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외로워질 필요!

-나는 나를 쓰는 중이다.

by 안명옥


집을 떠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이번 울진 여행은 학교를 나와 회사에서 일을 하던 5년간 나를 위한 여행을 해본 적 없던 날들에 대한 보상이었다. 25년 2월 말 퇴직한 지 한 달 만에 가방을 쌌다. 사는 일과 쓰는 일 사이에서 나는 고인 물처럼 느껴졌고 폭풍의 눈 속에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이젠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시간이 없다는 생각도 들었을 때 과감히 사표를 냈다.

'나는 솔로'라는 프로를 보면서 젊은이들의 사랑을 찾는 모습에 애정이 생긴 건 나에게도 그만한 아들과 딸을 두었기 때문인가. 내 영혼은 사랑이기 때문일까. 다시 저 나이로 돌아가면 난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한 것인지도 모른다. 자기표현에 당당한 출연 여성들을 보면서 달라진 세상을 보는 것이 좋아 애청자가 되어간다. 그 프로에 울진이 나온 적 있다. <울진 오래비>란 시도 쓴 지 오래된 나지만 아직 가보지 않은 장소이기도 했다.

길을 가다 보면 마치 인생처럼 날씨가 흐렸다가 비가 오더니 갑자기 개인다. 바람도 불다가 다시 고요해진다. 여행자가 다 길을 잃는 건 아닐 텐데 나는 길을 잘못 들어 헤매다 보니 점심시간이 지난 오후 두 시에 닿았다. 울진은 바다가 바라보이고 작은 읍 같은 분위기였다. 바람이 제법 쌀쌀했다. 언제나 봄바람 속에는 칼이 들어 있다. 긴 겨울 지나도 늦잠 자듯 겨울잠에 든 나무를 깨워 꽃필 준비를 하라고 흔들기 위해서다. 늘 내가 불확실성을 안고 나아가듯 지금 우리나라는 봄이 와도 여전히 어수선하고 겨울처럼 느껴진다. 그래도 탁 트인 울진 바다를 보니 속이 뚫리는 듯하다. 늦은 점심을 먹으려 수협 직판장에 들러 영덕 대게를 보았다. 일본산과 국내산 구별이 입 모양 보고 아는데 일본산 사각형 같은데 아주머니가 직접 잡은 대게라 한다. 믿고 샀다. 게를 찌는 데도 한참 걸렸다. 배고프다 보니 기다림이 배가 되는 기분이다. 20분 정도 지나고 바다가 보이는 위층 돌고래 식당으로 올라가니 사람들이 대게를 파먹느라 분주하다. 게를 먹기도 전에 게 냄새가 진동해 이미 다 먹어버린 듯했다. 겨우 한 마리 정도 먹고는 매운 가자미조림을 주문해 먹었다.

식당을 나와 덕구온천을 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내가 산 인생처럼 산하나 넘으면 또 산이 나타났다. 그런데 푸른 산이 아니고 민둥산들이 자꾸 보였다. 지금의 내 영혼과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몇 년 전 화마가 휩쓸고 간 산에는 보살핌의 손길이 간절해 보였다. 불탄 흙마저 검게 보였다. 무수한 생명들이 죽거나 터전을 잃고 당황했을 급박한 상황들이 떠올랐다. 평생 불안이 나를 열심히 살게 한 원동력이었는지도 모른다. 지나가는 내내 마음이 편치는 않다. 밑둥만 남긴 나무들이 제법 큰 나무란 걸 짐작케 한다. 다시 심고 저만한 크기의 나무가 되기까지 걸릴 시간을 생각했다. 스파를 하러 온 가족들 특히 젊은 부부와 아가들이 많았다. 유치원 정도 된 어린이들이 그렇게 예뻐 보였다.

숙소에서 바라보는 밤바다는 무엇을 원하는지 나를 물에 빠뜨리는 느낌을 주었다. 파도가 각을 세워 솟아올랐다가 부서진 영혼처럼 퍼져나가는 행위를 반복했다. 울진은 나라는 섬의 해안선 같다. 가장 높은 파고에서 자꾸 무너졌다. 밤 파도가 하얗게 웃자 창문도 하얗게 웃었다. 문득 파도가 외롭다고 고백했다. 누구나 외롭다고 대답을 했던가. 그래도 자발적 고독을 해야 한다고 했던가. 고독은 인간의 품격을 더 높여줄 수 있다고 횡설수설했다. 파도도 밤바람도 잔잔해지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파도를 덮고 잠자리에 들었지만 바뀐 잠자리가 불편했는지 뒤척였다.

다음날 봄비가 내렸다. 때아닌 눈 소식도 귀로를 서두르게 했다. 해변도로로 고속도로가 잘 되어 강릉까지 금방 올라갔다. 강릉은 눈이 제법 왔던 모양이다. 곳곳 눈이 보였다. 휴게소에서 커피 건빵을 사서 먹었다.

원주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원주에 닿으니 비가 반겼다. 원주 박경리 문학공원과 문학의 집을 늘 가보고 싶었다. 이제야 빗속에서 책으로 선생님을 뵈었다. 몇 해 전 하동에 가서 토지 소설을 만났다. 작품 배경이 된 곳에 머무르며 박경리 소설가 이전에 한 여자로, 한 인간으로 생각한 적이 있다. 수십 년을 한 작품에 바친 열정이 존경스럽다. 숙연해진다. 아니 선생님 앞에 서면 내가 작아진다. 원주 문학관에서는 누군가 집필의 땀을 쏟고 있을 것만 같아서 걷는 걸음도 조심스러웠다. 비 맞는 문학 공원에서 한참 서성거리다가 원주에서 점심을 먹고 싶었다. 근처 막국수 집에 들렀다. 맛있었다. 원주가 이렇게 맛나구나.

오는 길에 또 한 번 길을 잃었다. 길을 잃고 길을 의심하는 것도 여정의 일부처럼 느껴져 헤매는 순간을 즐겼다. 삶에선 늘 초고인 작가다.

집에 돌아오고 나니 강원도 동해 등 대설 주의보가 다시 내렸다. 조상님이든 신이 나를 살펴 주신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를 알기 위해선 다른 사람을 가만히 관찰하면 나를 알 수가 있다. 아주 짧은 나만의 시간이었지만 남은 생은 쓰기 위한 삶을 살리라. 뜨겁게 다짐했다. 내 안의 빈방이 커지는 중이다. 가슴을 파고드는 서른 살 딸아이를 제쳐두고 '지금보다 더 외로워야 한다. 지금보다 더 고독해야 한다.'고 중얼거렸다. 거장의 그림자에서 햇빛을 배웠는지 햇살이 나의 빈방 창에 한가득 들어오고 있었다. 토지를 쓴 박경리 선생님의 글들이 떠오르며 나는 문장으로 자라는 남은 삶을 살리라. 언젠가 이 모든 게 나를 나타내는 한 문장이 되어줄 것이다.


***엄마가 들려주고 싶은 말은 사랑할때도 자기만의 외로움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

keyword
작가의 이전글손끝에 봄을 심다