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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수 Mar 05. 2022

편견의 탄생

청소하다

학창시절, 학교에서 해야 하는 청소는 무조건 학생들의 몫이었다. 청소를 왜 해야 하는지 묻는 건 금기였다. 선생님의 명령은 금과옥조처럼 따라야 했다. 그때는 '너희가 사용하는 공간은 너희들이 해야 한다'는 사고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마음속에서 샘솟는 의문은 있었다. 선생님이 쓰는 곳까지 왜 우리가 청소해야 할까?

    

청소 인원과 장소를 결정하는 권한은 언제나 선생님에게 있었다. 그런 점에서 자발적인 청소는 없었던 것 같다. 청소당번은 주로 순번대로 나누었다. 모든 이가 골고루 청소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지만 예외의 경우도 있었다.


그도 그랬다. 그는 반이 배정되고 만난 첫날, 자신이 '우열주의자'임을 스스럼없이 밝히며 한 가지 조건만을 내세웠다. "시험만 잘 보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그것은 허풍이 아니었다. 시험결과가 나오는 날이면 증명됐다. 그는 한 손에 몽둥이를 들고 사뭇 근엄한 표정으로 교실에 나타났다. 그의 반대편 손에 들린 성적표 뭉치는 결전의 순간이 다가왔다는 표식이나 다름없었다.


그날만큼은 무조건 번호순이 아니라 성적순으로 이름이 불렸다. 그에게 점수는 첫 만남 때의 다짐처럼 서열이었고, 그것에 따른 보상과 처벌도 확실했다. 상위권에 위치한 아이들에게는 애정 어린 칭찬과 함께 '청소면제권'이 주어졌다. 반면에 하위권을 맴도는 학생들은 몽둥이로 흠씬 두들겨 맞고, 다음 시험 결과가 나올 때까지 교실과 교무실 청소를 해야 했다. 체벌과 청소는 '학생다움'을 지키기 위해 당연히 이루어져야 하는 징벌의 수단이었다. 그래서 공부를 잘하면 1년 내내 청소를 하지 않을 수 있었다.


청소뿐만 아니라 학교 내의 미화작업에도 공부 못하는 학생들이 투입됐다. 공부 잘하는 친구들의 일까지 그들이 대신해야 했다. 상위권 친구들은 그 시간에 공부를 더 해야 했으므로. 그 빈자리를 공부 못하는 친구들이 채우는 것은 불문율이었고, 혹여 불만이 있어도 선생님에게 함부로 반항할 수 없었다. 그들은 경비노동자처럼 계절에 따라 꽃을 심고, 잡초를 뽑았고, 낙엽을 쓸고, 눈을 밀었다. 이 순환의 과정은 공부를 잘하면 몸 쓰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일종의 은유처럼 비쳤다. 이러한 벌칙을 받지 않으려면 공부하라는 선생님의 일갈은 자연스럽게 육체노동에 대한 편견을 낳을 수밖에 없었다. 한쪽에서 우리와 같이 일하던, 힘없고 볼품없어 보이는 중장년의 시설관리 노동자가 그곳에서 비정규직으로 최저임금을 받으며 일하는 건 다 학창시절에 공부를 못해서라고 알게 모르게 받아들여졌다. 선생님이 일일이 말해주지 않아도 우리는 맥락상 그렇게 이해했다.


청소를 오락의 수단으로 바라보는 선생님도 있었다. 그가 공평하게 이루어지던 청소 순번에 균열을 일으킬 때 우리는 단숨에 환호했다. 한 분단에 몰아주는 '청소권'을 걸고 이루어지는 대결은 언제나 치열하고 격정적이었다.


