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하지만 다시 "수저론"

겨울 한파, 쪽방촌, 그리고 계급론에 대하여

by Honkoni

우리 집은 왜 항상 이렇게 별일 아닌 일로 의견 충돌이 일어나는지 모르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발단은 아주 사소했다.

몇 년 만에 찾아오는 강력한 한파! 체감온도 영하 30도 뉴스를 어제부터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리고 취재기자가 찾아간 곳은 서울의 쪽방촌. 빛도 들어오지 않는 서울의 쪽방촌에 내 또래쯤 되는 삼십 대 중반의 여자가 애를 안고서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너무 추워서 애기가 감기가 떨어지지 않아요.."

방송을 보는데 갑자기 원인을 알 수 없는 분노가 차올랐다. 왜 저기서 애를 놓은 거지? 왜? 왜 본인 앞가림도 못하는데 애를 덜컥 낳아 놔서 기저귀 값이 비싸서 똥기저귀 하나 제대로 갈지도 못하면서 저러는 거냐고! 이렇게 남의 인생에 간섭할 주제, 막말할 주제 안되는 거 알지만 화가 났다. 너무 무책임했다. 그래서 내가 한마디 툭 내던진 게 화근이었다. '쪽방촌에서 애를 왜 낳아. 부모 자격도 없으면서'라는 말에 엄마 아빠 두 분 입을 모아

"쪽방촌에 산다고 저렇게 쭉~ 산다는 법 없다. 자식이 희망이라는 말도 있고... 희망을 갖고 살아야지 젊은애가 계급론, 수저론 이러면서 희망을 져버리는 거 안되는 거야. 그것도 극히 일부라고"


그 이후에 시작된 갑론을박 두 시간. 그리고 역시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각자 생각하는 대로 살기로 하고 결론 없는 논쟁을 마무리 지었다.

다 맞는 말. 인생은 살아봐야 아는 거고 희망을 갖는 게 절망을 갖는 것 보다 당연히 옳고 바른길이라는 거 모르는 거 아니다. 다만, 부모의 경제적 지위, 사회적 능력 등에 혜택을 입은 자녀들이 상대적으로 덜 그런 자녀보다 좀 더 행복하고 평탄한 삶을 사는 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라는 걸 왜 외면하고 기성세대들이 '아프니까 청춘이다' '젊어서 생은 사서도 한다' 이런 씨알도 안 먹힐 말을 훈계하느냔 말이다.

절대빈곤 세대를 안 살아 봐서 절대적 배고픔이 뭔지 모르듯, 상대적 빈곤 세대로 자라서 상대적 박탈감의 고통을 모르는 그리고 많이 부자는 아니어도 공무원 연금으로, 그럭저럭 먹고살만한(우리 부모님) 50,60 세대들이 왜 청년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함께 나누지 못하냔 말이다.

인간은 자기 하기 나름이라고? 극복할 수 있다고? 물론 몇 명 그럴 수 있겠지. 만 명 중에 한 명 극복한 사람 있을 수도 있겠지. 쪽방촌에 살다가 다세대 주택 월세로 이사할 수도 있겠지. 근데 만 명 중의 한 명인 경우를 빗대어서 "그 봐라, 다 지 하기 나름이다. 따라서 열심히 하면 하면 된다. 노오오오오력 하란 말이다" 이 말은 마리 앙뜨와네뜨가 민중들에게 빵이 없으면 케익을 먹으라는 헛소리랑 뭐가 다르냔 말이다.


인사 담당자로 일했을 때 대학생들, 그리고 막 사회로 진출한 신입들을 보면서 가장 참담했던 순간은 부모의 지위와 돈에 따라 입사 자체의 연봉이, 향후 진로가, 그리고 삶의 수준이 판이하게 달라질 거라는 직감을 하게 될 때였다.


사례 1 )

서울에서 비슷한 소재의 학부, 비슷한 과를 졸업한 A, B 가 있다.

A는 아버지가 생산직 공장에 다니시고, 자기 앞으로 값아야 할 학자금 5000만 원이 있으며 아르바이트하면서 학교를 졸업하느라 학점도 좋지 못해 정규직 입사가 불가능했고, 남보다 적은 계약직 연봉에 고용 불안에 늘 시달리면서 집안의 가장이 되어 살고 있다.

B는 아버지가 대기업 임원, 어머니도 약사. 학부를 졸업하고 바로 취업이 되지 않아 1년짜리 영국 석사를 다녀왔고 석사와 외국어 능력을 인정받아 대기업 해외사업부 정규직에 뽑혔다. 연봉도 높고 본인도 만족한다. 국내 유수의 대학에 MBA 과정을 밟고 있다. 월급은 온전히 나를 위해서만 쓰라며 부모님이 학비는 대주신다. 다음 주에는 새 차도 뽑을 예정.


위의 사례는 극히 드문 극단적인 경우가 아닐뿐더러 내가 내 눈으로 본 많은 케이스를 좀 더 일반화한 것이다.

여기에 출신이 서울이 아니고 지방에서 본인의 힘으로 서울에서 자리를 잡아야 상황이라면 격차는 더더욱 벌어질 것이다. A가 B만큼 따라잡고 잘 살수 있는 확률이 과연 얼마나 높을까? 있기는 할까?



나라가 크게 쫄딱 망해서 계층이 아래 위로 다 뒤집어 지든가 전쟁이나지 않는 한, 이 계층 고착화는 더 심해질게 뻔한데 아무런 대책없이 희망을 갖고 살라고? 인생은 모르는거고 살아봐야 아는거라고?

마주하기 싫은 엿같은 현실이라고 현실 외면에 거짓희망이 아니라 똑바로 바라봐야 해결책이 나오는 거다.

그런 의미에서 어차피 설득되지 않는 부모님에게 끝까지 반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부모말을 듣지 않겠습니다 부모님 말씀중에 들을만만 듣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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