 태어나서, 혹은 어릴 때 조기교육의 영향으로 발음이 나보다 좋고, 귀가 나보다 더 트였을지 몰라도, 그 외에는 말에 핵심이 없는 경우가 종종 있지 않던가.

결론적으로, 횡설수설 중에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영어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졸지 말자. 내가 모국어를 통해 전달하고자 분명한 맥락이 있으면 짧은 영어와 손짓 발짓, 그리고 사전을 다 뒤져서라도 전달하기 되기 마련이다.

떠나온지 10개월 만에 헬조선에 사는 우리나라 국민을 우러러 보게 되는 중이다.

이렇게 정치가 엉망진창이고, 친일파들이 윗자리를 턱 하니 차지하고 국민들을 쥐락펴락 하는 와중에서도 이렇게 잘 버텨내고 있는 거 보면 그래도 한국인의 국민성이 대단한 거다.

그리고 내 스스로에게 하는 말.

영어 안 들린다고,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자. 머리만 나빠진다. 안 들리는데 들리는 척도 하지 말고 맘 편히 갖고 귀와 눈을 영어에 더 노출시키면 되지 뭐.

아이리쉬인 너네들도 시골 가면 사투리라 잘 못 알아듣겠다며. 미국 영어 배우고 큰 나는 Irish English 가 사투리인걸 뭐.

sticker sticker















매거진의 이전글Gocambio.com 입사하다(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