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부도 흙에 기대어 배우는 중
애완동물이든 집이든 땅이든 무엇인가를 소유한다는 건 책임감이다.
지난해 제부도 근처 그린벨트 지역 내 작은 밭을 가지게 되었다. 엄마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장남에게 사전증여 해주면서 딸들에게 논 하나를 준 것이다. 줄 때 아버지는 팔면 안 되고 30년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당부를 했었다.
“ 안 팔고 그냥 가꿀게요. 아버지, 엄마 생각나면 여기 밭에 올게요.”
오빠가 논을 흙으로 메꾸었지만 묵정밭이 되었다. 풀이 장악한 밭을 아버지는 못마땅했었다. 아버지는 밭에 풀이 있으면 안 되는 거라고 중얼거렸다. 농사는 잡초와의 싸움 같다.
평생 농사를 지은 아버지는 풀이 있는 것을 동네 사람 보기가 창피하다고 했다. 사정상 언니네 밭까지 대신 관리를 떠안게 된 나는 부담이었다. 어릴 적 농사 돕는 일이 힘들어 도회지 나가 살려고 한 건데 다시 농사를 짓게 된 것이다. 주말의 뿌리 내리기가 시작된 것이다. 흙묻은 마음자리가 사람을 만들어 갈 것이다.
큰비에 둑이 터져 포크레인을 부르고 풀밭에 로터리를 치고 비료를 뿌리고 기초공사를 하는 일이 힘에 겨웠다.
비가 연거푸 내리기만 해도 없던 걱정이 생겼다. 농사는 다 때가 있고 절기마다 해야 할 일들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봄이면 파종을 하고 여름에는 관리를 한다. 가을에는 수확을 하고 겨울에는 쉰다. 우리 사람은 사계절 내내 일하고 살지만 말이다.
아이들과 밭두둑에 검은 비닐을 깔고 풀 잡기 위한 기초 작업을 하는데 땡볕이 그렇게 무서운지 새삼 느꼈다. 물만 찾게 되고 비 오듯 하는 땀은 입맛마저 앗아간다. 지방에 근무하는 남동생도 하루 와서 도와주더니 다음부터는 부르지 말라고 진저리를 내고 간다. 첫 농사를 짓기 위한 작업을 겨우 마쳤다. 생명력이 강하고 일손이 덜 가는 작물로 심으려 했다. 집에서 밭까지 두 시간 정도 차로 걸리고 왕복 4시간 정도 소요된다. 한번 가면 아이들과 점심도 사 먹고 아버지 장도 보고 음료나 농기구 구입 등 이런저런 경비도 만만치가 않아졌다.
단호박, 맷돌 호박을 몇 두둑 심고 고구마 반 두둑, 참외 반 두둑과 수박, 가지, 방울토마토 옥수수를 조금씩 심었다. 식물의 생육 조건이 물과 햇빛이다. 모종 전 나무도 그렇고 구덩이 안에 물을 준다. 그런 후 작물을 심고 흙을 덮은 후 다시 물을 주면 물이 흙을 당겨주어 튼튼하게 작물이든 나무를 잡아준다. 고춧대나 가지, 토마토 옆에는 긴 대를 꽂았다. 대를 꽂아 묶어주어야 작물이 바람에 쓰러지지 않고 잘 자라 열매를 맺는다. 고추나 가지와 방울토마토 나무들, 원대를 두고 자꾸 나오는 순을 따 줘야 한다. 씨앗 하나 나에게로 자라나듯 농사를 지으며 배우는 게 많다. 참외와 수박 순은 각 양쪽으로 두 줄기만 남겨놓고 나머지는 제거한다. 열매 맺힌 부분에 열매를 크게 하기 위한 배려다. 순을 제거해 버리면 아깝다고 든 생각이 수정된다. 영양분이 열매로 가기 위한 작업들을 해주는 일로 허리가 아프다.
“엄마, 그렇게 다 순을 따내고 나면 별로 없는 거 아닌가요?”
딸의 눈빛에 걱정이 들어있다.
“아니야, 영양분이 쓸데없는 곳으로 가는 걸 사전 차단하기 위해 순을 따주는 것이니 남은 순들이 더 크고 달고 맛난 과일로 우리에게 줄 거야.”
자연 이치를 식물 생장 따라 알게 된다. 우리 사람도 자연이니 자연의 이치 따라 살면 된다.
뒤돌아서면 풀이 자라있다. 풀과 대적하면 무릎이 아프고 허리도 끊어진다. 그동안 혼자 밭농사 다 책임지다가 인공관절 양 무릎에 박고 산 엄마가 자꾸 생각난다. 엄마 혼자서 얼마나 고단하고 힘겨웠을까. 엄마의 고생과 희생 덕에 우린 어려서 과일이며 각종 야채를 충분히 먹으며 자랐다.
난 겨우 이 밭 하나 가지고 이를 악물었다. 힘들다고 소리를 치면 아버지는 농사가 쉬운 줄 알았냐고 농사가 힘든 거라고 웃는다.
주말이면 그동안 심은 것들이 어찌 자라있을지 궁금해져 또 집을 나서게 된다. 금요일까지 회사에 나가 일하고 주말이면 장보고 둘레길 걷던 것이 이젠 텃밭에서 찾은 나의 시간을 살게 된다.
