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동수 Dec 03. 2022

대학 총장을 쫓아다니는 이유

면담하다

민주노총 소속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이 총장실 앞에서 농성을 하자, 이 학교 총장은 총장실을 버리고 도서관장실에서 한동안 집무를 봤다고 한다. 최근에는 도서관장실을 떠나, 이사장실을 총장실처럼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사장실은 총장실과 같은 층에 있으며, 그 거리가 20m 정도 된다고 한다.


사실, 다른 대학 총장들에게서도 이런 모습은 비일비재하게 나타난다. 청소노동자들이 근로조건 개선과 관련해 대학 총장을 만나러 가면, 그들은 웬만하면 피하기 일쑤다. 덕성여대 총장처럼 총장실을 비우기도 하고, 청소노동자들의 총장실 접근을 아예 막아버리기도 한다.


청소노동자들이 총장을 찾으러 다니는 건 경험칙상 총장이 청소노동자의 근로조건을 개선할 수 있는 최종 결정권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총장도 이러한 이유로 청소노동자들을 피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총장과 청소노동자들의 쫓고 쫓기는 이러한 추격전에 대해, 예전에 한 노동자는 '술래잡기'를 본떠 '총장잡기'라 불렀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동조합법)'에 따르면, 정당한 이유 없이 '교섭'을 거부하거나 해태해선 안 된다. 하지만 총장은 청소노동자들을 피해 도망 다녀도 처벌받지 않는다. 청소용역업체 측과의 만남은 '교섭'이라고 부르지만, 학교(원청) 측과의 만남은 '면담'으로 이름 지어지는 것이 실마리가 될 터다.


우리나라는 근로계약을 직접 체결한 대상에게만 사용자성을 인정한다. 노동자는 사용자와만 교섭할 수 있다. 그런데 많은 대학들은 청소업무를 도급화한다. 결국 청소노동자들이 학교 실무진과 만나는 일은 외관상 면담이 될 수밖에 없다. 면담이란 단어 자체가 '노동자의 사용자가 아님'을 상징한다.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의 농성과 파업을 비난하는 대자보와 메모 들 중에는 "하청 소속 청소근로자 요구사항은 용역업체에게"라고 쓴 글이 있다. 노동법과 민법의 관점에서 현재의 원·하청 관계를 제대로 짚은 문구이지만, 사실 이 문제는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 대학 청소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은 하청업체 측과의 '교섭'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대학 측과의 '면담'을 통해 결정되어 왔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학교 측과의 면담 과정에서 근로조건 개선에 대한 확약을 받으면, 그제야 교섭권을 가진 회사 측이 이를 토대로 노조와 함께 임금·단체협약에 도장을 찍는 식이었다.


덕성여대의 사례를 다시 한 번 보자. 그동안 덕성여대 측은 면담을 통해 시급 인상의 대가로 하루 근로시간을 1시간 줄여야 한다거나, 2026년까지 12명의 인력감축을 해야 한다는 제안을 했다. 근로시간과 구조조정이란 용어만 보더라도 대학(원청)이 청소노동자(용역노동자)의 근로조건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방증한다. 원청과의 면담이 사실상의 교섭이나 다름없음을 보여준다.


현행법상, 총장(원청)이 청소노동자들(용역노동자)의 대화 요구를 거부해도 불법이 아니지만, 총장과 대화를 시도하기 위한 청소노동자들의 행위(파업, 농성 등)는 쉽게 불법으로 규정된다. 최근에 덕성여대 측이 교내를 점거 중인 청소노동자들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이는 청소노동자들의 점거농성을 불법('형법'상 업무방해)으로 간주한 것이다.


"법과 원칙으로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입니다. '노동자는 약자'라는 프레임에 기대어, 대학 캠퍼스를 투쟁 구호판으로 만들고 억지 주장을 일삼는 불법행위가 더 이상 용납되어서는 안 됩니다. 지속적인 상황이 발생할 경우, 대학에서는 궁여지책으로 법과 원칙에 따른 추가적인 방법을 모색할 예정입니다."


지난 10월 19일, 덕성여대 측이 발표한 담화문 내용이다. 덕성여대 측의 주장은 윤석열 대통령의 '법과 원칙'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대통령이 내세우는 '법과 원칙'의 적용 기준은 사용자냐, 노동자냐에 따라 판이하게 갈린다.


현재 정부는 주 52시간제를 유연화하려 한다. 여기에 더해, 올해로 끝나는 30인 미만 사업장의 주 8시간 추가연장근로제의 유효기간을 2년 더 연장할 방침까지 세웠다. 그리고 지난 11월 28일 정부와 여당은 중대재해를 줄인다면서 "현재 규제와 처벌 중심으로 돼 있는 노동 정책을 자기규율 예방체계로 바꾸겠다"(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고 했다. 이는 주로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규제들이다. 그럼에도 이 규제의 기준을 완화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기업이 노동착취를 해도 불법이 되지 않는 법과 원칙의 기준을 '알아서' 만들어주려 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헌법'에 명시된 노동자의 노동3권을 제대로 보장하기 위한 법인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제2·3조 개정안)' 제정에는 반대의 입장을 명확히 하고 있다. 노동자들이 합법적으로 파업을 하려면 그 요건이 너무 까다롭기 때문에 대부분은 불법화되기 쉽다. 특히 원청 사업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자신의 일터에서 쟁의권을 행사하는 경우가 그렇다. 도급비를 통해서 하청노동자의 근로조건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하는 원청과 '교섭 같은 면담'을 하려면 결국 불법을 감수해야 한다. 이 과정을 계속 불법화한다면, 용역노동자가 자신의 근로조건을 합법적으로 개선할 방법은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그 요건을 완화하자는 법이 바로 '노란봉투법'인데, 도리어 정부와 여당은 자본주의를 유린하는 법이라 매도한다.


이러한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지금 이 순간에 벌이지고 있다. 정부는 화물운송 노동자들(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의 '파업'을 '집단운송거부'라 부르고 있다. 그들을 '개인사업자'로 분류한 것이다. 정부가 그동안 화물운송 종사자를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은 것의 연장이다. 그런데 정부는 '개인사업자'가 자유롭게 운송을 거부하는 일에 대해 불법이라 말한다. 법적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은 '노동자'의 파업으로 본 것이다. 정부는 이를 명분으로 '강제노동'이나 다름없는 업무개시 명령을 '집단운송거부' 중인 화물운송 노동자들에게 발동했다.


한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의 법적 지위를 상황에 따라 자의적으로 해석할 때 그 이익은 누구에게 향할까? 이 물음의 답은 윤석열 정부의 정체성이 누구를 기반으로 하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며칠 전,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은 총장과 면담을 하기 위해 총장이 일하고 있다는 이사장실을 찾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사장실에 총장은 없었다. 총장은 또 어디로 도망간 것일까? 오늘도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은 그녀의 행방을 수소문한다. 어떻게든 총장과 면담을 해야, 용역업체와 교섭을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상황 때문이다. 총장이 청소인력에 대한 구조조정 없이 시급 400원을 인상해주겠다는 확약을 해줘야,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은 청소용역업체와 1년 넘게 합의하지 못한 임금협약에 도장을 찍을 수 있다. 대학 청소노동자들이 왜 그렇게 '스토커'처럼 총장을 쫓아다니냐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총장잡기'를 멈추지 못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그토록 강조하는 '노사 법치주의'의 이면인 셈이다.





* 2022년 12월 1일, 『오마이뉴스』에 실렸던 「'교섭 같은 면담'을 요구하다 처벌받는 노동자들」을 일부 수정한 글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8년의 시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