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프랑스의 양성평등에 대한 이야기
사무실에 두 명의 프랑스인이 일하고 있다. 여자 A와 남자 H.
그중에 A는 내 flatmate 이기도 하며 밝고 활달하고 씩씩한 한 반면 H는 차분하고 일할 때 꽤나 프로페셔널하다.
가끔 같이 마트에서 장을 보거나, 점심을 먹으면서 A로부터 프랑스가 그동안 양성평등을 이루기 위해서 여자들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목에 핏대를 세우며 얘기하는걸 들은 적이 있는데 그때마다 '아 그러니?' 이러고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고 말았는데 어제 한 가지 이상한걸 발견했다.
무거운 짐을 들거나 (한국 여자의 핸드백 수준이 아닌, 10킬로 남짓의 백팩) 높은 곳에 올라가서 무언가를 꺼내야 할 때 절대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으려고 한다는 점이었다.
내가 도와주려고 할 때 진심으로 손사래를 치며 "아냐 아냐, 니 도움 필요 없어. 내가 혼자 할 수 있어" 이러면서 탁- 잘라내는 느낌? 처음 몇 번은 그러려니 넘어갔다가 우연히 얘기를 꺼낼 기회가 있어서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도움을 받아도 좋지 않냐고. 그러니까 지난번 대수롭지 않게 흘려 들었던 그 얘기를 다시 꺼내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말하면 그렇게 안 컸다고. 어릴 때부터 페미니스트인 엄마와 이모한테서 남자한테 기대지 말고 독립적으로 니 인생은 네가 책임져야 한다고 배웠다는 것이다. 때마침 함께 얘기하면서 꽤 가파른 언덕을 오르고 있었는데 일행으로는 또 다른 아일랜드 룸메 C, 그리고 프랑스 남자 H도 있었다. C는 그날따라 랩탑이니 뭐니 하는걸 잔뜩 어깨에 메고 올라가고 있었고, H는 빈손인 채로 헉헉대며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한국남자애들 같으면 분명 C에게 "내가 가방 좀 들어줄까?"라고 제안했을 것 같은데(물어보기라도 했을 것 같은데) H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듯했다.
한국에서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내가 무거운걸 헉헉대며 걸어가는데, 같이 걸어가는 남자사람 친구가 "내가 대신 들어줄까?" 라는 기색 없이 그냥 옆에서 걷는다???
나 였으면 여자사람인 친구에게 예의가 없다며 내 쪽에서 먼저 싫은 소리 했을 수도 있다. 뭐 여기는 한국도 아니고, 상대가 한국남자도 아니고, 그 무거운 가방을 들고 올라가는 사람도 내가 아닌 룸에 C였기에 그걸 알아차리는 방향이 좀 늦었을뿐.

거두절미 하고 내가 물었다.
"무례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냥 몰라서 묻는 거니까, 그리고 진짜 호기심에 묻는 거니까 맘 편히 대답해줘. H 너는 왜 먼저 C에게 [무겁니? 내가 언덕을 다 오를 때까지만 좀 들어줄까?]라고 제안하지 않아? 한국 같으면 남자 쪽에서 먼저 그렇게 물어왔을 것 같거든"
평소에 꽤나 나이스 하다고 생각했던 H에게 들려온 대답은 다소 충격이었다.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C도 충분히 강하다고(strong enough) 하다고 생각해. 그리고 본인이 무거워서 남한테 부탁할 정도의 짐이었으면 애초에 들지 말았어야지"라는 대답. 내가 다시 H에게 물었다. 네가 들어야 하는 의무는 당연히 없지만, 그냥 너는 키가 180이 훌쩍 넘는 남자고, 우리가 처음으로 퇴근하고 함께 이 가파른 언덕을 오르고 있고, 하필 오늘따라 너는 빈손이고, 근데 C가 짐이 많아서 저렇게 낑낑대고 있는데, 가방 무겁지 않니?라고 물어봐주는 젠틀맨 애티튜드는 보일 수 있지 않느냐라고 최대한 조근 거리며 말하니 H는 만약에 여자친구가 자기 가방을 들어달라고 해도 그런 여자는 안 만날 것 같단다. 나한테 기대는 의존적인 여자는 싫다며 오히려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글쎄_
내가 생각하는 양성평등이라 함은 우리가 삶을 살면서 단순히 남자라는 이유로, 혹은 여자라는 이유로 불합리한 일을 당해서는 안된다는 것, 성별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는 인식을 알리고자 하는 캠페인이라고 생각한다. 그 외에 성별의 차이에서 오는 남자답고, 여자답다 라는 개념은 지켜주는 게 더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 그 남자답다/여자답다 라는 개념조차 정의하기 나름 이겠지만, 프랑스인 대다수가 정말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면 나는 여기서 또 다른 문화 차이를 느낄 수밖에.
