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상반기 넷플렉스에서 2편씩 업로드 되던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를 정말 재밌게 봤었다. 내가 2년이나 살았던 곳인 제주가 배경인 것도 눈물나게 반가웠고, 따라서 드라마 속의 제주도 사투리를 두고 배우들의 사투리 소화능력을 평가도 쏠쏠했다.
20부작의 드라마가 옴니버스 형식으로 쓰여서 매회 중심이 되는 인물이 다르다는 것도 흥미를 끌었다. 드라마 후반부로 가면서는 실제로 마주하기 힘든 다운증후군 환자를 (왜 보기 힘든지는 일반인들과 함께 못 섞이고 시설에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드라마에서 오래 마주할 수 있는 것도 가슴을 뜨겁게 했다.
드라마 속 등장인물 모두에게 저마다의 사연이 있었고 그 누구 하나 이해 되지 않는 캐릭터가 없었다. 다 노희경 작가의 필력 덕분이었다. 딱 우리네 인생살이의 모습이었으니까. 우리에게는 나도 모르는 다양한 모습들이 내재되어 있어서 아주 착한 딸이 회사에서는 매정하고 일밖에 모르는 유능한 직원이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좋은 사람이지만 또 다른 사람에게는 상종도 하기 싫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를 이렇게 3인칭 작가 시점에서 들여다 보면 이렇게 저렇게 다 이해가 간다. 대단한 스토리텔링이다.
은희와 미란 (이정은과 엄정화)의 갈등이 본격적으로 다뤄지는 13화와 14화를 보면서 갑자기 M이 떠올랐다.
- 와...우리는 이렇게 싸운적도 없었구나.
침대에 걸터 앉아서 아이패드를 끼고 드라마를 한창 보다가 나도 모르게 소리내어 중얼거리고 내 육성에 스스로 깜짝 놀랐다. 은희와 미란이 서로를 향해 묵혀 두었던 추잡한 마음과 오해들을 쏟아내는 장면에서였다. 나쁜년, 의리없는 년, 등등 서로를 향해 거침없이 비난을 하고, 다시는 안볼 것 처럼 하다가 으르렁 거리다가 은희가 미란이 일하는 마사지샵에 찾아오고 울고 웃고 오해를 풀면서 그야말로 난리 블루스를 떤다.
나는 몸소리를 쳤다. 가슴에서 뜨거운 열이 올라와서 목구멍까지 따가워졌다. 나와 M은 지난 22년동안 서로 상대를 향한 제대로된 부정적인 감정표현 조차 하지 않았다.
항상 M에게는 감정적으로 끝까지 몰아부칠 수 없는 투명한 막이 있는 것도 같았다. 이건 뭐 고등학교때 부터 느껴온 감정이었다. 자신을 다 보이지 않는 아이. 좀더 캐물으면 안될 것 같은 아이.
이제와서 차갑게 식은 우정을 바라보자면 M과 나의 22년 우정은 신기루 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카톡으로는 우리 한번 봐야지, 라고 말하고 늘 좋은 말을 주고 받으면서 나는 너밖에 친구가 없다, 나도 마찬가지다 이런말을 주고 받았지만 1년에 3차례 이상 제대로 만난 적도 없고 만나서 밥 먹고 차를 마시곤 했던 서너시간의 달콤한 시간 외에 우리가 공유한 게 뭐가 있었나 싶다. 늘 밥과 차, 조금의 산책이 전부였다.
우리는 해외는 고사하고 국내여행을 1박의 일정을 잡고 떠난 적도 없었고, 밤새워 술을 마신적도 없었다. 그리고 맨날 톡으로는 함께 가야하는데, 한번 가야하는데...늘 말 뿐이었다. 아마 서로가 알았을 것이다. 톡으로만 사이좋은 사이라는 거.
가끔 생각한다. 내가 그때그때 느꼈던... 이건 아닌데...라고 여겼던 불편함, 왜 너는 항상 너의 전부를 보여주지 않니, 왜 너는 항상 뒤늦게 나에게 상황을 통보하는 식이니..라고 좀 더 일찍이 따져물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일찌감치 친구가 아니었거나 아니면 벽이 허물어졌거나 둘 중 하나 였을 것이다. 그 어느쪽이었든 유일하다고 생각했던 친구를 나이 마흔에 잃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렇게 '우리들의 블루스'의 은희과 미란을 보면서 한참동안 M을 떠올렸다. 미련하게 미란을 버텨낸 은희도, 은희를 만만하게만 생각했떤 미란도 아마 내가 갖고 있는 수많은 우정의 형태 중에 하나였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