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0년이 다 되어가서 이제는 편히 말할 수 있는 이야기
요새 [그것이 알고 싶다] 같은 각종 사건사고를 다루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자주 접하는 소식이 바로 데이트 폭행이다.
방송을 보는 사람이 데이트 폭행 가해자 쪽만 아니라면 비슷하게 울분할 것이다.
- 아 저 미친놈
- 아 저런 새끼는 잡아 넣어야지
- 아 저 여자도 미쳤나. 미리미리 신고를 했어야지 왜 질질 끌려다녔냐
- 그러게 동영상 이런걸 왜 찍어
암턴 제 3자 입장에서 볼때는 피해자든 피의자든 둘 다 정상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어제 [그.알]방송을 보면서 비슷하게 내 일이 생각났다. 아마 10년 전 그놈도 어린시절 7-8년간을 일본에서 살았던 적이 있어서 더욱 그랬을 것이다.
나의 X는 내가 그간 만나왔던 모든 남친들을 통털어 잘한걸로 치면 최고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 치명적인 단점이 그의 폭력성 이었다. 그리고 나는 운이좋게 그 폭력성의 아주 초-발단 단계에서 그를 끝내버렸다.
그와 사귄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그와 나는 길거리에서 말다툼을 했다. 무엇 때문에 싸웠던건지 내용은 생각이 안나는데, 암턴 투닥투닥 "미안해" "미안하면 다야" "아 미안하댔잖아" "넌 맨날 그모양이야" 뭐 이런말을 주고 받았던 것 같다. 기분이 나쁜 쪽은 나였고, 그가 계속 미안하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_
"아 씨발!!!! 미안하댔잖아!!!"
이러면서 내 뒤통수에 있는 벽을 지 주먹으로 확 내려치는 거다.
갑작스러운 그의 욕에도 놀랐고, 벽을 내려치는 그의 행동에도, 뭣보다 벽돌에 손을 잘못 맞았는지 그의 손등에서 피가 나고 있어서 놀랐다. 지금 생각해도 가슴 떨리는 그 장면... 나는 너무 놀라서
"어머, 너 왜 그래. 왜 그러는거야. 미안해."
라고 말하며 그를 진정시키려 했다. 근데 갑자기 얘가 내가 쩔쩔매고 사과하는 모습을 보더니 더 크게 욕을 하고 심지어 길가에 있는 쓰레기통을 발로 차는 난동을 부리는 거다.
행인들이 흘끔흘끔 쳐다보고, 나이 지긋한 어르신은 심지어 팔짱까지 끼고 우리를 쳐다보고 있다.
그때 내가 무슨 생각을 했던가.
얘 미쳤구나.. 이런 생각 그리고 얘가 지금 이런걸 즐기고 있구나.. 이런 끔찍한 생각.
보통 사람 같으면 싸우다가도 남들이 쳐다보면 일단 멈춰야 하는데 걔는 분명 사람들이 쳐다보자 더 날뛰고 있었다.
그때였다. 그만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것은. 나는 그를 끔찍이도 좋아했지만 그만둬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 상황에서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와서 휴대폰을 꺼버렸는데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우리 아파트 까지 좇아왔는지 아파트의 고층인 내 집에서도 다 들릴만큼 내 이름을 고래고래 부르며 [야~~XXX. 너 나와. 당장 안나와. 씨발] 이러고 설치고 다녔다.
그때 방에서 무서워서 벌벌 떨면서 내가 했던 일은 얼떨결에 저장해둔 그 아이의 엄마에게 전화하는것. 내 이름을 말하고 상황을 설명하고 데려가 달라고 말했던 것 같다.
거기서 그 아이와 나의 관계는 끝났다. 후에 그가 몇번 찾아와서 손이 발이 되게 빌었다. 아마 데이트 폭행범의 특징이라지? 때리고 사과하는 패턴의 반복? 하도 진실해 보이는 그의 사과에 혹- 넘어갈뻔 했지만 그래도 꾸욱 넘겼다. 좋을때 나를 [애기야]라고 부르던 그가 [씨발년]으로 돌변했을때의 눈빛이 잊혀지지 않을만큼 너무 생생했기에 이미 모든 정이 떨어진 상태였다.
내가 한 결정중에 가장 잘한게 초장에 끊어버린 10년전 내 행동이다. 아마 계속 사귀었으면 벽돌을 치는 손으로 내 얼굴을 때리고 내 몸을 때리고 또 사과하고 반복하는 패턴이 왔을까?
연애에 정답이 없다지만
싸울때와 좋을때 성격이나 행동이 180도로 달라지는 남녀를 만나는걸 주의해야 한다. 같은 의미로 중/고딩 사귀는 것도 아니고 스무살 넘어서 싸울때마다 욕을 하는 습관이 있다면 그것도 멈춰야 할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