작물들도 주인의 발자국소리 듣고 더 잘 자라고 더 열매를 맺는다 하지 않던가. 주말마다 땅과 대화를 나눈 것이 나에게 보답을 준다.
맷돌 호박이 장성하면 풀을 이긴다는 지인의 말을 듣고 심었는데 온 밭이 큰 호박 천지가 되어버렸다. 아버지는 농사를 짓는 나를 못 믿어 밭을 서성거리더니 맺힌 열매들을 보고는 안심이 되는가 보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더니 첫 농사에 왜 이렇게 무성하게 잘 되었냐? 초보 농부 신고식을 잘 했네.”
혼자된 아버지를 보살펴주는 요양사 언니가 밭에 와서 참외랑 수박을 따가며 칭찬처럼 말을 했다.
고구마나 단호박, 호박이 몸에 어째서 좋은지 알 것만 같다. 줄기를 뻗어나가는 힘이 왕성하다. 풀이 자랄 틈새를 안 준다. 온 밭을 덮은 고구마순과 호박잎을 따다가 먹고 지인들도 와서 따가고 했다. 생명력이 강해서 사람에게도 좋은 가보다.
단호박은 따고 나면 또 열리고 고구마는 슈퍼고구마가 탄생했다. 아이들과 나는 함성을 질렀다. 역시 땅의 여신 가이아가 나를 보살펴주신 것이다. 하늘나라에 있는 엄마와 조상님들이 나를 어여삐 여겨 잘 되게 해주신 것인지도 모른다.
“비료를 두 번 주어서 그런가? 내 평생 농사를 지어보지만 이렇게 항아리만 한 고구마는 처음 본다.”
아버지는 호미로 못 캔다고 삽을 가져와 옆을 우선 파내더니 깊게 자리 잡은 고구마를 쓰러뜨려 캔다. 온몸으로 보여주는 아버지를 보고 내가 많은 것을 느끼듯 내 아이들도 곡물을 심기 전부터 심고 가꾸고 하는 과정에서 어쩌면 가장 많은 이야기를 들려줬는지도 모른다.
난 깨달은 것이 있다. 고구마는 땅이 척박해야 작고 조그맣게 단단하게 열리는 데 비료를 주고 수분이 많은 땅이니 물고구마 같다. 날로 깎아 먹으니 물이 많아 좋지만 고구마답지는 않다. 나답게 살려고 노력했던 나는 고구마는 고구마다워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농사에는 베테랑인 아버지한테 항아리 같은 고구마를 드리고 왔다. 아버지도 잘 자라고 주렁주렁 맺힌 밭을 보고 고개를 끄덕인다.
‘밭을 가지면 부지런하면 얼마든지 자급자족할 수도 있겠구나.’
단지 거리가 멀어서 힘들다. 가까이 살면서 아침저녁 선선할 때 풀을 제거하며 일을 한다면 땡볕에서 일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어 덜 힘들 거란 생각도 들었다. 한나절 물과 자장면을 먹으며 쏟은 내 노력을 밭도 아는지 실컷 먹을 만큼 내주었다. 대지는 내 땀을 배신하지 않았다. 몸은 고단해도 큰 수확의 기쁨과 보람을 주었다. 아파트 이웃들과 문인들, 친구들과도 나누어 먹는다. 가지도 슈퍼 가지다. 다섯 그루 가지 나무에서 물리도록 가지를 먹었고 방울토마토도 따면 또 열리고 또 열리는 왕성한 생산력에 놀랍다.
평생 정직하게 자연의 이치대로 살아온 부모님이다. 내게 물려준 정신적 유산은 성실과 근면이다.
풀들과 씨름하고 고구마 캐고 무거운 걸 나르는 난관 속에서 얼굴엔 기미가 생기고 허리와 무릎이 뻐근해도 뿌듯하다. 무엇을 하든 내가 하는 일은 잘 할 수 있다는 걸 아버지나 이웃분들에게 자식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땅은 뿌린 만큼 거두게 된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면서 보람이 컸다.
“무슨 단호박이랑 고구마가 이렇게 커요.” 큰 올케언니가 웃으며 박스를 받았다.
밭에 뒹구는 맷돌 호박 수백 개를 팔아 비료, 비닐 비용이라도 뽑아보라고 아버지는 채근했다. 트럭을 빌려와 건강원에 호박을 맡기고 달이는 비용을 들여 즙을 내었다. 그래야 보관이 용이했다.
땅 같은 관계, 땅 같은 우정처럼 땅 같은 사람이 많아지면 얼마나 살기 좋아질까.
저울 같은 사람보다는 나은 세상이 올 것이란 걸 돌아보게 한다. 땅은 정직하다. 작은 밭에서 큰 배움을 수확한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생각한다. 난 오늘도 생산적인 시간을 살았구나.
금요일 공장을 나서다가 제초제와 씨앗을 사러 간다니 톰슨집 부장님이 한마디 한다.
“그러다 농사꾼 되겠어요. 안 팀장님,”
오늘 엄마가 들려주고 싶은 말은 “사소한 것에 감정소비를 하지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