일례로, 성의 차이에서 오는 알코올 해독 능력을 과학적으로 보면 남자가 우월하다. 근데 양성평등이라는 개념으로 남자들은 하루에 맥주 2잔이 허용되는데 우리 여성들은 왜 못 마시느냐 이러면서 "양성평등" 어쩌고 떠들어 대는 건 헛소리라는 것.
어차피 신체적으로 다르잖아. 단순히 키가 더 크고, 근육량이 많고의 문제가 아니라, 몸속의 장기도 다르도, 골격도, 뭣도 암턴 죄다 다 다르잖아. 다름에서 오는 신체능력의 차이가 있다면 더 발달한 쪽에서 덜 발달한 쪽을 좀 도와주면 안되냐는 거지.
마찬가지로 육체적으로 남자가 좀 더 무거운걸 들 수 있는 힘이 있다면 be a gentle man 이 되어 도와 줄 수 있는 거 아닐까. 나중에 집에서 A에게 한말이었지만, 상대방에게 쿠키를 권하는 거랑 똑같은 배려의 문제라고 말했다. (물론 A는 동의하지 않았지만)
TV를 보면서 나는 쿠키 한통이 있고, 내 옆에 앉은 사람이 빈손으로 TV를 보고 있다면 쿠키상자를 내밀면서 너도 좀 먹을래? 하는 상대방에 대한 예의와 배려. 나 혼자 쿠키 한상자 들고 먹는다고 법을 어기는 것도 아니고, 내 돈 주고 나 위해서 산 쿠키인데 나 혼자 다 먹으면 어떠냐 싶지만, 이왕이면 권하는 게 같이 있는 상대방에 대한 예의라고 배운 것처럼_
꼭 여자친구 남자친구 사이가 아니더라도 여자가 무거운 거 들고 있으면 도와주려고 노력하는 게 예의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여자가 무거운 물통을 들고 있으면 남자가 도와주려고 하는 배려의 문제에 왜 양성평등의 문제를 들고 나오는지 모르겠다.
물론 여자도 당연히 남자가 해줘야지 라는 의존적인 마음을 버려야 하는 것도 맞다. 연인 사이에서 여자가 당연히 본인의 핸드백을 남자에게 들게 하는 것도 물론 볼썽 사나운 짓이지만, 남자와 여자가 타고난 본질적인 신체적 능력의 다름마저 인정하지 않고 "똑같이" 해야 한다는 의미도 정말 잘못된 의미의 양성평등이라고 생각한다.
프랑스는 다 이래? 이렇게 양성평등 철저히 주장하면서 A의 말에 따르면, 비즈니스 세계에서 높은 자리는 남자가 다 차지하고 있다며 불만을 터뜨리던데... 거봐. 양성평등을 남자가 무거운걸 들어주는걸 사양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거다.
그리고 양성평등을 서로 차별 없이 남성과 여성이 어우러져 잘 살자는 거지. "우리 싸우자" 가 아니라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