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이렇게 하는 것!
지난 11월 19일에 늦은 오후 비행기로 아일랜드를 떠나서 암스테르담에 도착했다.
그리고 20일부터 본격적인 여행을 하고 오늘이 뚜벅이 여행 3일째. 내일 하루 종일 열심히 여행을 하다가 24일 아침 비행기로 다시 아일랜드로 돌아가게 된다.
작정하고 계획한 건 아니었지만 어쩌다 보니 하루에 하나씩 테마가 잡혀서 금요일은 꽃시장 치즈시장을 돌아다니면서 사진 찍고, 가게마다 꼼꼼히 물건 살펴보고 (산거라고 룸메에게 줄 에담 치즈 한 덩어리와 한국으로 보낼 튤립 종자 한 봉지가 전부), 가는 곳마다 대형마트가 있으면 거기 들러서 또 꼼꼼히 먹거리 살펴보고 (난 이렇게 슈퍼 구경하는 게 너무 좋다) 둘째 날은 반 고흐 박물관 딱 하나 찍어서 돌아다니고, 또 레스토랑 가서 밥 먹고, 마그나 쇼핑 센터였나? 암턴 또 실컷 눈팅하다가 좀 일찍 귀가, 삼일째인 오늘은 중앙역을 하루의 시작으로 하여 구석구석 운하를 돌아다니면서 여러 빈티지 숍, 편집샵들을 구경하다가 가려고 간 건 아니었지만 편집숍 거리에서 암스테르담 박물관을 또 발견하여 그냥 한번 들어가고 싶은 마음에 박물관도 가주고, 청바지도 한 개 사고 다시 숙소로 귀가 이렇게 오전 9시부터 대충 오후 6시까지 부지런히 도 뚜벅뚜벅 걸어 다니고 있다.
한국에 있을 때건 아일랜드에서 이렇게 나와 있을 때건 천성이 밤에 나가 돌아다니는걸 좋아하지 않아서 출퇴근하듯이 오전 일찍 나가서 해가 지면 냉큼 호텔로 돌아와서 씻는다. 우리엄마도 처녀시절 밖에 네온사인이 켜지면 가슴이 두군두군 하면서 집으로 서둘러 돌아갔다고 하던데, 나도 해가 지면 밖에 혼자 돌아다니는게 쫌 꺼려진다. 뭐 이런것도 유전인가 ?
그러다 문득 오늘 그래, 여행은 이렇게 하는 거라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호불호가 갈리긴 하지만, 그리고 나 역시 그 사람이 하는 말을 교주같이 믿고 따르는 건 아니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부분만 취하고 아니라고 생각하는 부분까지 동조하지는 않지만 예전에 혜화동에 있는 벙커 1 카페를 부지런히 드나들며 강신주 박사의 다 상담을 들으러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직장인이었던 불과 2년 전의 겁나 우울하던 시절;;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강의 듣고 있다가 강신주가 이런 말을 한적이 있어서 크게 공감한 적이 있었다.
정말 여행을 하고 싶으면 가기 전부터 블로그 검색하고 맛집 검색하고, 그러면서 사전 조사 다 끝내 놓고 여행 가서 고대로 다니면서 사진 찍고 역시 맛있네 맛있네 이러면서 무슨 숙제하듯 여행하지 말라고, 그게 무슨 여행이냐고, 다른 나를 발견하러 온 거면 정말 낯선 곳에서 낯설게 바라보기 (자신 이튼 타인이든 어떤 대상이든)를 해보라고 그래야 내가 누군지 알 수 있다고
그러면서 또 한참을 육두문자 쓰며 잔소리를 해댔는데 각설하고, 난 그 말이 참 충격적으로 와 닿았었다. 그러고 보면 우리 대다수는 남이 간 여행기를 훔쳐보고 남이 한걸 고대로 따라 하려고 한다. 남이 맛집이라는데, 남이 여기는 꼭 가보라는데 비싼 돈 주고 가서 "남처럼" 고대로 안 했다가는 뭔가 손해 본거 같은 껄끄러운 기분에 사로 잡히는 우리.
얼마나 뼛속까지 남과 똑같은 인생을 살기 위해서 발버둥 치고 있는지.
남이 맛집이라고 해봐야 그 남 역시 다른 남의 블로그를 보고 찾아간 곳일 확률이 높고, 그 남도 그 나라를 잘 알지 못하는 초짜일 확률이 있으며, 설사 그 '남'이 현지에 빠삭한 이민자라고 하더라도 우리가 따라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는 사실;;
나 역시 그동안 그렇게 맛집까지 따라 하는 편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가기 전부터 공항에서 호텔까지의 동선이라든지, 호텔 주위의 편의 시설이라든지, 교통카드를 어떻게 구입해야 저렴하게 다닐 수 있는지 이런 거 정도는 사전에 검색을 해놔야 마음 편하게 여행을 시작하곤 했다.
