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라리 천주교 신자의 숱하게 점 보러 다닌 이야기
나름 모태신앙인 내가 20살 이후로 가볍게 사주카페로 시작해서 참 부단히 도 미래를 점쳐 보기 위해 이곳저곳 많이 찾아다녔다. 살짝 기억을 더듬어 보면 사주카페는 한 5번 이상 간듯하고, 역학자도 1명 찾아가고, 신점도 한번 보았다.
그리고 느낀 건, 내가 다 엉터리만 만나봤는지 몰라도 다 틀렸다는 것!
남자친구 생긴다는 해에 남자친구 생긴 적 없고, 외국에 나가면 좋을까요?라고 물었을 때 "단언컨대 올해는 아니야! 2년 뒤에 나가!"라는 단정적인 말을 듣고도 나는 그냥 그 해에 나갔다. 이직한 곳 참 좋다는 답변을 들었다가 그 해에 거의 잘리다시피 한적도 있다.
전혀 얼토당토 하지 않는 말 빼고 그나마 공통적으로 들었던 부분을 추려 보면
1. 부모/형제 복이 없다.
2. 나가 살아라! 역마살이 많다
3. 돈복이 많다.
4. 늦게 결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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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대한 나의 의견은.
1. 하나밖에 없는 오빠와 살가운 사이가 아니기 때문에(해외에 나와 있는 지금도 내가 먼저 카톡을 하지 않는한, 잘 지내냐고 물어오는 법이 없다 ㅠ,ㅠ) 형제복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나에게 빚 물려 주시지 않고, 대학교까지 무사히 졸업할 수 있도록, 모든 학비 지원을 끝내주셨는데, 부모복이 없다고 하다니 기가 찼다.
나한테 물려주실 재산 하나 없어도, 충분한 사랑받았고, 충분한 교육받았고(대학원은 내 돈으로 가는 게 맞는 거다), 두분다 건강하신걸 보니 나는 부모복이 많은 사람 같단 말이다!!
2. 내 사주에서 3주가 역마살, 지살로 채워져 있다고는 하나, 요새 같이 개나 소나 다 비행기 타는 시대에 돈만 있음 나가는 거지 역마살이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의 이십 대는 또래의 이십 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돈 없이도 해외여행을 좀 많이 했다고는 하나, 학위를 딴 건 아니었고, 그저 소소하고 짧았던 경험이었을 뿐. (특히나 독일에서의 체류는 좀 아깝다. 좀 더 적극적으로 살아볼걸.... 우울해하고 날씨 탓만 하고, 독일어 하나 제대로 건져오지 못한 채 끝나버렸지)
3. 돈복이 많다고 하니 듣던 중 반가운 소리이나 한국 나이 33살, 곧 34살을 바라보는 요즘... 나는 현재 제대로 돈을 버는 위치도 아니고(한국은행에서 돈을 안 끌어다 쓰는 게 다행일 뿐) 돈이 많이 없지는 않지만 항상 돈이 부족한 채로 살아왔던 것 같다. 직장 생활하면서 차를 소유해 본 적도 없고, 내 또래에 하나씩은 갖고 있다는 명품백 하나 없고, 하다 못해 화장품을 백화점에서 몇번 사본적도 없다. 왜냐? 비싸니까. 면세점에서 왕창 사곤 했었지.
뭐 돈복이 많다고 하니 기분은 좋지만... 여태까지는 기분만 좋은 상태!
4. 늦게 결혼해야 한다고? 이미 늦었으니까 그런 말하는 거겠지 싶은 마음과 함께 일찍 결혼해야 한다는 사주를 주변에서 본 적이 없어서 이 말에도 그냥 시큰둥이다.
정리해 보면 어차피 사주쟁이(?) 말 듣고 그대로 행동할 것도 아니면서 왜 자꾸 좋은 말이 듣고 싶어서 부지런히 돈 낭비를 했는지 잘 모르겠다. 다만, 나는 지금도 여전히 '인생은 주어진 나의 그릇 안에서 개척할 수 있다'라는 운명 결정론 자다.
우리의 타고난 환경, 국가, 부모 및 형제자매, 외모 등등은 내 노력으로 되는 게 아닌 것처럼,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모델과 연예인을 꿈꿀 수 없는 외모인 것처럼, 어느 정도의 큰 틀은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고, 그렇지만 또 부지런히 그 큰 틀 또한 변화시키겠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노력 중이다.
여기서 노력이란, 고통을 참아 가며, 목표를 정해서 하루하루 버티는 게 아니라 하루하루 눈떠서 잠들 때까지 최대치로 사는 것. 너무 많이 고민하지 말고, 미래를 고민하느라 현재를 날려 보내는 게 아니라 꼭 붙드는 삶.
남들이 어떻게 사는 거에
남들의 시선이 어떤지에
남들이 나를 어떻게 쳐다보는 지에
연연하지 말지어다.
나의 속도대로 살아가면 된다. 나라는 인생이라는 스케치북에 차근이 그리면 된다. 남의 스케치북을 들여다 보면서 남의 그림이 더 좋은 것 같다며, 남의 디자인과 남이 선택한 크레용을 부러워하지 않아도 된다.
이걸 깨달은 33살 가을, 내 인생에서 두 번 다시 사주상담은 없을 것 같다.
2달 뒤, 한국으로 돌아가고 백수를 코앞에 두고 있어도 나는 뭐 먹고살까 사서 걱정하고 사서 고민하지 않는다.
인생이 너무 재밌을 뿐이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라도 온몸으로 받아들이려 한다.
Amor fat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