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이별, 그리고 아이리쉬 가족과 이별하는 법
<잠시만 안녕>
7개월 동안 큰 이모처럼, 작은 삼촌처럼 나를 돌봐주었던 홈스테이 부부 Paul and Mary. 어떤 사람들은 아주 재수없게도 한 달 남짓 체류하는 학생들을 그저 돈으로만 보면서 본인들이 먹는 아이리쉬 음식과 다른 냉동음식을 제공하고, 샤워시간까지 10분, 15분 이렇게 컨트롤한다고 하던데, 항상 결정적인 순간에 운이 따라주는 나는 거짓말 조금 더 보태면 친동생처럼 챙겨주는 그 부부 덕분에 맘 편히 더블린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가끔은 저녁에 펍도 함께 가고, 다니고 있었던 랭귀지 스쿨보다 더 살아있는 영어를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 별일이 없는 한 저녁은 항상 홈스테이 가정과 함께했는데 서로 할 얘기가 뭐 그렇게 많은지 항상 한 시간 반 이상이 넘는 저녁 식사 시간을 가졌고, 한국문화, 아일랜드 문화, 경제, 정치, 교육 여러 문제에 걸쳐서 많은 얘기를 나눴었다. 내가 한국이 아닌 아일랜드의 다른 주로 이사 가게 되었다고 하니 나의 또 다른 앞날에 기뻐하면서도 가족이 떠나가는 것 같다며 섭섭해했다. 더블린을 떠나던 날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딸 한나가 전해준 인사이드 아웃의 "긍정이" 인형과 카드를 받아 드는 순간 진심 눈물이 왈칵했다.
돌이켜 보면 한국에 있을 때는 항상 남에게 선물할 때마다 늘 가격이 고민이었다. 가진 돈은 얼마 없는데 비싼 거 선물하자니 손 떨리고, 내 수준에 맞는 저렴한 선물로 하자니 상대방이 안 좋아할까 봐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돈을 쓰는 편이었는데 이런 성향은 선물 받는 당사자와 사이가 멀면 멀수록 심해졌다. 예를 들어서 친하지 않은 회사 동료나 선배들...
아일랜드에서 머물고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면서 소박하지만 정성이 담긴 선물의 의미를 깨달았다. 받는 사랑과 주는 사람이 서로 부담 없이 주고받을 수 있는 소중한 마음이 전제되어 있을 때 선물의 값어치는 빛난다는 걸 깨닫는 순간 타인을 위해서 부담 없는 선물을 기쁜 마음으로 좀 더 자주 할 수 있었고, 나 역시 마음이 담긴 선물을 받으면서 '아, 이렇게 받았으니까 신세 지지 않기 위해서 나도 해줘야 하는구나'라는 부담감을 지울 수 있었다.
한나는 분명 내가 '인사이드 아웃'이라는 영화를 보고 와서 긍정이(JOY)라는 캐릭터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는 말을 기억했다가 이렇게 굿바이 선물을 정성 들여 쓴 카드와 함께 선물한 것이다.
그리고 이 홈스테이 가족과의 이별과는 별개로 지난 6개월간 나의 연애도 돌아볼 수 있었다.
연애가 끝난 후 내가 깨달은 건 여자든 남자든 성숙한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진실이었다.
그(녀)와 함께할 때 변화되는 내 모습에 내가 행복해야 진정한 행복한 연애고 또 그 감정이 나를 이 사람과 평생 함께하고 싶다라는 결혼 결심으로 이루어진다는 걸 경험을 통해 배웠다.
사귄지 얼마 되지 않아 내가 행복하지 않고 불만이 쌓여간다는 걸 알 수 있었다.
1. A는 중학교 2학년 때 아일랜드로 건너와서 중, 고, 대학교를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나보다 모르는 영어 단어가 너무 많았다. 어떻게 대학에 들어올 수 있었는지 신기할 정도로 영어 구사 능력에 문제가 있었다. 비슷하게 한국어도 기본적인 한국어 수준밖에 구사할 수 없음도 안타까웠다. 말도 안 되는 부분에서 무능함이 보이자 그에 대한 신뢰와 기대가 무너졌다.
2. A의 이십 대 후반의 나이에 군대도 다녀오지 않았고(갈 마음이 없고) 얼른 아일랜드에서 돈을 벌어서 한국 국적을 바꾸고 싶다는 말에 더 화가 나고 더더욱 무능해 보였다. 그러면서 학점이 안 좋아서 졸업할지 못할지 장담을 못한다는 말에 '조기교육의 전형적인 폐해'를 눈으로 직접 보는 것만 같아서 안타까웠다. 나는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군대를 회피하고 한국 국적을 포기하겠다는 말을 하는 상대에게도 다른 의미의 무능함을 다시 느꼈다.
3. A의 이중잣대가 싫었다. 인생의 반을 한국에서, 나머지 반을 아일랜드 한 그는 두 문화의 안 좋은 점을 다 갖고 있었다. 한국 여자의 개방화되어 가고 있는 성 개념을 비난하면서, 동시에 데이트에서 더치페이하지 않는 여자들을 향해 손가락질하는 그와 나는 처음부터 끝나는 순간까지 맞지 않았다.
전반적인 그에 대한 나의 평가는 그의 무능함에 대한 실망이었다. 아무리 헬조선이라 절망할 지언정, 나는 한국인 이었다.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많은 친구나 선후배 들은 기본적으로 치열했다. 아무리 3포, 5포, 7포, 9포 세대라고 하더라도 포기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님을 나는 알았다. 나는 그게 젊은 우리가 가져야 할 기본 자세고 희망이라고 믿는 사람이었고 그는 보고 싶지 않은 현실은 보지 않고 부모님의 뒤에 숨어서 편하게 살고 싶어 하는 사람 이었다.
끝나기 전부터 '아, 우린 안 되겠구나'라고 생각해서 인지 이별이 왔을 때 나는 슬프지 않았다. 오히려 후련했다.
인간관계는 상호적이라 나 역시 A에게 좋은 여자는 아니었다.
모든 주변 상황이 이렇게 자연스럽게 정리가 되고 나는 홀가분하게 더블린을 떠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