가위바위보. 청소할 분단은 세 가지 무기를 내는 것으로 결정됐다. 그때 나도 임전무퇴의 정신과 결사항쟁의 마음가짐으로 대결에 임했던 것 같다. 지면, 분단끼리 나눠서 하던 일까지 모두 맡아서 해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긴 자는 승리의 환호성을 지르며 포효했고, 진 자는 고개를 바닥에 떨군 채 한동안 같은 분단친구들의 야유를 받아야 했다. 청소는 그렇게 오락의 재미를 가미하기 위한 소재로 활용되었고, 대결의 패자는 당연히 청소를 해야 한다는 명제를 각인시켜주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선생님이 학생에게 교직원 이용 공간을 청소하라고 지시하는 것에 대해 인권침해라고 보았다. 한 중학생의 진정에 대한 답이었다. 결과가 나오기 전, 학교 쪽은 인성 함양, 공동체문화 형성 등을 위해 학생들이 교직원 사용 공간을 청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소란 행위, 그러니까 벌칙처럼 이용되어 왔던 몸 쓰는 일이 그동안 학교에서는 그런 위대한 가치들을 담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점에 아이러니함만 남는다. 학교의 주장과 달리 학생들에게 청소나 미화작업은 귀찮고, 짜증나고, 더럽고, 그래서 남에게 떠넘기고 싶은 일로 규정된다. 그것이 누군가에겐 노동이 된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한 채 말이다. 솔직히 나는 고등학교 때까지 노동이란 단어조차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었다. 청소노동자의 얼굴도 대학에 와서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육체노동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우리는 학교에서 당연하다는 듯 배우고 있었던 것이다.


왜인지 모르지만, 일반적인 통념 속에서 삶의 패자들이 가는 일터도 육체노동을 해야 하는 곳이다. 이를테면 노가다, 택배, 배달 등. 꼭 그렇지 않음에도 그곳에는 삶의 패자들만 있다고 쉽게 편견 지어진다. 그들이 그곳에서 일하는 건 대체적으로 학창시절에 노력을 하지 않은 대가로 평가된다. 그 노력의 흔적은 국·영·수 성적으로 가른다. 그것의 결과는 우리가 익히 잘 알 듯 적은 수수료와 최저임금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노동법조차 적용받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그래서 그곳을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친다. 어느 누군가가 과거의 이런 경험을 자랑스럽게 토크 주제로 이야기하는 건 그들의 현재가 성공했음을 스스럼없이 반증한다. 노동자가 되기 위해 기술을 배우는 공업고등학교를 공부 못하는 학생들이 가는 곳으로 계급화하는 건 전혀 우연이 아닌 셈이다.


지난 4월, 서울시교육청이 발표한 제2기 학생인권종합계획에는 노동인권교육을 강화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학생이 왜 쓸데없이 노동인권을 배우느냐는 학부모들의 반발도 만만찮다. 그 시간에 국·영·수 한 문제라도 더 푸는 것이 아직까지는 진정한 교육인 시대이고, 그 결과가 직업의 우열을 가른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로부터 육체를 주로 쓰는 일이 실은 너희의 직업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하면 대부분은 학생의 장래에 대해 저주하는 것이라 받아들인다. 그것은 성적이 하위권인 학생에게 "지금 공부 안 하면 나중에 후회할 테니 공부하라"는 협박용으로 쓰일 때만 유효하다. 그래서인지 장래희망에 육체를 쓰는 일을 직업으로 적는 청소년들은 거의 볼 수 없다. 육체노동자가 된다는 자체가 벌칙이나 징벌이 된 상황에서 직업으로 삼고 싶은 마음은 절대 들지 않을 터다.


현실에서 저주스러운 악담이라 치부되는 직업들이 더는 저주라고 느껴지지 않도록 일깨워주는 것이 교육의 지향점이다. 하지만 그러한 일이 우리 가장 가까이에 머물고 있다는 현실마저도 잘 가르치지 않고 오히려 외면한다. 그래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공부할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지금의 교육은 좋은 학벌이 좋은 직업을 얻을 수 있다는 당위성만 독려하고, 청소 같은 육체적 부담이 큰 노동은 처벌과 재미의 요소로 활용된다. 그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또 한편으로 자기는 절대 하지 않을 거란 믿음을 준다. 육체노동의 이미지들은 이렇게 12년의 정규교육을 통해 탄생했는지도 모른다.





* 이 글은 2021년 6월 4일, 『한겨레』에 실렸던 「저주스러운 직업」을 일부 수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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