그 이유에는,
1, 미리 알아봐야 금전적으로 조금이라도 절약할까 봐
2. 아무것도 모르고 갔다가 허둥지둥 당황하고 시간 낭비하기 싫어서
3. 심각하게 길 병신이라서
근데 생각해 보면 금전적으로 몇천 원 더 아끼는 꼴 밖에 안 되는 거고, 허둥지둥 당황하고, 당황함 속에서 길을 찾고 여행을 통해 뭔가 배우고 성숙해질 수 있는 법인데 이렇게 사전에 조사 다~~ 해 놓고, 숙제처럼 아침은 뭐 먹고 2시에는 어디 가고 관람 끝내고 또 줄 서서 맛집 들어가고 이렇게 여행할 거면 그냥 인터넷으로 다른 사람들이 한 여행 블로거나 읽고 있으면 될 것을 뭐 굳이 가나 싶어서 이번에는 전혀 준비하지 않았다.
길좀 잃으면 어때? 서른 넘은 나이에 길 잃어서 길거리에서 노숙할 리도 없고, 돌아 돌아 숙소에만 돌아오면 그것도 여행의 묘미 이지 뭐.
일단 숙제처럼 사전조사를 안하니 가기전부터 블로그 찾아보느라 머리가 한짐이었던 그 무거운 마음이 없어서 좋았다. 그리고 여행이 설레지기 시작했다. 숙제가 아닌 진정한 설렘.
결과는 대만족.
공항에서 이리저리 해마다가 모바일숍에서 상담까지 한 결과 아일랜드 유심칩으로 사용할 수 없다고 하여 35유로를 주고 1GB짜리 유심칩을 구입하여 구글맵을 통해 길 찾기를 하고 있고, 딴 미술관을 몰라도 반 고흐 작품 하나 정도는 봐야겠다 그때그때 마음 먹어서 미술관도 다녀왔고, 또 걷다 걷다 다리가 부러질 것 같아 들어간 곳에서 늦은, 그렇지만 기똥찬 breakfast menu를 후다닥 먹었고, 갑자기 우박이 떨어져 피한 곳이 암스테르담 박물관 이었는데,(난 무슨 레스토랑인줄 암) 마침 갖고 있었던 아일랜드 학생증으로 20퍼센트 할인이 된다 하여 9유로를 내고 들어간 박물관을 참 재미있게 2시간 이상 구경도 했다.
뭔가 아무 사전 준비 없이 그때그때 삘 나는 대로 돌아다니니 몸은 지치고 힘들어도 배부르고 눈이 호강하고 기분 좋은 피곤함이 있다.
돈이 좀 더 있으면 참 이것저것 사고 싶은 것도 많았다.
남들 같으면 레스토랑 안 가고 빵 때기 먹으면서 아기자기한 거 좀 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나 같은 경우는 그래도 하루에 한두 끼 식당에서 먹는 여행을 하자 주의여서 그냥 쇼핑 포기하고 잘 먹으면서 다니고 있다.
아일랜드와 달리 어쩜 이렇게 옷들도 하나같이 예쁜지 ㅎㅎㅎ 내가 진짜 그동안 유럽의 촌구석에 사느라 스스로 얼마나 거렁뱅이 같이 입고 다니는 줄 자각을 못했네!
그래도 정말 필요한 거 아님 사지 말자, 치즈나 사자 그건 아일랜드에서 먹고 떠나면 되니까! 이러면서 쇼핑의 욕구를 누르고 있다.
아 조그마한 테이블보도 하나 샀다. 박물관 기념품가게에서 거금주고 멋진 디자인의 테이블보 구입. 이것만 하나 있으면 길거리에서 딱딱한 빵을 먹어도 뭔가 분위기가 근사해지는 걸 보고 한국 가서도 봄 되면 꼭 테이블보를 이용하여 잔디밭에서 김밥과 컵라면을 먹으리라 다짐하면서...
여행은 이렇게 하는 거다.
많은 계획하지 않고, 나를 좀 내려놓고, 남이 했던 거, 남이 추천하는 거 귀담아 듣지 말고, 내가 진짜 누구일까, 내가 이럴 때 어떤 행동을 할까 나를 낯설게 바라보게 되도록 여행하기.
여행을 할 때마다 나는 느낀다.
나는 뚜벅뚜벅 걷는 여행을 할 때 가장 편안함을 느끼고, 사진 찍는 것 보다 가게 들어가서 사지도 않을 물건 이리저리 만져보는걸 좋아하며 하루에 한 끼 정도는 진수성찬으로 잘 먹어야, 그리고 생전 맛 본적 없는 특이한걸 먹는걸 좋아라 한다는 것.
누군가 암스테르담을 여행 가는 사람이 있다면 여행책자 사지 말고, 블로그 보면서 어디서 무얼 먹어야 잘 먹었다는 자랑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숙제 같은 여행 집어 치우고, 그냥 그날 그날 꼴리는 대로 여행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래야 내 여행이 되는 거다.
남녀행 따라 하지 말자.
미술관, 박물관 안 가고 실컷 운하에 죽치고 앉아서 사람들만 구경하는 여행을 할 수도 있고, 식도락 여행을 할 수도 있고, 걷기 여행만을 할 수도 있다. 정답은 없고 이렇게 안 하면 후회한다 이런 여행이란 있을 수 없다.
멋대로 할지어다. : )
<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입구 앞에서 이렇게 클래식 연주하고 수익을 거둬들이고 있는 므흣한 연주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