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회사 VS 아일랜드 회사
삼성? LG? 안 다녀봐서 모르겠다.
다만 다니는 사람들 말에 따르면 hell이라고 했다. 바로 며칠 전 경향신문에서 특집으로 다룬 헬조선에 대한 기사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읽었다.
'헬조선' 목소리 가운데 두드러지는 것은 역시 취업과 청년문제다. '청년을 노예처럼 부려 먹는 조직문화'가 지옥의 핵심이다. 정수현 씨도 인터뷰 중에 노동이야기를 가장 많이 했다. "비유하자면 삼성은 10명 일할 상황에 12명을 뽑아서 사람을 죽도록 괴롭힌 뒤 12명을 자르는 시스템이고, 현대는 10명 일할 상황에 8명을 뽑아서 죽도록 일하는 시스템이에요. 이게 한국에서 제일 좋은 직장이라죠"
내가 다녔던 외국계 기업은 어떻냐고 묻는다면 한국이 hell 인 이상 그 아무리 조직문화가 다르다고 하더라도 천국이 될 수 없었다. 오히려 시차가 다른 본사와 일을 하느라 밤 늦게 미팅 대기 타는 경우가 많았고, 내가 느끼기에는 국내 기업의 안 좋은 점과 외국계 기업의 안 좋은 점을 다 갖고 있는 것 같았다.
외국계 기업 역시 국내 기업처럼 위계서열이 분명히 있었다, 수평적인 관계를 표방할 뿐, 외국인 기업이 아닌 외국계 기업에 일하는 한국인은 철저하게 한국인의 법칙을 따랐다. 그러면서 노조는 강하지 않아서 야근을 일삼았지만 대기업처럼 야근수당은 따로 없었다.
나는 주로 2호선을 타고 8시 반까지 출근해서 7시 반, 8시 정도까지 일하고 퇴근했다. 근무시간으로만 보면 죽을 만큼 일한 건 아니었지만 딱 죽지 않을 만큼 일했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9시가 조금 넘었다. 이미 방전된 체력에 하루하루 일 외에 더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렇게 나는 죽어갔다. 부서 특성상, 그리고 알게 모르게 어드민 업무가 많았던 내 포지션상 나는 지난 7년 동안 두어 번의 이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곳에서 3일 이상의 휴가를 낸 적이 없었다.
금요일부터 월요일까지 휴가를 내고 일본으로, 필리핀으로 짧게 여름/겨울 휴가를 다녀오는 비행기에서 밀린 업무에 대한 걱정으로 속을 끓였다.
그렇게 짧은 휴가 전후로 휴가를 위한 야근을 해야 했기 때문에 '아 차라리 휴가 안 가는 게 낫겠다' 하는 절망적인 마음마저 들었다. 그렇게 수십 번도 수백번도 이 길은 내 길이 아닌 거 같다, 그만 둬야지, 때려 쳐야지 수십 번 다짐했지만 그러면서도 뉴스에서 청년실업에 대해서 떠들기라도 하면 그래도 정규직인 거에 감사하며 다녀야 한다고 생각했다.

막상 그만두고, 백수가 되자마자 이렇게 남의 나라에 와서 돈을 써대기만 할 때의 불안감이 분명히 있었다. 이래도 되는 걸까 하는 불안감과, 돈이 다 바닥나면 나는 어떡하지 하는 끝도 없는 조바심이 나를 괴롭혔으나 역시 모든 상황과 환경은 적응하기 마련이었다. 조금 덜 쓰고, 조금 더 편하게 마음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살아 볼 만했다.
어느 나라나 국민들은 자기 정부를 욕하고 채찍질하는 편이고, 아일랜드 역시 유토피아는 아니라서, 높은 세금(집과 차를 소유하고 있고 연봉이 일정 유로 이상이었던 Paul 아저씨의 경우 수입의 52%를 세금으로 뱉어내야 했다)과 물가, 의료보험 제도 개혁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지만 5시면 퇴근해서 6시에 아내와 함께 저녁을 만들고 6시 반에 온가족이 둘러앉아 저녁 식사를 함께할 수 있다는 출퇴근 문화에 그만 입이 떡하고 벌어졌다.
일 년에 3주 이상 휴가가 가능했고 그중에 2주일은 연달에 쓸 수 있었기 때문에 매년 온가족이 2주 정도 남프랑스에서 머문다고 했다.
나는, 아무리 하기 싫은 일을 하더라도(우리 대다수가 하기 싫은 일을 묵묵히 참아내며, 혹은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모른 채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야근 없이 일하고 일한만큼 휴식을 취할 수 있다면 내가 과연 한국에서 '숨 막혀 죽을 것 같다' '이건 아냐' 이러면서 직장을 그만 두었을까 싶다.
아 무엇보다 가장 부러웠던 건...
직장상사와 사적으로 연락하는 회사 문화가 아예 없다는 것.
우리는? 카톡은 물론이고, 페이스북으로 친구 신청을 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 (나만... 그런 거야????)

나는 페이스북을 하지 않는다. 내가 어떻게 사는지 일일이 사생활을 공개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굳이 알고 싶지 지 않은 현재 및 과거 인맥의 근황을 살피고 싶은 마음도 없다.
시절 인연이라는 게 있다.
만나서 행복했고, 어쩌다 보니 멀어졌고, 좋은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으나 굳이 찾고 싶지 않은 관계.
굳이 페이스북을 통해 다시 연락하고, 나는 이렇게 지낸다. 나는 여기저기를 가고(사진 찍어 자랑), 이런저런 음식을 먹고(음식셀카 대방출) 누구를 만나고 어느 직장에 다니는지 떠들어 댈 필요가 있을까?
아무튼 이렇게 페이스북을 공적인 인간관계에 끌어들이지 않는, 그들의 private life should be kept in private 컬처가 너무 좋았다.
비록 이제 막 합류하게 된 회사가 일반적인 회사와는 좀 더 다른, (Irish Startup 회사라 다를 수밖에 없는) 성격을 띠고 있지만 내가 어디서 이렇게 창업회사에서 한국 마케팅 매니저로 일해 보겠어 싶어서 불끈 힘을 낼 수밖에 없었다.
긍정의 힘이여!! 나에게로 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