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를 정리하다가 터진 파리 테러

세상은 요지경

by Honkoni

나는 항상 12월보다는 11월이 더 연말같이 설렜다. 설레서 막 송년회니 뭐니 술 마시고 돌아다니는 건 아니고, 차분한 기분에 묘하게 설렜다. 한국에 있을 때 항상 그랬다.

'아~ 늦가을 날씨 좋다~~~'의 계절이 완전히 끝나고 완전 겨울임을 부쩍 내려간 기온과 겨울바람으로 막 체감할 수 있는 11월이 그렇게 좋았다.

아직 거리에 캐럴이 본격적으로 들리기 전에 혼자 마구 설레고 들떠하면서 다이어리를 구입하고, 펜을 사고, 일기를 쓰고, 그런 내 마음가짐에 걸맞은 책도 막 몇 권씩 사면서 '아 올 한 해가 이렇게 가고 또 내년이 이렇게 오고 또 나는 나이 들어 가는구나.... 세월 참 빠르다.... 이 말을 내가 어릴 쩍 엄마가 입에 달고 살았던 것 같은데 내가 그 나이에 가까워지고 있구나' 이런 씁쓸한 기분을 작정하고 느끼곤 했다.


그리고 그 습관은 여기 아일랜드에서도 계속되고 있어서 2016년 몰스킨 플래너를 샀다. 2015년도는 하얀 몰스킨 이었는데, 내년에는 좀 더 열정적인 빨간색! 이렇게 아일랜드에 본격적인 겨울이 찾아와서 춥고 7일 중 6일은 비가 내리고 비 안 내리는 날에는 곧 쏟아질 것만 같은 먹구름이 가득한 날씨에 잘 어울리는 참 차분한 한 해 정리와 새해맞이를 하며 오늘 친구이자 동료인 Anais와 Tizi와 함께 타운으로 나갔다. 각자 커피숍에 흩어져서 할 일을 하다가 다시 만나서 점심을 먹고 주말에 먹을 거 장도 좀 보고 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는데, Anais 가 갑자기 얼굴이 벌게져서 "파리 테러 났대. 가족이랑 친구들에게 연락을 해봐야겠어" 이러고 황급히 자기 방으로 올라갔다. 놀란 마음에 기사 검색을 해보니 연쇄 폭탄테러.......


또, 또 이러는 거야? 또

예전에도 전 세계가 지뢰 찾기의 한 게임판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어디를 클릭하면 지뢰가 터져서 게임이 끝나는지 알지도 못한 채 마우스로 무한 클릭을 해대다가 운 좋으면 살아남고 재수없으면 클릭 한방에 게임이 끝나는;;


살인, 강간, 폭행, 자살 등등 셀 수도 없는 죄질 나쁜 범죄 중에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걸 최악으로 쳤을 때, 그래도 원한에 의한 범죄는 수백만 번 양보에서 그렇다고 치자


네가 내 남편을 뺏어가서, 돈 때문에, 네가 때려서 내가 너를 때리다가 죽였다 등등 네가 재수없게 굴어서 내가 너를 죽인 건 그래도 덜 무섭단 말이다.

근데 지나가다가 욱해서 나랑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을 찔러 죽인다거나 폭탄테러를 일으키는 자들은 인간이기는 한 건지. 종교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사람이 하는 짓이라곤 볼 수 없다.


휴......


이 착잡하고 등골이 오싹한 마음.

그리고 공황장애까진 아니지만 (공황장애가 뭔지 잘 모르는 거 보면 아닌 건 맞는 듯)

가끔 길을 걷다가 차가 와서 나를 확 치고 가면 어쩌지? 혹은 비행기를 탈 때마다 이 비행기에 테러범이 탔거나 혹은 조종사의 멘탈 문제로 이륙 혹은 착륙하다가 건물을 밖아버리고 내가 그 자리에서 죽어버리면 어쩌지?

이런 생각이 문득 들어서 몸서리 쳐질 때가 있다.

온세계가 미쳐 날뛰는 요즘. 사람으로 태어나서 사람답게 살다가 죽는 게 너무 힘들다.


멀쩡한 사람도 불안으로 머리가 팽팽 돌아버릴 지경. 세상은 요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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